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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비닐하우스 화재 부주의일까, 원인 미상일까’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2/28 [17:40]

[화재조사관 이야기] ‘비닐하우스 화재 부주의일까, 원인 미상일까’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2/28 [17:40]

과학적인 화재조사를 위해서는 기초 이론과 경험이 중요하다. 우리가 나아 가야할 길은 체계적인 화재조사를 통해 국민이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화재조사 분야는 단순하지 않다. 화재의 양상이나 원인 또한 다양한 사고 마다 모두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경험이다. 그 경험은 우리 화재조사관의 역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 조사 사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119플러스를 통해 실제 화재조사 사례에서 원인을 쫒았던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조사 과정의 이야기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당시 조사 상황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표현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비닐하우스 화재다. 어떤 사고였을까.
우리는 어떤 점을 근거로 조사의 결론을 냈을까.
한번 들여다 보자.


 

어느 날의 비닐하우스 화재

어느 해였을까. 그 해 3월 초순경 발생한 화재사고였다.
오후 10시께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한 불은 쉽게 진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 사고 당시 화재현장 


이 화재의 목격자는 “비닐하우스 인근에서 운동을 하던 중 ‘펑’, ‘펑’하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 주변을 둘러보니 비닐하우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했다. 다른 목격자는 “인근 다른 비닐하우스 내에 있는데 밖에서 ‘딱’, ‘딱’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 보니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불길이 솟았다”고 했다.


첫 번째 목격자는 비닐하우스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고 두 번째 목격자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두 목격자가 있을 땐 서로 본 발화지점이 일치하는지, 서로 다른 발화지점을 이야기 하는지, 어느 방향에서 불길을 목격했는지, 불기둥의 높이는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종합해야 한다.


흔히 비닐하우스는 원예용과 농업용으로 나뉜다. 간혹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도 있다. 이날 화재가 난 비닐하우스는 농예용과 주거용, 창고, 기숙사로 사용하는 구조였다. 비닐하우스의 경우 연소패턴 없이 소훼 또는 소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고였다.


흔히 “모든 화재에서는 재산피해가 필연적으로 나타나지만 인명피해는 숙명적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방방재 측면에서 인명피해는 최악의 재난이다. 화재는 예방이 최선이다. 하지만 발생한 사고는 최대한 빨리, 사력을 다해, 모든 소방력을 동원해 현장을 수습하고 인명피해 없이 재산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제1의 목표다.


당시 현장에는 소방대 도착 시 위 사진과 같이 비닐하우스 모든 동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어디에서 화재가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연소된 경우 발화지점을 찾는 것이 녹록치 않다. 화재조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 [그림1]비닐하우스 배치도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한 조사의 시작

화재발생 시간은 오후 10시께 초저녁에서 한밤을 지나는 시간이다. 너무 늦은 시간도 이른 시간도 아니다. 화재진압 중 사망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거의 모든 화재현장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망자가 있는 현장은 특히 더 하다.

 

사망자는 주거용 비닐하우스 출입구 부분에 앙와위 자세로 발견됐다. 아마도 화염으로부터 피난하려고 했던 것 같다. 비닐하우스 구조는 출입구가 3중으로 돼 있고 주거용은 비닐하우스 내부에 샌드위치패널로 주택을 축조해 사용했다([그림 1] 중 ③번 참조).


샌드위치패널에 석고보드 마감을 한 시설이다. 화재조사관 입장에서 본다면 내부 연소 패턴이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화재방어 측면에선 샌드위치패널은 최악의 재질이다. 진압수를 부려도 샌드위치패널 내부 단열재까지는 진압수가 들어가지 않아 모두 연소될 수밖에 없다.


화재조사관은 화재현장에 흐트러진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야만 발화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발화부 중 어느 지점에서 화재가 시작됐는지를 과학의 힘을 빌려 맞춰 나간다. 이날 역시 그랬다. 수열 패턴을 읽고 그을림 방향을 확인해야 하는 기본과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했다.

