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1 - 구급차는 오늘도 달린다.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0/05/20 [15:1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1 - 구급차는 오늘도 달린다.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0/05/20 [15:10]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으로 가는 동안 구급대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가 많다. 사실 하소연에 가까운데 ‘얼마나 속이 상하면 처음 보는 구급대원에게 저런 속 깊은 얘기를 하실까’하는 감정의 동화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 팀 구급대원들이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그런지 환자나 보호자가 시시콜콜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어쩌면 이런 것도 구급대원의 능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점심시간 밥 몇 술 뜨자마자 또 출동지령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구급차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을 한참 동안 달려가니 그제야 허름한 맨션이 보인다. 

 

신고자는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노(老)신사인데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걸이가 흔들림이 없는 게 굉장히 정정해 보였다. 함께 계신 자그마한 체구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께서 구토를 계속해서 신고했다고 하셨다.

 

"어머님 차가 많이 흔들려서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환자는 눈만 맞추고 아무 대꾸가 없다.

"환자가 말씀을 못 하시나요?"

“아, 이 사람이 뇌경색 때문에 말을 못 해요”

"아 그럼 신고자분은 관계가? 아드님 되시나요?" 

“껄껄껄… 이 사람이 제 아내고 제가 남편입니다”

“아이고, 결례했습니다. 죄송해요”

 

할머니가 ‘호호호’ 웃으신다. 이빨도 많이 빠져 성성한 잇몸이지만 순박한 웃음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말씀은 못 하시지만 우리 구급대원의 얘기가 우스우셨나 보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보호자가 어렵사리 예전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한마디, 한마디에 후회가 묻어나왔다.

 

"1998년이니 20년이 넘었네… 집사람이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D 병원에 갔었지. 사진도 찍고 검사도 다 했는데 의사가 단순 감기라고 진단해서 약을 받아 집에 왔단 말이야. 근데 이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 20분 만에 쓰러진 거야. 참, 나… 그래서 다른 D 병원에 갔는데 혈전용해제를 사용하다 혈관이 터져서 의사가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거야. 다른 병원에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갔단 말이지. B 병원 와서야 OO 박사님을 만나서 머리를 열고 수술했는데 그날 이후로 한쪽을 못 쓰고 말도 못 하게 돼버렸지 뭐…"

 

응급의료시스템이 열악했던 20년 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이 사람 47살 때니까… 참 안타깝지!"

 

70세가 넘은 노신사는 마비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맞추고 계셨다. 젊은 시절 얼마나 사랑했으면 20년이 넘는 세월을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도 들었다.

 

병원 의료진에 환자를 인계하고 나오려고 하니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가 밖으로 따라 나오시려고 한다.

 

“아이고 나오지 마십시오. 진료 잘 받으세요”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응급실 간호사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한 명의 환자겠지만 구급차는 이런저런 사연을 가득 싣고 부산 이곳저곳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재현의 구급일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119TalkTalk
[119TalkTalk] “소방공무원 안전이 도민 안전 지킬 수 있는 근간” 손정호 충청남도소방본부장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