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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발화부는 어디일까, 또 화재 원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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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4/14 [16:40]

[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발화부는 어디일까, 또 화재 원인은 무엇일까?”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4/14 [16:40]

화재조사관은 잿더미가 돼버린 화재 현장에서 진실이란 퍼즐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변수를 찾아 맞추곤 한다. 아주 작은 증거나 현상을 찾아 추론하고 연소 방향성을 찾는다. 화재가 발생하면 반드시 최초 연소 시작점이 있다. 그 시작점을 찾아야 화재 원인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척 간단하지만 최초 연소 시작점을 찾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다. 최초 발화지점이 어디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장은 무수히 많다. 뭔가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으나 심증만 남은 현장도 있다.

 

어느 날 단독주택 화재

열한 번째로 소개하는 사례는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일 새벽 무렵 한적한 마을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다. 화재 당시 두부 작업장과 인접한 주택 내에는 아무도 없었고 법당과 인접한 주택 내부에는 세 명이 취침 중이었다.

 

마을 주민인 신고자는 아주 먼 곳에서 검은 연기가 보여 쳐다보던 중 순간적으로 연소 확대가 이뤄졌다고 했다. 목격자가 오전 1시께 아주 멀리서 본 것이기에 발화지점이 어딘지 확실치 않았다.

 

화재 현장에서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주택 내부 법당과 주택 외부 두부를 만드는 아궁이 등 두 곳이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했을 땐 두부를 만드는 구조물과 부뚜막, 가스시설 일부를 굴삭기로 잔화 정리한 상태였다. 의심되는 발화지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 경우 조사 결과를 단순하게 ‘굴삭기를 이용해 발화부가 없어진 관계로 미상’으로 처리해도 누구 하나 화재조사관을 탓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화재조사관의 자존심은 발화지점을 찾고 더 나아가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다.

 

▲ [사진 1] 화재장소 

 

현장에 잔류한 목재의 탄화방향은 멸실된 두부 생산 작업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굴삭기로 현장을 정리했기 때문에 남은 화재 원인은 없었다.

 

가끔 있는 일이다. 화재지점이나 화재 원인이 될 만한 잔류물은 남겨놓기 마련인데 이 현장에서 잔류한 거라곤 타다 남은 목재뿐이었다.

 

▲ [사진 2] 두부 작업장

 

두부를 만들던 작업장은 가스버너와 장작불을 사용했다고 한다. 화재 당일 가스버너는 껐고 장작불은 불씨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진과 같이 잔류한 증거물은 없었다. 관계자 진술에 따라 가스버너를 사용한 부분과 장작불을 사용한 아궁이는 구분할 수 있었다. 특이점은 장작불을 사용하던 우측 건물 외벽에 ‘U’ 패턴이 나타나 있었다. 이는 벽면과 떨어진 지점에 화염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굴삭기로 잔화 정리를 하면 화재 원인을 발굴할 때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찾아보면 현장을 알리는 증거물들이 있다. 바닥에 고정된 목재나 철재에는 수열 방향성 등이 남기 마련이다.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잔류한 증거물을 세밀하게 살피면 방향성이 보이기도 한다.

 

목재나 철재가 아니더라도 적은 수열에 반응하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용융ㆍ연화 방향을 확인하면 화염의 진행 방향을 추정할 수 있다. 발화지점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냥 ‘미상’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찾는 데까지는 해본 후 발화지점이라도 찾아 규명하는 게 화재조사관의 자존심이고 직무다.

 

여러 방향에서 현장을 살펴라!

▲ [사진 3] 연소 방향성


샌드위치 패널 상단 수열 방향성과 전봇대 아래 플라스틱 통의 용융된 방향성, 아궁이가 있던 부분 등 수열 형태를 역산하면 장작불 아궁이에서 분열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 [사진 4] 목재 탄화방향

 

목재가 연소하고 균열이 발생한 방향이 식별된다. [사진 4]에 있는 목재 탄화방향이 아궁이 쪽을 향하고 있는 형태로 확인된다. 이처럼 주변 연소 잔류물들이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어 두부를 만들던 작업장을 발화지점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한 조각 퍼즐이 맞았다고 해서 모든 퍼즐이 맞아 그림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연소 잔류물을 이용해 화염 방향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가연물이 많은 지점은 잘 타고 화염이 분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화염이나 불꽃이 날아서 흩어져 연소 확대됐을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독화재의 경우 발화지점이 확연하겠지만 이 현장은 주택과 작업장이 있어 연소 연속성을 확인해 봐야 했다.

 

연소 확대 지점을 확인하라!

▲ [사진 5] 연소 진행

 

[사진 5]를 보면 두부를 생산하던 작업장, 즉 장작불 아궁이가 있던 부분에서 주택 방향으로 연소한 형태가 관찰된다. 이때 주택에서 화염이 시작돼 주변으로 연소 확대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택에서 발화했다면 한 방향으로만 연소하지 않았을 거다. 

