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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무엇이 잘못됐나? 기계적 요인인가? 사용자 부주의인가?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7/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무엇이 잘못됐나? 기계적 요인인가? 사용자 부주의인가?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7/20 [10:00]

가정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들은 제조사에서 안전하게 설계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판매된다. 제품에 대한 사용설명서는 현대 사회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제품에 포함돼 있으나 어찌 보면 3초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 사용자는 어떤 제품을 살 때 그 제품이 필요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제품을 사기 전 사용법을 어느 정도 익힌 상태거나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제품 포장을 뜯고 확인하면서 사용설명서가 보이면 포장과 함께 버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우리 일상생활에서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의 경우 사용설명서는 상당히 내용이 방대하다.

 

휴대전화는 제조사와 상관없이 기호에 맞게 모델을 선택해 구매ㆍ사용한다. 국내 제품이든 외국 제품이든 대부분 사용법을 알고 있어 사용설명서는 그대로 포장기에 넣어 보관하든지 아니면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사용설명서는 필수품이면서 환영받지 못하고 홀대받는다.

 

전기ㆍ전자 제품에 동봉된 사용설명서는 한 번쯤 꼭 읽어보길 권장한다. 특히 계절 용품의 경우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주의사항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기장판이나 담요에는 천연고무 제품인 ‘라텍스 제품과 혼용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있는데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용한다. 

 

화재 피해자와 대화하다 보면 “같이 사용해도 이상 없었고 그간 잘 사용했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람이 사용하고 있을 때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바로 알아채고 사용을 중단하거나 이상 요인을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 없이 방치돼 있을 땐 어떨까?

 

전기장판과 라텍스를 혼용하고 그대로 두면 화재라는 재난으로 다가오는데 이런 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다. 사용설명서에 있는 주의사항을 한 번만이라도 읽고 안전수칙을 준수했더라면 사고 발생 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거다.

 

목격자 진술을 청취하라!

어느 해 겨울 다세대 주택 2층 거실에서 발생한 화재다. 목격자 조모씨는 “건물 밖에서 창문 부근에 화염이 솟구치는 걸 봤다”고 했다. 

 

인근 주민 우모씨는 화재 당일 병원 진료를 마치고 귀가 중 집 주변에서 종이 타는 냄새를 맡았으나 별다른 생각 없이 귀가했다. 오후 4시 10분께 식사를 하려고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방에서 나오면서 “아빠, 창문 너머 이웃집에 불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우 씨는 평소 이웃집 아저씨가 거동이 불편해 밖으로 나오지 않고 거실에서 생활하는 걸 알고 있었다. 우 씨는 “이웃집 아저씨를 대피시키기 위해 옆집으로 가는 도중 귀가하는 옆집 아주머니와 만났다. 먼저 화재 발생 주택으로 들어가 보니 아저씨가 화장실 앞에 서 있었고 불길은 침대 쪽 벽에 붙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 [사진 1] 화재가 발생한 주택


화재주택은 2층이었고 외부로 화염 분출이 적었던 것으로 식별됐다. 발코니 부분에 그을림만 일부 관찰되고 심하게 연소한 부분은 관찰되지 않았다.

 

▲ [사진 2] 거실


연소 패턴과 화염 방향을 생각하라!

거실 목재에 나타난 연소 흔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화염이 전파한 형태로 관찰됐다. 천장 마감재는 소실된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거실 바닥 부분에는 미연소 구간이 관찰됐다. 미연소 구간은 화염이 닿지 않은 곳으로 거실 사진에서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천장에서 하단으로 화염이 진행한 것처럼 보였다.

 

▲ [사진 3] 연소 패턴


적색 사각 부분은 화장실이다. 벽면에는 위에서 아래로 연소한 패턴이 관찰되고 일정 지점에 중성대1)가 형성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중성대가 형성된 부분은 대부분 발화지점일 가능성이 낮다.

 

또 냉장고에 잔류한 화염전파 흔적은 ‘U’ 패턴으로 관찰되고 전체적으로 복사열2)에 의한 형태로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화장실과 냉장고 주변은 직접 발화지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 [사진 4] 벽면 소훼 형태


화장실 문이 열린 상태와 닫힌 상태에서 연소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닫고 열어봤다. 확인 결과 화장실 출입문이 열린 상태에서 화염이 전파된 상황으로 판단된다. 열린 상태에서 냉장고에 잔류한 화염전파 패턴과 우측 벽 연소 패턴 높낮이에 차이가 있는 형태로 관찰됐다.

