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숨진 삼성 기흥 이산화탄소 오방출… “배선 자른 게 화근”

소방청, 이탈된 선택밸브서 뭉개진 비정상 나사산 상태도 확인

최영 기자 | 입력 : 2018/10/16 [18:04]

▲ 사고 직후 조사 과정에서는 소방 선로 철거 작업 과정에서 살아 있는 배선을 죽은 배선으로 오인해 잘라낸 사실이 밝혀졌다. 잘린 선로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FPN 최영 기자] = 지난달 4일 2명이 숨지고 1명을 뇌사 상태로 만든 기흥 삼성전자 이산화탄소 오방출 사고가 소방 선로 철거 작업 중 모르고 잘라버린 설비 배선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오방출 사고가 인명 피해를 불러온 배경에는 두 가지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첫째는 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방출됐다는 점과 소화설비 배관 부속품인 ‘선택밸브’가 이탈됐다는 점이다.


이산화탄소 등 가스를 사용하는 소화설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감지기를 통해 화재가 감지되거나 인위적으로 시설을 고의 조작하는 등 수동 작동을 시켜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영호 의원실(서울 서대문구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직후 실시된 조사에서 화재가 감지되거나 수동으로 작동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어반과 수신부에서 화재감지기 회로 2곳에서 단선 표시가 점등된 것이 확인됐다. 

 

▲ 사고 직후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제어반에는 수동방출 표시가 4곳이나 점등돼 있었다. 이 중 2곳은 스프링클러설비와 같은 수계설비로 전환된 곳이기 때문에 결국 2곳의 수동 작동이 있었던 것으로 소방청은 판단하고 있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의 수신반과 수동 작동을 시켜주는 장치 간의 연결된 배선을 노후 배선으로 오인해 철거 과정에서 절단했고 일시적인 단락 현상이 발생되면서 소화설비가 강제 작동됐을 것이라는 게 소방청 추정이다.


취재 결과 이날 배선이 잘려나간 현장에는 삼성 관계자와 12명의 협력업체 인부들이 소방선로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화설비가 연결된 배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잘라내면서 이산화탄소가 오방출 됐을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아직 국과수나 경찰 등의 공식 발표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합동조사 기관과 조사에 자문을 한 관계자 등에 따르면 조사 기관들 역시 배선 절단이 오신호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시각은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박찬훈 부사장은 15일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의 자체 조사 내용 결과를 묻는 김영호 의원 질문에 “전기 케이블이 잘못 절단돼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작동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소방 선로 철거 작업을 하면서도 배선 구조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진행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선로 철거 작업에는 삼성의 전기 운영을 담당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하청업체 직원 등 총 13명이 함께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로 절단 작업을 선로 연결 상태조차 검토 없이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해 못할 형태로 분리돼 버린 ‘선택밸브’에서도 문제점이 확인됐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화재 시 즉각적인 진압을 위해 여러 개의 방호 구역으로 배관이 연결된다. 각각의 실에서 화재 신호가 들어오면 이산화탄소를 해당 구역으로 방출해 화재를 진압하는 형식이다.

 

단선에 따른 이상 신호가 소화설비를 작동시켰더라도 이산화탄소는 신호가 들어온 방호 대상 공간 쪽으로만 쏟아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선 배관에 연결된 선택밸브가 이탈되면서 엉뚱하게도 이산화탄소가 저장된 약제저장실로 방출됐다.

 

▲ 사고 당시 이탈된 선택밸브의 모습이다. 다른 선택밸브의 경우 배관과 연결돼 있지만 이상하게 하나의 밸브만이 덩그러니 상부로 올라가 있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이 쏟아진 이산화탄소의 큰 압력이 저장실 내 형성되면서 상단의 벽체가 파손됐고 부서진 벽면 밖으로 이산화탄소가 흘러나간 것이다. 방호구역도, 소화약제 저장실에도 없었던 3명의 작업자들이 피해를 입은 이유다. 간단히 말하면 선택밸브가 파손되지만 않았어도 인명피해까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 당시 사고 현장을 보여주는 평면도를 보면 소화약제 저장실의 벽체를 통해 빠져 나온 이산화탄소가 인명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그럼 이 선택밸브가 이탈된 까닭은 뭐였을까. 소방청이 김영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이탈된 선택밸브에서 본체와 플랜지 사이의 나사산(숫나사) 모양과 플랜지의 나사산(암나사) 모양이 비정상적으로 뭉개진 상태가 확인됐다.

 

▲ 당시 배관으로부터 이탈된 선택밸브의 나사산이 일부 뭉개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당시 133개의 이산화탄소 용기가 동시 방출되면서 접합상태가 불량한 선택밸브가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됐을 것이라는 게 소방청 추정이다.


선택밸브가 이렇게 이탈될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최초 설치 과정에서 선택밸브와 플랜지를 분리해 시공하거나 잦은 탈착으로 인해 나사산 모양이 변형돼 접합 불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이종재질로 이뤄진 선택밸브의 문제다.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방출되면 줄-톰슨 효과에 따라 급속한 냉각이 진행된다. 줄-톰슨 효과는 압축 기체를 좁은 단열된 좁은 구멍으로 분출시킬 때 온도가 하강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산화탄소의 경우 -78℃까지 떨어지게 된다.


소화설비 방출로 선택밸브가 냉각되면서 황동으로 이뤄진 밸브 본체와 스테인리스 강 재질의 플랜지가 온도변화에 따른 변형률 차이가 생겨 접합 불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소방청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접합 불량 상태는 더 가속화됐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후 시설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사고가 발생한 선택밸브는 1996년 생산된 제품으로 20년이나 된 노후 시설이었다. 

 

▲ 사고가 발생한 이산화탄소소화설비에 설치된 선택밸브는 1996년 제조된 제품으로 20년이 넘도록 단 한번의 교체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 소방청 조사보고서/김영호 의원실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이창우 교수는 “화재 시 제역할을 기대해야 하는 소방시설이 건축물 최초 준공 과정에서 한 번 설치되면 건축물의 수명과 같이 내용연수에 대한 규정조차 없이 영구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영호 의원은 “이번 사고는 소방시설공사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는 기업이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생긴 인재”라며 “기업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면 국민과 유가족에게 스스로 먼저 원인을 밝히고 사과하는 모습 없이 자꾸 숨기고 은폐하려고 하니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과 소방은 이번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밝히고 일벌백계해야 다시는 이런 인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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