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도급) 의무화 시행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소방청은 하위법령 개정 작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온전한 시행을 위해서는 법률에서 시행령으로 위임한 분리발주 예외 규정의 구체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행령의 형상은 앞으로 분리발주 제도 정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골자 형태에 따라 제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려낼지가 판가름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9일 공포된 ‘소방시설공사업법’에는 소방시설공사를 다른 업종 공사와 분리도급하지 않으면 3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사의 성질상 또는 기술관리상 분리도급이 곤란한 경우 분리도급을 안 해도 된다. 시행령에선 이 예외 범주가 구체적으로 설정된다.
지난달 25일 소방청이 입법 예고한 ‘소방시설공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소방공사 분리도급의 예외 대상을 네 가지를 설정했다. 재난으로 인한 긴급 공사, 국방ㆍ국가안보 등 기밀 유지 공사, 1천㎡ 이하 시설 중 비교적 단순한 소방공사, 특정소방대상물의 임시소방시설 공사 등이다.
이로써 소규모를 제외한 대다수 건축물은 소방시설공사를 분리도급해야 한다. 문제는 하위법령 개정안을 두고 정부 부처와 관련 업계가 각기 다른 시선을 보인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분리발주 예외 범주를 느슨하게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술형 입찰과 공사 하자 책임 구분이 어려운 경우 등을 예로 든다. 또 분리도급 시 공기 지연이나 공사비용이 증가하는 경우와 착공신고 대상이 아닌 대상물에서도 분리도급을 예외 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소방시설공사를 전문으로 수행해온 업계도 다양한 시각을 내비친다. 기계와 전기로 구분돼 공사가 이뤄지는 특성상 전기와 기계를 별도 분리해 발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민간 발주 건에 대해서는 하도급을 전면 허용해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또 민간 부분에선 탄력적인 하도급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사실 지금의 소방공사는 종합건설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연명한다. 고질적인 하도급의 병폐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는 게 현재의 소방공사업계 모습이다.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종합건설사의 부속 공종으로 전락한 소방공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더 나은 발전을 이루려면 진통은 따를 수밖에 없다. 달라지는 환경에 맞춘 업계의 변화 역시 발전을 위한 진통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소방시설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분리발주에 이어 관련 제도의 손질도 뒤따라야 한다. 과거 분리발주 규정 부재에 따라 만든 다단계 하도급 방지를 위한 ‘1차 하도급 규정’과 소방기술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배치 제도가 대표적 예다. 또 소방시설업의 내실화를 위한 등록기준의 손질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는 20년 넘게 건설업계 힘에 밀려 이루지 못한 소방산업의 숙원이었다. 이는 하도급 병폐 해소를 위한 방안이자 소방 공종에 적정 공사 금액 투입을 가능하게 만들어 소방시설의 품질 향상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나아가 소방공종의 독립성과 안정화를 실현해 국민을 화재로부터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도 도입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다. 국회의원 수백명과 국민이 손을 들어준 분리발주 제도의 도입 취지를 훼손하는 시행령을 만들어선 결코 안 된다는 얘기다.
고초 끝에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토록 어렵게 도입한 분리발주 제도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선 양보와 타협이 아닌 제도 도입의 근본적인 취지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