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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평소엔 괜찮았는데... 별일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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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4/07 [10:30]

[화재조사관 이야기] “평소엔 괜찮았는데... 별일 있으려고?”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4/07 [10:30]

누구나 평상시 잘못된 행동도 별일이 없으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이런 당연함이 통하지 않는다. 편의주의에서 오는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결과가 있어야 비로소 잘못을 인지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재난은 주의와 예방이 있을 때 우리와 멀어진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 그 대표적인 화재 사례가 있다. 평소와 같았지만 결국 재앙을 불러온 아홉 번째 화재 사례다.

 

어느 날 샌드위치 패널 작업장 화재

어느 해 1월 중순 오후 10시께 1층 샌드위치 패널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다. 날씨가 추워 밤사이 기계가 동결되면 작업에 지장이 생기는 것과 아침에 출근해 가동 시간이 늦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히터를 켜 놓은 채로 퇴근하곤 했다고 한다. 작업장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화재 당일도 평소처럼 당연히 히터를 켜 놓고 퇴근했다.

 

▲ [그림 1] 평면도


[그림 1]은 작업장 평면도다. 내부에는 레이저기 두 대가 있었고 레이저기 냉각 방식은 수랭식이었다. 작업자가 동파 방지를 위해 평소처럼 창문 인근에 히터를 설치하고 퇴근 전 켜 놓았다고 했다. 평소 화재 없이 잘 사용했지만 이날은 한 가지 실수한 게 있었다.

 

목격자 진술과 탄화 현상

목격자는 화재 발생 인근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공장 건물에서 숙식하는 그는 이날 취침 중 새벽에 소변을 보러 나왔다가 작업장 뒤편 창문에서 불꽃을 보고 신고를 했다. 당시 작업장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상태였고 작업장 내 모든 기계 역시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목격자가 화재 신고를 한 후 작업장으로 다가가 창문 너머로 봤을 땐 레이저기 부근에 불꽃이 나고 주변으로 연소 확대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했다.

 

▲ [사진 1] 외부 전경

 

건물 전면에서 보기엔 탄화흔적이 집중돼 나타난 부분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 전체로 볼 때 분열된 연소 패턴이 관찰되고 특히 지붕과 맞닿은 지점의 탄화흔적이 심하게 보인다. 이런 연소 패턴은 하단에서 화염이 시작돼 상부로 진행됐을 개연성이 크다. 

 

화염이 천장에 부딪혀 수평 이동하는 구간으로 화염이 머무르는 시간이 수직 벽면보다 길기 때문에 탄화흔적이 깊게 형성된다. 외벽에 형성된 연소 패턴은 전형적인 ‘V’ 패턴이었다. “이렇게 쉽게 드러나는 발화지점도 있구나…” 외관상 ‘V’자 형태가 나타난다는 건 하단부에 발화지점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재조사관은 쉽게 판단하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칫 선입견에 빠져 탄화 형상만을 보고 발화지점을 판단한다면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현장 증거, 탄화 패턴, 목격자 진술 등이 일치할 때 비로소 발화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내ㆍ외부의 연소 패턴을 비교하라

샌드위치 패널의 경우 건물 내부와 외부의 연소 패턴이 다르게 나타나기에 건물 내부에 형성된 연소 패턴과 외부에 형성된 연소 패턴을 비교해야 한다. 직접 화염에 노출된 부분과 간접으로 전도열에 의해 수열 받은 부분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사진 2] 화재 건물 내부

 

건물 외부에 형성된 연소 패턴보다 내부에 형성된 패턴이 심하게 식별되고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즉 연소 방향성이 건물 외부에서처럼 한눈에 들어오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쨌든 연소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주변 가연물이나 구조물의 수열 형태, 연소 형태, 용융 형태 등으로 다양하게 화염의 진행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재조사관은 현장에 잔류한 연소 패턴과 잔류한 구조물이 보여주는 형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조합을 통해 연소 진행 방향을 추론한다. 이때 독단적인 생각으로 현장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

 

건물 외부에서 봤을 때 단순히 ‘V’ 모양의 수열 패턴이 식별됐지만 내부는 전체적으로 한 벽면이 탄화된 형태였고 ‘V’자 보단 ‘U’ 형태로 관찰됐다. 이런 경우 벽면 가까운 지점에 발화지점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벽면에서 거리가 있는 지점이 발화부일 가능성이 크다.

