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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8 - 천민자본주의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0/12/21 [10:0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8 - 천민자본주의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0/12/21 [10:00]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면 재벌이나 대기업 혹은 자본가들에게만 붙일 법한 단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론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일이다.

 

관내 시장의 한 점포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편측 마비가 막 발생한 중년의 남성을 위해 구급차는 서둘러 현장으로 내달린다.

 

시장통은 과일이나 채소를 싣고 내리는 트럭들과 장을 보러 온 행인들로 가득해 현장까지 구급차가 진입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구급대원들이 들것과 장비를 챙겨 인파를 헤치며 200여 m를 이동했다. 

 

나는 구급차에 남아 대원들과 환자를 기다리는데 불안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뾰로통한 얼굴을 한 배추가게 아저씨가 구급차 창문을 툭툭 두드린다.

 

“여, 남의 가게 앞에 차를 세우면 우짜능교. 빨리 차 빼소!”

 

환자가 있어서 그러니 잠시 양해 좀 해달라는 내 말에 그는 짜증 나는 얼굴로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구급차를 빼라는 손짓으로 화답한다. 하는 수 없이 구급차를 앞으로 이동하니 채소가게 아줌마가 “빽!” 소리를 지른다.

 

“구급차가 왜 시장 안에까지 들어와 가꼬 남의 가게 입구를 막으면 장사를 우예하라고!”

 

아… 시장 안에 구급차를 끌고 간 내 잘못인가, 대한민국이 원래 이런 곳인가 자조 섞인 한숨을 쉬며 차를 앞으로 이동시키자 앞 과일가게 아줌마가 또 뭐라 하신다. 다행히 소리는 안 지르는데 입은 곱지가 않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환자를 태우고 오니 상인들과 행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한다.

 

“뭐하노 빨리 싣고 가소!!”

“저거는 OO병원 가야한데이”

“아이다 거 말고 ○내과 잘한다 아이가”

“대한민국 119 참 좋네”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얼른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시장통을 빠져나온다. 도로로 나와 구급차 사이렌을 틀자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를 휘젓는 영감님이 사이드미러로 스쳐 지나간다.

 

타인의 비극은 그들에게 그냥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으니까 원래 그런 거다.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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