 

▲ [사진 2]진압 후 화재현장

 

화재진압 후의 상태부터 살폈다. 화마가 휩쓸고 간 건물은 [사진 2] 처럼 앙상하게 철골만 남았다. 화재의 방향성은 외형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조각난 화재 퍼즐을 맞춰 연소 확대 개연성을 찾고 화염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현장 조사에 임했다. 그리고 어느 현장에나 있는 소염구간을 찾는데 집중해 나갔다.

 

▲ [사진 3] 진압 후 화재현장, [사진 4] 보일러실  

 

조사 과정에서 보이는 ‘흔적들’

[사진 3]은 그림1의 ③번 비닐하우스 입구다.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 내부의 샌드위치패널은 그 도괴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수열방향으로 선행되는 만곡현상은 관찰하기 어렵다. 비닐하우스 철 파이프가 있어 수열방향으로 도괴되다 철 파이프에 걸려 원래의 반대방향으로 만곡 또는 도괴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분열흔적이 식별되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단정할 수 없었다. 하나하나 소거하는 방법을 택했다.


3월 초순경임을 고려할 때 당시 비닐하우스에서는 쌀쌀한 날씨 탓에 보일러를 가동했을 터다. 그러나 보일러실[사진 4]에는 연통이나 보일러 버너 부분에 출화흔적은 없고 오히려 외부에서 수열 받은 흔적으로 잔류돼 있었다. 주변 플라스틱도 살짝 용융된 형태로 잔류된 채 탄화되지는 않았다. 보일러실 벽면에 변색흔적은 보일러실 외부에서 수열에 의한 것으로 식별된다.


샌드위치패널의 수열온도에 따라 변색흔적이 달리 나타나고 화염이 분출한 형태가 식별되기에 어렵지 않게 화재의 방향성을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석고보드로 된 벽면 마감에서 하소현상이 식별돼 수열 방향성의 확인이 가능했다. 샌드위치패널과 석고보드 그리고 철 파이프의 그을림 형태 등을 볼 때 가장 심한 분열흔적이 잔류돼 있는 부분이 관찰됐다.

 

▲ [사진 5] 국부적인 탄화지점, [사진 6] 전기적 흔적  


샌드위치패널이 도괴된 방향과 만곡된 방향은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사진 5]. 무엇이 탄화됐는지, 왜 연소됐는지,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전선에는 용융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선의 용융만으로 발화지점과 화재원인을 규명하기엔 객관적인 부분을 한 번 더 고려해야 한다. 화재하중이 큰 부분은 용융이 더 진행될 것이고 화재하중이 작은 곳은 그대로 전기적 흔적이 존재할 것이다.


전선과 동 파이프가 용융[사진 6]된 것으로 추정하건데 이 부분은 온도가 1083℃ 이상 상승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 파이프와 전선이 용융돼 늘어진 형태는 수열에 의한 것으로 식별된다. 이어 사진 5와 같이 집중 탄화된 부분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 [사진 7] 탄화지점 확인, [사진 8] 중간밸브 확인  


집중 탄화된 지점에는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가스레인지 호스가 중간밸브와 분리된 상태로 확인됐다. ‘고의성이 있는지, 화염에 의해 이탈된 것인지’를 살펴봤지만 화염에 의해 가스호스 PVC 부분이 소실되며 분리된 것으로 식별됐다. [사진 7]의 적색 원 부분에 LPG 중간밸브가 있었기에 개방여부도 확인해 봤다.


중간밸브 외관만으로는 확인이 불가했지만 [사진 8]처럼 볼 밸브는 개방된 형태가 확인된다.


집중 탄화된 부분의 중심에는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측면에 위치한 선풍기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가스레인지 소훼 상태는 사용여부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용융돼 있었다.