 

평면도의 구조물을 확인하라

평면도와 현장을 비교해 레이저기, 히터, 재료, 기계의 전ㆍ후 등을 확인하고 진압과정에서 위치 이동은 없었는지, 구조가 변경됐는지 등을 살펴 현장을 복원할 수 있다면 복원 후 연소 패턴을 확인하는 게 옳다. 하지만 모든 현장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복원 가능한 현장은 거의 전무하고 몇몇 현장만 복원할 수 있다. 이 화재 현장은 복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샌드위치 패널은 소락돼 뒤얽혀 있었고 기계류나 잔류물들이 화염에 의해 용융되고 소락돼 사실상 발굴이 어려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현장을 발굴하고 소락된 구조물을 제자리로 옮겨 확인해야 한다.

 

작업자가 진술했던 히터 위치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잔해를 찾기 시작했다. 먼저 켜 놨었다는 히터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을 살폈다.

 

▲ [사진 3] 히터 위치

 

히터의 잔해를 찾았다. 히터는 전면 망이 이탈된 채 석영유리가 파손되지 않은 원형 상태로 발굴됐다. 출화 흔적은 관찰되지 않았다. 

 

관계자 진술처럼 퇴근 전 히터를 켜놨다면 과열이나 출화를 생각해 히터를 발화 원인으로 생각하고 조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부분은 주의가 필요하다. 작동 시 발열한다는 사실만을 고려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히터 자체가 과열돼 출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가연물의 위치, 유동 등에 따라 복사열을 고려해야 한다. 히터 자체는 흔적이 없고 오히려 수열을 받은 형상이 잔류되기 때문이다. 히터가 발열하고 가연물의 접촉으로 발화됐다면 히터에 흔적이 남겠지만 복사열에 의해 주변 가연물을 연소시킨 경우라면 히터 자체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 [사진 4] 히터 확인


실제 히터를 확인하니 출화 흔적보단 오히려 외부에서 수열 받은 형태로 관찰됐고 [사진 4]의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석영유리 부분은 군청색으로 변색된 상태다. 하단과 상단의 변색 흔적 차이도 확연하게 식별된다.

 

통전 여부를 확인하라

현장에 히터는 켜 놓고 다른 기기의 전원을 끄고 퇴근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전원을 껐다는 건 차단기를 내려 전기를 차단한 게 아니라 기기에 부착된 스위치를 OFF 했다는 얘기다. 통전을 확인하기 위해 분전반을 확인했다.

 

▲ [사진 5] 분전반


분전반 차단기는 2개가 트립(Trip)돼 있었고 다른 특이점은 관찰되지 않았다. 차단기가 트립된 형태는 전기가 통전되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통전됐는지, 발화지점으로 추론되는 부분에서 전기적 흔적이 있는지, 발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은 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사진 6] 단락 흔적


단락 흔적만으로 발화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발화지점으로 추론되는 지점에서 단락 흔적이 발굴됐다면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일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전선의 피복이 왜 손상됐을까를 고려해야 한다. [사진 6]의 전선은 상당한 굵기고 피복 또한 이중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전선의 피복을 손상 시킬 수 있는 에너지원은 뭐였을까? 경년열화? 반단선? 접촉저항?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한다. 

 

통전되는 부하 측을 확인하라

전기적 원인이라면 전선 말단 부하 측부터 확인하는 게 순리고 정답이다. 전선에서 단락 흔적은 확인됐고 말단이라면 레이저기와 히터가 있었다. 히터 발열 형태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간과하면 안 된다. 내부 전선을 살펴 전기적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기적 이상이 있다면 그것이 발화 원인일 수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조사 활동은 원인을 찾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소거법에 의해 하나하나 배제하면서 화재 원인에 최대한 근사치로 접근해야 한다.

 

▲ [사진 7] 기기전선 단락 흔적


히터 내부 전선과 전원선에서 용융 흔적이 관찰됐고 현장에서 식별되는 것은 용융 흔적과 모재부, 모재부와 용융 경계부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점으로 볼 때 단락 흔적으로 판단된다. 앞에서 기록한 내용과 같이 단락 흔적이 있다고 그것이 반드시 발화 원인은 아니다. 단락 흔적이 형성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주변 가연물의 연소 형태를 살펴야 한다.

 

▲ [사진 8] 구조물 위치

 

연소 패턴과 발화 원인을 비교하라

집중 탄화 지점에 있던 가연물은 모두 소실되고 불연성 재질만 잔류 돼 있었다. 히터가 발굴된 지점을 중심으로 샌드위치 패널 철재가 군청색으로 변색한 형태는 가장 오래 수열받은 형태로 판단됐다. 벽면에 잔류 된 분열 흔적 또한 하단부터 시작된 분열 흔적으로 식별된다.