 

개방된 상태에서 연소한 흔적과 화장실 우측 벽에 잔류한 연소 흔적이 일직선상에 있는 것으로 식별됐다. 닫힌 상태로 연소했다면 문짝 안쪽보단 밖에 더 많은 소훼 상태가 잔류해야 함에도 안쪽 소훼 상태가 심하게 식별됐기 때문이다.

 

▲ [사진 5] 벽면 목재


패턴을 단정하지 마라!

벽면 목재에 화살표 패턴이 관찰된다. 좌측에 창문이 있어 공기 유입으로 인해 가연물의 소훼 상태가 심하게 잔류할 수 있다. 공기 유입으로 잔류한 패턴일 수도 있고 발화지점이기에 연소 흔적이 잔류한 것일 수도 있다.  

 

▲ [사진 6] 거실 장식장


장식장 위 TV가 심하게 소훼됐다. 장식장 하단이 탄화한 형태로 관찰된다. TV가 있던 장식장 바로 뒤 목재는 소훼되지 않은 채 잔류해 있었다. 장식장이 소훼된 패턴을 확인해야 했다. 

 

▲ [사진 7] 장식장 위 복원


전도된 TV를 바로 세우고 연소 방향성을 확인하려 했는데 하단보다는 상단 소훼 상태가 심하게 식별됐다. 장식장 상판은 원형으로 탄화되지 않은 채 원색으로 그대로 있었다.

 

TV가 전도되고 가연물들이 장식장 상판을 뒤덮었다는 건 발화지점은 장식장이 아니라 다른 곳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나타낸다. 보통은 연소 패턴에 분열 흔적이 있는 곳이 발화지점이다. 그러나 분열 흔적이 있다고 반드시 발화지점은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소거법을 이용해 연소 패턴을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 [사진 8] 파라핀


장식장 좌측에 응착된 파라핀이 잔류해 있었다. 탄화 정도가 깊게 관찰되고 직 상부 목재로 연소 확대한 패턴도 일부 보였다. 양초를 켜 놨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계자가 화재 당일 양초는 켜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화재 원인이 아니라고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 있는 관련 증거는 수집하고 분석ㆍ판단해야 한다.

 

발화지점을 축소하라!

거실에 있던 침대는 의료용 침대였다. 벽면 목재에 잔류한 패턴과 침대 소훼 상태를 비교하면서 침대에 잔류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 [사진 9] 거실 침대

 

거실 침대는 고른 탄화형태가 잔류해 있었다. 그중 유독 한 지점이 집중 탄화한 형태였다.

 

▲ 거실 침대는 고른 탄화형태가 잔류해 있었다. 그중 유독 한 지점이 집중 탄화한 형태였다.


침대 일부가 국부적으로 탄화한 게 식별돼 확인했다. 소훼 상태가 심한 부분에 전기장판 열선이 있었고 침대 매트리스 일부가 집중 탄화한 채 잔류해 있었다. 전기장판이 있고 열선이 확인됐다면 전기장판 사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원 코드는 꽂혀 있었는지, 동작은 했는지 등을 알아봐야 한다.

 

단순하게 침대 위에 열선이 있고 집중 탄화됐다 해도 발화지점으로 단정하는 건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최소한 플러그가 꽂혀 있었는지, 온도조절기 켜짐 위치는 확인됐는지, 이상 점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 [사진 11] 침대 하단 확인


침대 전기장판 전원 코드 확인을 위해 침대 하단을 확인했다. 침대 하단에 멀티코드를 이용, 전기장판을 연결해 사용했고 멀티코드에 플러그 2개가 꽂혀 있는 게 확인된다. 침대 하단은 화염 전파가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바퀴나 줄넘기 등도 원형으로 잔류해 있었다. 그렇다면 침대 하단은 발화부에서 제외해도 무방할 것으로 판단했다.

 

▲ [사진 12] 온도조절기


전기장판 온도조절기는 소훼 상태가 심했다. on, off 상태는 확인할 수 없었으며 장판 일부는 소실되고 열선은 일부 원형으로 잔류해 있다.