 

이 현장은 특이하게도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굴삭기로 정리했고 주택은 연소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통상적으로 가장 많이 타고 가장 오래 타는 부분이 발화부일 가능성이 크다. 이 조건은 가연물의 조건과 산소 공급조건이 비슷하거나 같은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 유입조건이 다른 부분을 비교하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 [사진 6] 연소 특이점

 

주변 미연소, 미 변색 부분을 확인하라!

[사진 6]을 보면 주택 뒤편으로 연소 특이점이 관찰된다. 핸들 카와 지붕의 청색이 변색하지 않은 채 잔류 된 것은 연소에 의한 화염 전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주택에서 발화된 건지, 두부 작업장에서 발화된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핸들 카는 두부 작업장과 주택 중간 지점에 있었고 손잡이 부분이 변색하지 않았다는 건 두부 작업장에서 발화됐든 주택에서 발화됐든 핸들 카 부분까지는 화염 전파가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각각 독립돼 발화했을 가능성까지도 조사했던 현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발화 당시 두부 작업장이나 주택에 사람이 외출하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제삼자에 의한 방화가 의심된다. 보험 가입 여부나 보험 금액에 따른 의심도 생긴다. 의심할 때는 내부 연소 형태나 가연물, 가재도구 위치, 탄화형태 등을 모두 살펴 조심스럽게 결론 내려야 한다. 인위적 착화 가능성은 현장에 잔류 된 물적 증거들이 있어야 한다. 정황만으로 인위적 착화 개연성을 논한다면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화된 가연물 위치가 부자연스럽거나 전도된 상태로 연소한 형상 또는 현저하게 가재도구가 적거나 밀집돼 탄화된 형상이 관찰된다면 인위적 착화를 의심해 봐야 한다.

 

인위적 착화는 범죄이므로 신중함에 신중함을 기울여 조사해야 한다. 외부인이든 내부인이든 관계없이 철저하게 조사하고 충분하게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증거 없이 추측만으로 인위적 착화를 의심한다면 자칫 엉뚱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연소 방향성을 세밀하게 살펴라!

주택 내부는 전체적으로 하방 연소한 형태로 관찰됐다. 

 

▲ [사진 7] 주택 거실


거실 소파는 겉 부분만 소훼되고 내부 부속물은 탄화되지 않은 채 잔류 돼 있었다. 외부와 면하는 부분은 연소 상태가 심했고 안쪽은 덜했다.

 

▲ [사진 8] 거실

 

거실 부분은 전체적으로 천장 부분이 많이 소실됐다. 바닥에는 미연소한 형태도 관찰됐다. 그렇다면 주택 거실은 발화지점에서 배제할 수 있다. 거실은 연소가 확대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반자 위로 연소 확대되며 하방 연소가 진행된 패턴으로 관찰됐다. 전기시설에는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고 거실에서는 분열 흔적이 보였지만 특정되는 탄화지점이 없었다.

 

연소 특이점을 확인하라!

발화지점이든 아니든 연소 특이점을 확인하고 연소 방향성을 살펴야 한다.

 

▲ [사진 9] 법당(무속신앙의 굿당)

 

거실 한쪽 부분에 법당(무속신앙의 굿당)이 있었는데 유독 완전연소에 가까운 형태로 깨끗하게 연소한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법당 뒤쪽은 창문으로 개방된 공간이었다. 화재 신고 시간이 오전 1시께인데 화재 발생 2시간 30분 전인 오후 10시 30분께까지 굿을 했다고 한다. 

 

법당은 이상하리만큼 전소됐고 에어컨과 창문틀에 방향성을 남겨놨다.

 

▲ [사진 10] 화염 방향성


연소 방향이 에어컨에서 밖으로 하방 연소한 형태인지, 외부에서 내부로 입화(入火)되며 상방 연소한 건지 확인해야 했다. 

▲ [사진 11] 창문틀 용융 방향

 

창문틀 용융 방향이 내부에서 외부로 용융돼 있고 외부보다 내부가 더 많은 용융 형태를 나타냈기에 화염이 내부에서 외부로 진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굿을 하고 촛불을 켜 놓은 상태에서 외출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 [사진 12] 연소기구 확인


법당에 있던 연소기구는 작동 여부를 논할 수 없었다. 버너 부분의 용융 상태가 심하고 확인이 불가한 상태였으며 연소기구 밸브 네 개가 모두 한 방향으로 위치한 걸 볼 때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하지 않는 연소ㆍ발열 기기 모두 확인하라!

