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고 강연희 소방관 위험순직 ‘부결’… 논란 큰 이유는?

“위험직무순직 해당 안 된다”는 인사혁신처에 납득 못하는 소방관들
유족에 전달된 부결 통보서에 웬 ‘지병’, 뇌 질환 진료 이력도 없는데…

유은영 기자 | 입력 : 2019/02/25 [17:41]

▲ 故 강연희 소방위의 영결식이 지난해 5월 3일 익산소방서 장(葬)으로 진행됐다.     ©소방방재신문

 

[FPN 유은영 기자] = 지난해 4월 주취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뒤 숨진 고 강연희 구급대원의 ‘위험직무순직’ 부결을 놓고 유족과 소방공무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심의가 부결됐다. 국가가 강 소방경의 죽음이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일반 순직으로는 인정했지만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규정한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입수한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유족급여 청구 불승인 통보’ 문건에서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의 의견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커졌고 인사혁신처는 지난 20일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반발은 더 확산되고 있다. 소방대원이라는 직무 자체를 위험직무가 아니라고 본 것에 이어 고 강연희 소방경이 앓지도 않았던 ‘지병’이라는 단어가 부결 통보서에 적시됐기 때문이다.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위험순직 심의 결과는 1만여 명이 넘는 소방조직 내 구급대원의 직무 특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시각과도 같다. 그만큼 이번 결정의 여파가  단순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FPN/소방방재신문>이 고 강연희 소방관의 위험순직 ‘부결’ 논란을 집중 취재했다.

 

고 강연희 소방경은 왜 숨을 거뒀나
지난해 5월 1일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 소속 고 강연희 소방경이 뇌출혈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오전 5시 9분께 숨을 거뒀다.


앞서 고 강 소방경은 4월 2일 오후 1시 2분께 익산시 평화동 익산역 앞 도로상에 쓰러져 있던 주취자(남, 47)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주취자에게 “XX년아, X까, 공무원 돼봐야”, “XX년들 내가 XX를 찢어서 죽여버려 내가” 등 원색적인 욕설을 들었다.


주취자는 구급차에 함께 탔던 박중우 소방사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물리적으로 제압할 방법이 없었던 박 소방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 사이 주취자는 강 소방경의 머리를 5~6대나 가격했다. 


그날 이후부터 강 소방경은 불면증에 시달렸다. 동료들에게 매일 같이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내렸다.


4월 23일 야간근무를 앞두고 쉬고 있던 그녀는 또 머리 통증을 호소했다. 남편에게 연락한 후 의식을 잃은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담당 의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 손상’이라는 소견을 내놨다.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자발 호흡과 산소호흡기를 병행하며 입원 치료를 받던 그녀는 결국 생과 이별을 고했다.


다음날인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부검을 시행했다. 7월 30일 나온 부검 결과에 따르면 강 소방경의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 및 이후 발생한 합병증’.


유족은 강 소방경의 순직 심의를 요청했고 8월 30일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심의가 가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10월 23일 유족은 소방공무원의 직무 특성상 고려될 수 있는 위험직무순직을 신청했다. 그러나 올해 2월 13일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규정하는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의가 부결됐다는 통보서를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았다.

 

“위험직무순직 인정 못 한다”는 인사혁신처

▲ 지난 13일 인사혁신처가 결정한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유족급여 청구 불승인 통보서에서는 강 소방경이 주취자의 폭행과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정신적 요인으로 뇌동맥류가 악화돼 파열됐다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끝내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13일 인사혁신처는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유족급여 청구에 관해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를 개최했다. 취재 결과 이번 심의는 의료계 9명, 법조계 2명, 인사혁신처 공무원 1명 등 총 12명의 위원을 통해 이뤄졌다.


