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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4 - “해운대 바다 볼래요?”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0/08/20 [10:0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4 - “해운대 바다 볼래요?”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0/08/20 [10:00]

 

‘해운대’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느낌의 도시를 떠올릴 거다.

하늘까지 닿을듯한 마린시티의 높은 건물과 도로를 메운 외제 차, 슈퍼카의 즐비한 모습은

때론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부산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마! 니 마린씨티 와봤나? 부산오믄 내가 풀코쓰로 함 쏘께!!”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고개를 조금 돌려

해운대의 다른 기억을 떠올려본다.

 


 

해운대구 한 동네 중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 있다. 관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구성돼 사회복지직 공무원 또는 경찰관, 소방관 모두 이래저래 일이 많은 동네였지만 나름대로 정을 붙여가며 동료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아침의 선선함이 가시기도 전에 관내 한 임대 아파트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좁은 승강기에 주들것을 억지로 밀어 넣고 구급대원 두 명이 몸을 구겨 넣듯 집어넣었다.

 

‘아이고 참, 승강기 좀 크게 만들어놓지. 이기 뭐꼬’

 

속으로 구시렁거리니 이내 승강기는 땡 소리를 내며 해당 층에 도착했다. 복도식 아파트라 화분이며, 장독대며, 말린 고추가 이리저리 널려있어 주들것을 이동하는데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복도 맨 끝에 현관이 열려 있는걸 보니 저 집이 맞겠구나 싶었다.

 

“119입니다~ 신고하셨지예~?”

 

현관문의 모기장을 헤집고 집에 들어가니 빼짝 마른 아가씨가 울고 있고 허름한 옷차림의 부모님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아…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시죠? 다치셨어요?”

 

부모님 얘기로는 딸이 재채기하다 팔이 부러진 것 같다고 했다.

 

환자를 천천히 살펴보니 몸 전체에 근육이나 지방은 전혀 보이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말라 있었다. 뼈만 남아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은 몸이었다. 오른쪽 상완골은 누가 봐도 골절이 확실할 정도로 어긋나 덜렁거리고 있었고 환자는 앙상한 반대 팔로 부러진 팔을 억지로,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환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몸에 수분까지 말라버려서인지 흘러내리질 않았다.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는 동안에도 환자는 너무나 아파해서 타이트하게 붕대를 감을 수 없었다.

 

“사실은… 얘가 이제 스무 살인데 OO암 때문에 온몸에 전이가 돼가꼬… 의사선생이 이제 석 달 정도 남았다 하대예… ○○병원 응급실 가야 하는데 일일구 선생님 잘 좀 부탁드립니데이…”

 

환자의 아버지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셨다.

 

“아… 네…”

 

방 안 공기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환자의 얼굴을 다시 천천히 보았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얼굴이었지만 눈이 참 크고 빛이 났다.

 

건강했다면… 아니, 그냥 남들과 같았다면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학교 다니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녔을 텐데…

 

혼자서 한참을 생각하다 “OO 씨 바다 보고 싶어요? 해운대 바다 볼래요?”

 

환자와 보호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광안대교로 향했다. 비록 병원까지 아주 약간 돌아가는 길이긴 했지만 환자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광안대교 너머로 한여름 광안리와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오자 환자도 눈을 떼지 못했다.

 

“OO 씨, 오늘 치료받고 몸 상태 좋아지면 다음에 또 전화하세요. 바다 보러 가게. 좋은 생각 많이 하시고요”

 

그제야 환자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날따라 병원 가는 길이 왜 그리 짧게 느껴졌을까… 어느새 구급차는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의료진은 왜 리덕션도 안 하고 붕대 왜 이따위로 감았는지 타박을 한다. 별로 대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석 달이 지났지만 그 집에서 다시 신고가 들어오지는 않았고 애써 전화해서 환자 상태를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환자에게 작은 추억으로는 남았을까…?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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