 

▲ [사진 13] 전기시설 확인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이웃 주민 우모씨는 오후 4시께 집 주변에서 종이 타는 냄새를 맡았다고 진술했다. 우 씨의 아들은 이웃집 창문을 통해 불길이 나오는 걸 확인하고 이웃집 아저씨 김모씨가 평소 거동이 불편한 걸 인지하고 있어 확인을 위해 화재주택 내부로 진입했다.

 

김 씨는 화장실 앞에 서 있었고 불길은 벽 쪽 침대 위에 있었다. 우 씨는 내부에 들어갈 때 출입구에는 불길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진술과 현장에 잔류한 연소 패턴이 일치하는 걸로 볼 때 거실 침대 부분이 발화지점으로 추정됐다.

 

▲ [그림 1]


발화지점은 거실 침대 부분으로 한정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소훼 형태나 냉장고 화염전파 패턴, 장식장 위 흔적 등을 종합할 때 거실 침대 윗부분을 발화지점으로 결론지었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거실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고 화재 발생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 자연적 요인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발화지점으로 추론된 지점 연소 잔류물에서 침대 커버와 전기장판 외 화학약품이나 화학 재료 등이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화학적 요인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방화 가능성은 목격자 우모씨 주택 내부 진입 시 거주자 김모씨가 화장실 앞에 서 있던 모습이 확인된 점, 화재보험 가입이나 화재로 인한 실익이 없어 방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전기적 요인은 발화지점에 있던 전기장판 동력원이 전기고 집중 탄화한 형태가 관찰됐다.

 

전원 코드는 멀티코드에 꽂혀 있는 게 확인됐다. 전기장판이 꽂혀 있었으나 온도조절기의 on, off 상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전기장판 전선이나 열선에서는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으나 추정 발화지점에는 전기적 요인 외 다른 착화 가능성은 없었다.

 

발화지점이 침대 위로 판단되나 현장 연소 잔류물 중 파라핀으로 식별되는 물질이 있고 커튼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된 상태였다. 파라핀이 발굴된 측면 목재가 하단부터 연소한 형태로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양초에 의한 점화 가능성도 있었다.

 

전기장판은 통전된 상태로 확인된다. 이웃 주민인 우 씨는 주택에서 불꽃을 확인한 지점이 침대라 했고 분열 흔적이 일치한다는 점, 침대 위 전기장판 열선이 확인되나 전기적 흔적이 관찰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전기장판 온도조절 부분이 정상적으로 제어되지 않은 채 지속 발열 또는 축열에 의해 발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적 요인보다는 기계적 요인의 자동제어 실패가 원인으로 판단된다.

 

거실 침대는 김 씨가 사용하고 있었고 침대 위 소훼 상태는 일부 집중 탄화된 부분이 있었다. 이불은 모두 소실된 상태였으며 전기장판 일부가 미연소 상태로 관찰됐다. 침대 위 전기장판 온도조절 장치는 on, off 식별은 어려우나 현장 발굴 시 전기가 통전된 상태로 있었던 게 확인됐다. 목격자 우 씨가 진술한 내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벽면에 나타난 목재 세연화3) 현상에서 연소 진행패턴이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침대 위에서 발화했을 개연성이 있다. 다만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부분은 거실 장식장에 나타난 연소 진행패턴이 거실 장식장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된 패턴으로 살펴지는 점, 거실 장식장 위 연소 잔류물 중 파라핀으로 식별되는 물질이 관찰되는 점, 주변 벽면이 집중 탄화된 형태로 식별되는 점, 측면에 커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할 때 거실 장식장 상단 파라핀이 연소하며 주변으로 연소 확대했을 가능성도 있다.

 

출입구 방향에서 즉, 거실 장식장 좌측에서 발화돼 연소 확대하며 출입구 방향으로 화염의 전파가 이뤄져 김 씨가 화장실 방향으로 대피한 건지, 화재를 인지하고 물이 필요했던 건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침대 위와 거실 장식장 위를 비교했을 때 침대 위 전기장판 축열로 인한 발화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했던 화재로 기억에 남는다.

 


1) 중성대: 양압과 음압이 만나는 지점으로 압력이 ‘0’이 되는 부분

2) 복사열: 화재지점에서 방출하는 열에너지를 중간 매개체 없이 물체가 흡수해 열로 변했을 때의 에너지

3) 세연화: 목재가 타면서 면과 각이 부분적인 연소로 인해 가늘어지며 불길이 가는 방향으로 휨새가 나타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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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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