가스레인지 좌측은 버너 연공부분이 모두 용융된 상태였고 우측은 수열 받은 형태로 관찰됐다. 좌측에 용융돼 응착된 부분은 조리기구 중 알루미늄 재질이었던 것으로 판단됐다. 가스레인지가 탄화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처럼 버너 연공부분까지 완전 용융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현상이다.


“가스레인지 동작이 의심된다”

이제는 종합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다. 이 화재현장에서는 전선의 용융점이 발굴됐지만 화재하중이 크게 작용한 탓에 전선은 수열에 의한 용융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전기적 이상점 흔적은 발굴하지 못했다.


서두의 그림1 비닐하우스 배치도에서 볼 때 ①번 비닐하우스 거주자의 진술은 “밖에서 ‘딱’, ‘딱’ 소리가 들려 나와 확인하니 ②번 비닐하우스 출입구까지 불길이 솟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철재의 만곡형태도 ②번 비닐하우스가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이 내부는 전기자재창고였다. 대부분의 가연물이었던 전선에서는 피복이 소실되며 화염이 크게 동반돼 나타난 현상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③번 비닐하우스의 경우 내부에 샌드위치패널이 설치돼 있고 내부에서 발화돼 비닐하우스 철 파이프의 만곡현상이 적게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 [사진 9] 중간밸브 확인, [사진 10] 발굴 


④번 비닐하우스의 경우 남쪽방향으로는 소훼도가 적게 나타나 있으며 ③번 안방으로 추정되는 부분과 맞닿은 부분의 소훼도가 심했다. 주방으로 사용했던 곳의 가스레인지 부분에서 분열흔적이 관찰되며 가스 중간밸브는 가스호스에서 이탈돼 가스레인지 상부에 소락돼 있었다.


연결된 가스호스가 염화비닐 재질로 돼 있고 결착은 철재밴드로 해 놓은 상태였다. 가스호스는 화염에 의해 염화비닐이 소실돼 중간밸브 이탈 후 소락된 것으로 보이고 벽면의 마감재가 석고보드로 이뤄져 연소 확대가 서서히 진행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측면 ④번 비닐하우스 소훼도가 적게 나타난 것도 ③번 비닐하우스 내부 마감재가 석고보드로 돼 있어 차열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11] 가스레인지 확인, [사진 12] 재현실험 가스레인지  


가스레인지 상부에 용융, 응착된 비철금속은 조리 기구로 관찰된다. 하단 버너 바디가 용융된 것은 가스레인지 자체발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철재 부분 내부에 있던 버너 바디가 용융된 것 역시 직접 화염에 대한 노출이 필요하다. 이는 가스레인지의 자체 발열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현장의 가스레인지 형태는 화재 재현실험에서 나타난 형태[사진 12]와도 유사한 것으로 관찰됐다.


이를 볼 때 가스레인지 위에는 조리기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이 주방에서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 앞에 앙와위 자세로 있었던 것은 화재를 늦게 인지하고 탈출하려다 연기에 질식되며 자구력을 상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화염의 진행 방향이 주방 부분에서 거실방향으로 나타나 있으며 벽면 석고보드에 보이는 화염흔적 역시 그 방향성을 나타냈다. 주변 탄화 형태에서도 유사하게 잔류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 있던 보일러 연료탱크의 개방 방향이 ③번 하우스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③번 비닐하우스로부터 수열 받은 형태로 관찰된다.

 

보일러실 소훼 형태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 있었다. 보일러실에 있던 플라스틱 구조물도 탄화되지 않고 일부 용융상태로 식별됐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소실 형태를 고려할 때 주방 쪽에서 주변으로의 분열흔적이 있다. 가스레인지 소훼 상태와 수열 흔적으로 볼 때 가스레인지에서 발열된 것으로 의심되는 화재다. 잔류된 증거를 비롯해 중간밸브 개방, 가스레인지 상판에 응착된 비철금속, 가스레인지 버너 바디의 용융 등을 종합할 때 이 화재는 ‘가스레인지가 동작 중 발생한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게 또 하나의 화재조사는 퍼즐이 맞춰졌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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