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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화재조사관입니다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2/26 [13:10]

[화재조사관 이야기]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화재조사관입니다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2/26 [13:10]

화재현장을 찾는 우리들은…

▲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화재조사관은 화재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함께한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목격자와 신고자 등을 상대로 탐문을 시작한다. 때로는 전화로 신고자에게 현장 상황과 목격 내용을 문의하며 출동하기도 한다.

 

화재현장에서는 화재와 관계된 이권관계에 따라 진술이 번복되거나 목격한 진술을 감추는 경우가 있다. 현장 도착 후 조사과정에서는 다시금 목격 내용을 확인하기도 한다.


목격자의 목격 내용은 최초 진술이 신뢰도 측면에서 다소 높게 판단된다. 처음 현장 목격 상황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오염되지 않게 진술하고 시간이 지나면 목격자가 화재대상의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 진술을 하거나 상이한 진술을 하기도 한다. 최초 화재지점과 상이한 지점에서 불꽃을 봤다고 진술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황을 정확하게 답변하는 경향도 있다.


최초 불꽃이 어디에서 보였고 어느 방향에서 봤는지를 재차 확인하면서 목격자 진술의 신뢰성을 판단한다. 또 최초 목격자와 신고자가 다를 경우 신고자 진술과 목격자의 진술이 일치하는지, 어느 방향에서 불꽃을 목격했고, 불꽃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어느 방향으로 연소 확대가 진행됐는지를 세세히 확인한다.


화재진압이 한창일 땐 화재 건물 주변을 돌며 연소 경로를 파악하고 주변 폐쇄회로나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확인한다. 이는 기계적으로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목격자 진술과 화재현장의 연소 방향성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정확한 발화지점을 찾기 위해 기본이 되는 일이다.


이처럼 화재현장 주변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을 조사해 발화지점을 찾는다. 자칫 발화지점을 찾는데 오류가 있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큰 오류가 발생하고 화재 피해자에게는 2중의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가중시키는 결과가 나타난다.

 

화재조사는 국민을 위한 길…

발화지점은 화재조사관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소방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화재현장의 소훼(燒毁)형태나 소실(燒失)형태가 심하면 화재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발화지점을 반드시 밝혀야 하는 심적 부담 역시 화재조사관의 몫이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4만여 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똑같은 화재현장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화재원인이 달리 나타나고 가연물의 연소속도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화재조사관은 현장 구조나 가연물질을 파악하고 공기의 유입경로에 따라 화염의 전파가 달리 나타나는 것을 확인해 발화지점을 찾는다. 발화지점을 찾으면 화재원인을 발굴하기 위해 발화지점에 잔류된 미연소 물질이나 집중 탄화된 물질을 파악하고 연소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한다.

 

또한 현장에서는 특정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화재원인을 놓고 하나씩 소거하는 소거법에 의해 화재원인을 찾는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 유사 화재의 예방 정책을 수립하고 화재 피해자의 억울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행정 목적 달성을 통한 예방정책 전개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작게는 화재 당사자가 손해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발전 거듭한 화재법률, 세상을 바꾸다

우리나라의 화재 관련 법률 중 가장 쟁점이 됐던 법은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은 1961년 4월 28일 제정ㆍ시행돼 왔다. 당시 법률에는 ‘민법 제750조의 규정을 실화의 경우에는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에 한하여 이를 적용한다’고 규정했다.

 

경과실로 인한 경우에는 실화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없고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돼 있었다. 이 법의 제정 취지는 화재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민사적 손해배상을 가중하면 너무 가혹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화재로 타인의 손해가 있다면 타인의 손해를 배상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1976년 12월 17일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성냥불 추정 화재가 발생해 650개 점포가 전소됐다. 11억4000만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1997년 7월 30일에는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서문시장 상인들이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의 헌법소원을 제소하기에 이르렀지만 합헌으로 결정됐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민법을 모법(母法)으로 해 제정된 법률이다. 하지만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에 대한 부분일 뿐 이 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늘어만 갔다.

