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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기고]영웅바라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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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부소방서 문기식 서장 | 기사입력 2018/09/13 [19:35]

[119기고]영웅바라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광주남부소방서 문기식 서장 | 입력 : 2018/09/13 [19:35]

 ▲광주광역시 남부소방서 문기식 서장

어릴 적 위인전을 통해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왔던 우리는 어른이 된 지금도 영웅에 대한 동경심과 함께 그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열망한다.

 

여자 아이들은 영웅과의 로맨틱한 만남을 꿈꿨고 남자 아이들은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영웅 흉내를 내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첨단과학의 발달과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영웅의 입지는 좁아지고 이제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 속 영웅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상상 속에 슈퍼히어로(Super hero)를 수입해 그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또 영웅들의 필요성과 배경도 바뀌었다. 총과 칼을 겨누는 무력전쟁보다는 현실적인 화재나 자연재해와 같이 과학이나 기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영역으로 무게가 실리게 됐다.

 

이런 심리가 반영돼 언제부터인지 소방관을 상상 속의 영웅인 슈퍼맨이라 부른다. 소방관이 슈퍼맨이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재난과 재해에 지친 국민은 소방관이 슈퍼맨이 돼주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 그리 표현했을 것이다.

 

지난 5일 광주 남구에 위치한 광주제일병원 건물 지하에서 예기치 못한 화재가 발생했다. 언론매체가 들썩거릴 정도의 대형 화재도 아니었고 검은 유독가스로 하늘을 메우는 급박한 화재 현장도 아니었지만 나는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슈퍼맨을 볼 수 있었다.

 

화재가 난 병원 건물에는 입원환자, 의료진 등 126명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병원 특성상 거동이 불편하거나 자력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

 

‘슈퍼맨 덕분일까?’ 그날 내가 본 슈퍼맨은 우리가 기대하던 소방관이 아니라 병원 내 직원으로 구성된 자위 소방대였다. 자위소방대는 건물의 관계인으로 조직된 자체 소방대다. 특정소방대상물의 소화ㆍ통보ㆍ피난 등의 자체적인 훈련을 해 화재를 예방하는 민간조직이다. 이는 소방시설법(약칭)에도 명시된 안전관리를 위한 관계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거나 하늘을 날며 사람을 구하는 만화 속 화려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평소 훈련한 대로 화재가 발생하자 침착하게 소화기를 사용, 대형 화재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고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초기 화재 진압과 동시에 병원 환자들의 대피를 유도했다.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에는 대부분의 환자는 건물 밖으로 대피한 상태였으며 화재는 초기 진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있었다. 혹자는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치켜세우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초기 대응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특성에 맞는 짜임새 있는 소방계획이 기초가 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상황대처능력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제일병원의 관계인들은 안전에 대한 기초와 기본에 충실했다. 그들의 노력은 화재 초기에 발 빠른 대처로 이어졌고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번 화재 사례는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현실 속 슈퍼맨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병원직원들의 안전에 대한 가치 있는 생각과 이를 실천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괴테는 “모든 것은 쉬워지기 전에는 어렵다”고 했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다. 화재 예방 역시 시작은 인적·물적ㆍ환경적인 어려움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고 안전한 환경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ㆍ투자를 한다면 더 이상 위기의 상황에서 슈퍼맨만을 기다리는 영웅바라기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광주광역시 남부소방서 문기식 서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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