[현장르포] 소방청 불시 점검… 안전무시 관행 여전

수도권 백화점ㆍ영화관 10곳 중 9곳, 불량 사항 68건 적발

배석원 기자 | 입력 : 2018/08/06 [11:09]

[FPN 배석원 기자] = 지난 3일 극한 폭염으로 많은 인파가 몰린 서울의 한 대형 쇼핑몰. 소방청 직원들이 이곳에 들이닥쳤다. 피난ㆍ방화 시설 등 소방안전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안전 무시 관행이 난무했던 불시점검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이날 점검은 오후 1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방청 주관으로 불시 현장 점검을 벌이는 건 국민안전처에서 독립된 이후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현장에는 소방청 화재예방과 직원을 비롯해 관할소방서 소방공무원과 <FPN/소방방재신문>, SBS 취재팀도 따라나섰다.

 

첫 번째로 확인에 나선 곳은 화재 발생 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피난로인 비상계단이다. 과연 비상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 지난 3일 소방 불시점검에서 적발된 방화문 앞에 적치물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최누리 기자

 

“여기에 이렇게 두면 안 되는데…” 소방청 직원은 혀를 차며 카메라로 현장 모습을 그대로 촬영했다. 

 

화재 시 자동으로 닫혀야 하는 방화문 앞에는 수십 개의 상품 상자가 쌓여 있었다. ‘방화문 앞 적재 금지’라는 경고성 문구가 붙어져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사실상 화재 발생 시 적재물로 인해 방화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피난까지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층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확인한 결과 상층부인 5층 비상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층 모두 방화문 앞에 상자와 장애물 등을 적치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적은 곳은 2개부터 많게는 10개의 상자가 쌓인 곳도 있었다. 이는 모두 현행법 위반이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방화구획과 방화 시설을 폐쇄ㆍ훼손 또는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런 규정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을 입었던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2층 비상구에 목욕용품 등의 적재물이 쌓여 있어 비상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장 점검에 나선 소방청 화재예방과 이종충 계장은 “화재가 발생하면 이 방화문은 자동으로 닫혀야 하는데 지금처럼 장애요소가 적재돼 있으면 문이 닫힐 수 없게 된다”며 “이 같은 모습은 비상구 확보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화재 발생을 대비해 평상시 닫혀 있어야 할 방화문이 열려 있는 모습이다.     © 최누리 기자

 

다른 구역 곳곳에도 관행적으로 이어져 왔을 것으로 의심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창고 문은 닫히지 않도록 상자로 문틈을 걸어둔 채 사용되고 있었다. 또 화재 시 피난구역으로 연기나 화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닫혀 있어야 하는 방화문 역시 손수레로 고정해 놓은 상태였다.

 

이종충 계장은 “이쪽이 피난 구역인데 이렇게 개방해 놓으면 화재 발생 시 급격히 확산되는 유독가스 차단이 안 되니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화재 발생 시 연기를 제어해 주는 제연설비 앞에도 장애물이 방치돼 있기도 했었다. 이 같은 모습은 모두 소방청 불시단속에서 포착됐다. 

 

적발 사항에 대해 해당 쇼핑몰 관계자는 “매일 비상 통로를 점검하는데 부득이하게 점심시간 때 택배 상품이 많아 카트에 쌓아둔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이어 “언론과 인터뷰는 제한된다”면서 비상구에 택배 상자를 둘 수밖에 없던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소방청 직원은 점검 사항을 모두 체크 한 뒤 다음 점검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B 쇼핑몰의 피난로 상태는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 통로에는 장애물이 없었고 방화문 관리도 양호한 상태였다.

 

▲ 유아시설 지점에는 화재 시 비상구를 가리키는 피난유도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 최누리 기자

 

하지만 이 쇼핑몰에는 화재 대피에 취약한 유아시설이 있는 공간임에도 피난 유도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점검단과 함께 비상구를 찾아 나서 보니 비상구는 복도 끝 왼쪽 벽면에 있었다. 피난 유도등이 없어 쉽게 찾기 어려운 위치였다. 피난로 관리는 잘 돼 있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피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점검현장. 두 쇼핑몰을 잇는 이동 통로를 지날 때 소방청 직원은 방화셔터를 가리키며 “방화셔터 한 번 내려 보시죠”라고 요청했다.

 

쇼핑몰 직원의 통제하에 방화셔터(방화스크린)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연기 확산 차단 역할을 하는 방화셔터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셔터가 잘 내려오나 싶더니 이내 바닥에 있는 장애물에 걸려 완벽히 닫히지 않았다. 직원이 구조물을 옮긴 뒤에야 바닥까지 닫힐 수 있었다. 

 

▲ 연기 확산 차단 역할을 하는 방화셔터가 제대로 닫히지 않고 있다.     ©최누리 기자

 

방화셔터에 구분된 피난문도 문제였다. 방화셔터 내 피난문은 사람이 피난 후에도 자동으로 닫히는 게 정상이다. 연기와 열을 차단해 피난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단부 스프링 고장으로 피난 문은 완전히 닫히지 못했다. 실제 화재 발생 시 방화셔터가 내려와도 연기나 열이 다음 구획으로 유입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 직원들이 소방점검 중인 걸 확인한 뒤 방화셔터 아래 있는 상품대를 부랴부랴 옮기고 있다.     © 최누리 기자

 

또 다른 곳은 소방 불시점검 중인 걸 파악하고 나서야 직원들이 부랴부랴 상품 진열대를 옮기는 모습이 점검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이날 소방청은 불시점검에서 적발된 사항을 시설물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위법 사항에 대한 과태료와 시정조치 등의 처분을 내렸다.

 

한편 이날 소방청이 서울ㆍ인천ㆍ경기 소방본부와 합동으로 진행한 이번 점검에서는 40명이 투입돼 비상구 폐쇄ㆍ훼손, 피난통로 장애물 적치 행위, 방화문과 방화셔터 폐쇄ㆍ훼손 행위 등을 집중 확인했다. 

 

특히 불시단속 결과 총 68건에 이르는 지적사항이 적발됐으며 20건의 조치명령과 22건의 현지 시정조치, 26건의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세부적인 불량 사항은 ▲소방시설 위반 16건 ▲방화문ㆍ폐쇄ㆍ훼손 14건 ▲방화시설 장애물과 방화문 개방 각 12건 ▲피난통로 장애물 10건 ▲방화시설 훼손 4건 등 순이다. 영화관과 백화점이 갖춰진 서울의 C 대형 복합건축물의 경우 3곳에서 방화문 잠금과 소방시설 차단폐쇄 등이 적발돼 조치명령을 받았다. 또 이산화탄소 소방설비를 작동불능 상태로 방치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소방청은 앞으로도 시ㆍ도 소방본부와 합동으로 불시 점검을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조종묵 청장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안전 무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안전관리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또 “비상구 폐쇄 또는 소방시설 잠금ㆍ차단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에 대해서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도록 하는 소방시설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며 “앞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배석원 기자 sw.note@fpn119.co.kr

광고
이슈분석
[FPN TV 이슈분석] 국회 행안위 법안 심사 앞둔 소방시설법 개정안, 문제는?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