 

2005년 12월 29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또 한 번의 화재가 발생해 500여 개 점포가 소훼 또는 소실돼 600억원이라는 재산피해를 불러왔다. 이때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헌법재판소에 제소돼 심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실화의 경우 중대 과실이 있을 때에만 민법 제750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규정을 헌법재판소가 결국 헌법에 불합치하다며 적용 중지 결정을 내렸다(헌재 2007. 8. 30. 2004헌가25). 이후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의 모든 효력은 정지됐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법률 내용의 개정이 진행됐다. 눈에 띄게 변경된 조항은 ‘실화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실화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손해배상의 경감에 관한 민법 제765조 특례를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달라진 건 화재로 인한 다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발화지점과 화재원인에 관심이 더 많아지게 됐다. 이 법률의 개정은 화재조사관들에게 많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발화지점을 정확히 밝혀야 하고 화재원인과 실화자의 중과실 여부까지 밝혀내야 했기 때문이다.

 

조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화재조사의 중요성을 인식해 화재조사 직위를 화재조사관으로 상향조정하고 직급을 ‘지방소방위’로 보한다는 결정이 이어졌다.


과거 화재조사는 소방조직 내에서도 한직으로 인식되면서 소방장 이하 계급이 전담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2005년 9월 10일 ‘지방소방장’ 이하 모든 화재조사 보직의 이동과 함께 화재조사관으로 직급은 상향됐다. 하지만 ‘지방소방위’로 변경된 보직은 지식과 경험을 배재한 채 모두 바뀌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등 최악의 사태를 불러왔다.


조직 측면에선 화재조사 분야에 관심을 갖고 발전하는 계기가 됐지만 실무자의 노력과 열정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화재조사 직무에 임하면서 이때처럼 화재조사가 퇴보한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소방위 계급은 파출소장(지금의 119안전센터장)의 직위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화재조사는 가장 먼저 실무자로 출동해 가장 늦게까지 화재현장을 조사하는 업무이다 보니 서로 기피하는 보직으로 여겨졌다.

 

이 일들이 화재조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당시 화재조사 교본은 대부분 일본을 답습하고 인용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회는 물론 건축양식이 일본과 닮았고 화재 양상 또한 비슷했기에 그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화재는 세계 각국에서도 풀지 못하는 숙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화재 없는 나라는 없었다. 어느 나라는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화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진압대책을 강구하며 화재조사로 정확한 원인을 밝혀 유사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떤 나라는 그저 화재를 진압하고 마는 수준에 그쳤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화재조사 기법은 더욱 발전했다. 학습 영역도 많아졌다. 논리는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화재조사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으로 발전돼 과학으로 무장한 보직 중 하나가 됐다. 화재조사 체계 역시 선진국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 체계로 변모했다.

 

화재조사관들의 지식체계도 학력, 상식, 전공, 과학을 토대로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인이 곳곳에서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직위는 ‘화재조사관’, ‘지방소방사 내지 지방소방위’ 직급에서 전문 지식과 자격을 기반으로 화재 현장을 조사하는 체계가 정립됐다.

 

주변 국가나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도 지식, 학위, 노력, 열정이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우리나라 화재조사 체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기도 한다. 화재조사관인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발전은 충실한 기본에서부터 시작된다

원활한 화재조사를 위해서는 기본의 충실함이 지켜져야 한다. 그 중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필수 단어인 ‘불, 연소, 화재’의 구분이다. 불은 가연물이 단순하게 타는 것이고 연소는 어떤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 빛과 열을 내는 현상이다. 화재는 불로부터 시작되는 재난 또는 재앙이다.


우리나라 화재조사 및 보고규정에서는 화재를 ‘사람의 의도에 반하거나 고의에 의해 발생하는 연소 현상으로서 소화시설 등을 이용해 소화할 필요가 있거나 또는 화학적인 폭발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의 경우 급격한 산화과정으로 빛과 열을 내는 화학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영국은 불, 연소 등의 특이한 형태로 진행되는 연소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렇듯 다양한 국가에서 일컫는 화재의 정의도 우리 화재조사관이 인식해야 하는 지식 중 일부다.


가장 중요한 단어이자 반드시 구별해야 할 단어로는 ‘소훼와 소실’이 있다. 소훼(燒毁)는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없어지게 하는 것으로 즉 어떤 물질이 타다 남은 형태다. 소실(燒失)은 불에 타서 잃는 것, 어떤 물질이 타서 없어지는 형태로 정의된다. 잿더미 속에서 진실을 찾는 우리의 노력은 이런 기본에서부터 출발한다.


수많은 화재 현장을 마주하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화재조사관이다. 그곳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할 지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두터운 지식과 피나는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화재조사관의 길을 밝혀줄 유일한 빛이다. 화재조사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이야기의 서막을 연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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