 

잔류 패턴만으로 볼 때 바닥에서 시작된 화염이 상부와 우측으로 진행된 게 관찰되고 좌측은 창문이 있어 연소 패턴의 연속성이 없다. 히터가 발굴된 곳이 발화지점이라면 히터가 떨어지고 화재가 발생했을까? 화재가 발생하고 히터가 떨어졌을까? 하는 고민이 남는다. 연소 패턴은 분명 히터 발굴지점에서 화염이 시작된 것 같은데….

 

▲ [사진 9] 동일 히터


[사진 9]는 레이저기 헤드 위에 설치됐던 히터와 동일한 모델이다. 전선을 이은 부분도 확인되고 간단하게 고정해 사용했다. 고정된 형태는 히터를 고정하기엔 충분하다고 판단됐고 히터가 발열해 소락됐을 가능성보단 연소과정에서 지지대나 벽면의 샌드위치 패널이 붕괴하면서 히터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소 시작점은 히터가 아니라 히터 외 부분에서 발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 가연물을 확인하라

주변에 있던 가연물은 뭐였을까? 확인이 필요하다. 히터 복사열에 의해 연소할 가연물이 있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주변 잔류물과 구조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 [사진 10] 주변 가연물

 

레이저기 주변 [사진 10]에는 커튼처럼 설치된 플라스틱과 아크릴 막이 있었다. 레이저기 헤드 방향으로는 모두 소실됐고 사진 하단처럼 백색 PVC 구조물이 잔류돼 있었다. 레이저기 상단에 켜 놨던 전기히터 복사열에 의해 가연물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론된다.

 

전선의 단락과 용융 여부를 확인하다

히터 전선의 용융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금속조직을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금속조직은 조대화가 확인되고 일부는 경계면과 공극 그리고 주상조직이 확인된다. 화재 현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때 현장에 잔류된 물리적 증거는 전기적 요인이었고 추론되는 또 다른 화재 원인은 부주의로 판단됐다

▲ [사진 11] 히터 전선 금속조직

 

객관적인 결론은… ‘부주의’

전기의 통전 상태는 차단기 트립으로 확인되며 발화부 추정 부분에서 다수 용융 흔적이 관찰되는 점 등으로 볼 때 전기적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전기히터를 켜 놓고 퇴근했다는 진술에 따라 복사열에 의한 화재 개연성이 조심스럽게 추정되며 이는 전기적 요인보다는 부주의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부주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관계인 김모씨는 오후 7시 30분께 퇴근 시 레이저 동파 방지를 위해 레이저 헤드 상부에 히터를 ‘강’으로 켜 놓고 퇴근했다는 진술을 했다. 또 소락된 히터 부분에서 좌ㆍ우측과 직ㆍ상부로 분열 흔적과 변색 흔적이 관찰되고 히터 전선에서 용융점이 관찰되는 점 등을 볼 때 수열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상부 히터 복사열에 의해 주변 가연물에 착화돼 연소 과정에서 벽에 설치된 히터가 소락된 것으로 추정되며 히터가 자동으로 작동되더라도 화기 취급 감시원 없이 히터를 켜 놓고 퇴근한 것은 인적 부주의로 볼 수 있다.

 

이제 현장 조사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작업장 내부의 전기는 통전된 상태, 기계는 미작동하는 상황이었다. 건물 내ㆍ외부에 폐쇄회로가 작동하고 있어 외부인의 출입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폐쇄회로에서 발화지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레이저 기계 중간 부분에서 창문 방향으로 분열 흔적이 관찰되고 관계자 김모씨는 창문 중간 부분에 히터를 켜 놓고 퇴근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레이저 기계 내부 냉각계통에 사용하는 물이 결빙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레이저 기계 중간 부분과 분열 흔적 관찰 부분에서 전선 용융 흔적이 발굴되고 분열 흔적 중심 부분에서 히터가 발굴된 점으로 볼 때 관계자 김모씨 진술 내용과 일치한다. 히터 소락 부분을 중심으로 집중 탄화된 건 벽면 히터 복사열에 의해 레이저기 주변에 있던 PVC와 가연물에 착화돼 연소하는 과정에서 화염이 바닥으로 떨어져 재발화한 화재로 추정된다. 이 화재 사고를 결론짓자면 궁극적인 화재 원인은 ‘벽면의 히터를 켜 놓고 퇴근한 인적 부주의’라 하겠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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