▲ [사진 13] 화목 보일러

 

주택 난방은 화목보일러를 이용했다. 화재 발생 시기가 9월 말께로 보일러를 가동하기에는 다소 더운 날씨로 판단됐지만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화목보일러 내부 연소 잔류물은 탄화한 지 오래된 모습이었다. 내부에 풋고추가 있는 것으로 봐 화목보일러 사용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내렸다.

 

▲ [사진 14] 정온전선


법당 뒤쪽으로 연결된 수도 배관의 동파 방지를 위해 설치한 정온전선을 확인한바 플러그는 뽑혀 있었고 발열이나 용융 흔적 등 특이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 [사진 15] 화목 보일러 주변

 

화목 보일러 주변으로 연소한 형태가 관찰되지만 화목보일러는 동작하지 않았다. 주변에 적치된 가연물이 연소하며 나타난 현상으로 확인했다.

 

건물을 둘러봐도 출화지점은 두부를 만드는 작업장으로 여겨지지만 단정할 수 없었다. 주택 내부에서도 분열 흔적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특히 신고자가 원거리에서 검은 연기를 보고 확인하던 중 불길이 솟았다고 하는 건 플래시오버(Flashover) 현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현장에서 자연적 요인(태양에 의한 화재)은 새벽에 발생했기 때문에 배제된다.

 

방화 가능성은 두부 작업장 주변에서 관찰되는 분열흔이나 법당 내부에서 외부로 출화된 형태로 관찰되는 분열 흔적 등을 종합할 때 인위적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스누출에 의한 가능성은 법당 내부에서 가스레인지가 설치된 건 맞지만 연결해 사용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했다. 게다가 관계자는 가스 호스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로 보관만 했다고 진술했다. 

 

거주자는 오후 10시 30분까지 굿을 했다. “굿을 하고 촛불과 향불을 켜놓고 외출했다”고 진술했다가 “굿을 하고 촛불과 향불을 모두 껐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따라서 분열 흔이 법당에서부터 관찰된 상황이라 향불에 의한 발화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엉뚱한 발화지점… ‘법당’

신고자는 원거리에서 검은 연기가 보여 확인하던 중 순간적으로 연소가 확대됐다고 진술했다. 이는 인위적 개연성이나 일부 밀폐된 공간에서 화재 발생 후 진행 과정 중 플래시오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계인의 진술은 화재 당일 오후 10시 30분까지 굿을 했고 굿을 할 당시에는 촛불과 향불을 피웠으나 굿이 끝난 후 촛불과 향불을 모두 끄고 상을 풀어 음식 등을 제사상에서 모두 내려놨다고 했다.

 

“평소에는 굿이 있는 날은 외출하지 않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이날은 굿이 끝나고 무언가 밖에서 끌어당기는 게 있어 외출했다”고 진술했지만 화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게 확인됐다. 

 

분열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곳은 법당이다. 두부 제조 작업장은 개방된 장소인 데다가 “연기가 보여 확인하니 순식간에 연소 확대가 있었다”는 신고내용을 보면 훈소 형태 또는 산소 부족으로 불완전 연소 상태에서 공기의 유입으로 순식간에 유염 연소로 변환돼 화염이 분출한 것으로 사료된다.

 

두부 제조 작업장은 아궁이가 있고 불을 피워 두부를 제조하는 개방된 공간이라 플래시오버 형태의 화염 확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두부 제조 작업을 화재 발생 삼 일 전 모두 마치고 더 이상의 작업은 없었다고 했다.

 

법당과 인접한 주택 내부에는 세 명이 취침 중이었고 소훼 상태는 다른 곳보다 미연소로 잔류 된 부분이 많았다. 법당은 거실과 신전을 차린 곳으로 나눠진 구조다. 내부의 제단과 구성물은 모두 소실됐고 창문틀에는 내부에서 외부로 진행된 화염이 나타난 용융 흔적이 보였다. 

 

또 소락된 유리도 외부보다 내부로 더 많은 양이 관찰돼 발화부로 추정된다. 전기는 통전 됐으나 전선에서 용융 흔적이 관찰되지 않았고 법당 거실에 잔류 된 가스레인지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있었다. 게다가 가스 호스와 가스레인지가 탈락해 남아 있었다.

 

진압과정에서 탈락한 건지, 설치가 안 된 건지 확인은 어렵지만 남겨진 가스 호스를 보면 중간밸브가 없어 사용은 하지 않았더라도 잔류한 형태로 보아 가스 호스를 연결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분열 흔적, 연소 패턴, 탄화심도, 연소 방향성 등과 전기, 가스, 부주의, 화학적 부분 등을 살펴보고 발화지점을 법당으로 추정했다.

 

화인은 특정할 수 없는 화재로 두부 작업장 주변을 감식하고 관계인 진술과 잔류패턴을 비교한 결과 두부 작업장이 발화부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연소한 모든 부분을 조사하고 나니 발화지점이 엉뚱한 곳에 있었던 화재 현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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