고 강연희 소방경에 대한 인사혁신처의 ‘위험직무순직유족급여 청구 불승인 통보’ 문건을 보면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순직에는 해당되나 같은 법 제3조제1항제4호와 제5조제2호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직무순직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부지급 결정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험직무순직은 공무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경우 그 유족에 대한 보상을 강화해 유족의 생활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위험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안심하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은 이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으로 인정된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관련 법인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재난ㆍ재해 현장에서의 화재진압, 인명구조ㆍ구급작업 또는 이를 위한 지원활동(그 업무수행을 위한 긴급한 출동ㆍ복귀 및 부수활동을 포함한다)이나 위험 제거를 위한 생활안전활동 등을 수행하다 숨졌을 때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이번 심의에서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대한의사협회는 강 소방경이 폭행사건 이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동맥류 부위에 혈역동학적 변화가 초래되고 결국 뇌동맥류의 불안정한 혈역동학적 문제가 악화해 출혈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평소 강 소방경의 혈압 수준이 안정적이었고 시간 순서상 업무 중 폭력 및 폭언 사건 발생 후 뇌동맥류 관련 부위의 자극으로 인한 증상이 발생한 점을 감안했을 때 기저질환인 뇌동맥류가 업무와 관련된 요인에 의해 자연경과보다 현저히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외상에 의한 뇌동맥류의 파열은 아니지만, 수일 전 폭행을 당한 감정의 변화로 혈압 상승이 돼 뇌동맥류의 파열을 불러올 수 있음을 추측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위험인자와 직업 간 스트레스, 폭행 등 종합적인 이유로 파열됐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종합해보면 사고 당시 폭력 행위에 따른 외상으로 강 소방경의 뇌동맥류가 파열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일로 인한 감정변화와 스트레스 등을 겪으면서 폭행 등 종합적인 원인으로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전문 기관의 감정 결과 등은 강연희 소방경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목숨까지 잃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녀를 위험직무순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결정이다.


이 결정을 두고 유족과 소방관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인사혁신처는 지난 20일 해명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서 인사혁신처는 고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불승인 결정은 인사혁신처가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재해보사심의회’에서 신중한 검토를 통해 독립적으로 심의한 결과라고 일축했다. 만일 유족이 결과에 불복할 경우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재심 청구 등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뜬금없이 통보서에 등장한 ‘지병’ 단어… ‘이해 불가’

▲ 대한의사협회의 감정 결과에도 지난 10년간 고 강연희 소방경에게 뇌동맥류 파열과 관련한 사유로 진료받은 적이 없다는 의견이 담겨 있다.     ©소방방재신문


인사혁신처는 고 강 소방경이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심의 결과 통보 문건에 ‘고인은 주취자의 폭언 및 폭행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정신적 요인으로 ‘지병’인 뇌동맥류가 악화, 파열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중 ‘지병’이라고 명시된 내용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지병이란 사전적 의미로 ‘오랫동안 잘 낫지 아니하는 병’이란 뜻이다. 평상시 증상을 호소했거나 진료기록이 있을 때 해당하는 얘기다.


하지만 고 강연희 소방경은 생전 뇌 관련 질병을 앓은 적이 없다. ‘지병’이라는 단어의 등장부터 의문이 생기는 배경이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한의사협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서 어디에서도 강연희 소방경이 뇌와 관련한 지병이 있었다고 판단한 근거가 없다.


인사혁신처가 문건에 적시한 ‘지병’이란 단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 소방경이 마치 관련 질환을 앓아왔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급기야 일부 언론은 이 단어에 주목하고 지병을 앓고 있었다는 식의 보도까지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통상적으로 지병이라는 단어를 공적인 문서에 적시하려면 최소한 과거의 진료기록 등이 확인돼야 한다”며 “실제 뇌동맥류에 관한 질병을 앓은 적도 없던 사람에게 지병이 있다고 표현한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위험직무순직 심의가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면피성으로 ‘지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인사혁신처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부결 판단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치 않은 단어를 고의로 썼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유족인 최태성 소방위는 “이 사건 이전에 단 한 번도 뇌 질환과 관련한 진단을 받았다거나 진료를 받은 적은 없다”면서 “인사혁신처에서 왜 그런 식으로 해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른 시일 내에 아내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며 3월 초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족 이어 동료들도 “인사혁신처 결정 수용 못 해”
이번 인사혁신처의 심의 결과를 놓고 소방공무원의 반발도 더 커지고 있다. 고 강 소방경과 근무했던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은 “인사처는 그간 업무와 사망 간의 관련성이 증명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관련성이 인정되니 이제 와 주취자 이송 구급업무가 위험직무가 아니라고 해석한다는 건 재해보상법 제정 취지를 무시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제 소방공무원은 모든 출동 시 매번 이 현장 출동이 위험직무일까, 아닐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며 “소방의 현장활동이 위험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인사처에만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인사처에 항의 방문과 함께 1인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은 “관련법에서 소방공무원을 위험직무를 수행하는 직군으로 분류하고 있으면서도 직무를 수행하다 숨진 강연희 소방경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업무를 위험으로 판단해 순직 처리를 해줄 것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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