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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칼럼] 소방관과 심리상담사의 완벽한 케미

소방관 보건안전과 복지가 미래다 <1>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 기사입력 2021/01/01 [00:02]

[이건 칼럼] 소방관과 심리상담사의 완벽한 케미

소방관 보건안전과 복지가 미래다 <1>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 입력 : 2021/01/01 [00:02]

▲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우리 시대의 슈퍼맨, 지역사회의 영웅…”

 

모두 소방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분노조절 장애, 자해와 자살 등 소방관의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소방관들이 마음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소방조직 전반에는 일정 부분 심리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했었다.

 

마음이나 정신이 아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약함의 기준이 됐으며 승진이나 직장생활에서 불이익이 생길 것을 우려해 문제를 드러내지 않거나 아니면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았다. 이런 형태는 후배 소방관을 이끌어야 하는 지휘관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소방관은 지나칠 정도의 음주나 흡연(미국 소방관의 경우에는 마약 포함) 또는 극한 스포츠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으나 그 어떤 것도 완전한 해법은 되지 못했다. 

 

소방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사회 전반에 소방관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자리 잡으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라 지난해 4월 전국 소방관의 신분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인력과 장비를 충원하는 등 소방 전반에서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재난을 딛고 우뚝 선 나라라고 평가받는 미국에서는 재난의 중심축인 소방관에 대한 예우와 지원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이런 미국이 반세기 전부터 유독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소방관의 보건안전과 복지 분야다. 

 

오랜 시간 크고 작은 재난을 겪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소방관’이 지역사회 안전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실제로 체험한 결과다. 

 

대한민국 소방 역시 2010년 이후로 보건안전과 복지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2012년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을 제정하고 2016년 제1차 5개년 기본계획(2016~2020)을 수립해 관련 분야의 정책을 개발하고 다양한 연구용역을 통해 보다 나은 직무환경 마련에 힘썼다.

 

조만간 발표될 2차 5개년 계획(2021~2025)에서는 더욱 세심하고 깊이 있는 방안들이 마련돼 있으며 그중에는 2024년 개원을 목표로 하는 국립소방병원(안)도 포함돼 있다.  

 

한편 소방청에서는 지난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사업단과 함께 전국 소방관의 마음건강 지표를 알아보기 위한 전수조사도 실시한 바 있다. 총 52,119명(94.8%)의 소방관이 직무 스트레스, 복합외상, 수면ㆍ음주습관 장애, 우울증, 외상사건 노출경험, 자해,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참여했다.

 

또한 ‘찾아가는 심리상담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소방관의 마음건강을 살피는 일도 하고 있다.

 

지자체 중에서 소방관의 마음상담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곳도 눈에 띈다. 지난해 남양주에 개소된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산하의 소담센터가 바로 그곳이다.

 

2017년부터 전국 최초로 소방공무원 동료상담팀인 ‘소담팀’을 운영하면서 기틀을 다졌고 이제는 인력과 장소를 배정받아 관내를 포함해 전국 소방관의 심리상담, 교육, 각종 치료기관과의 연계 등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으며 효율적이고 시기적절한 중재와 개입은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소방관의 마지막 생명선(Lifeline)이 된다는 점에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해 볼 내용도 있다.

 

여전히 적은 인력과 예산, 그리고 순환보직은 상담업무의 연속성에 한계를 가져온다. 앞에서 말한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프로그램의 경우를 보면 예산문제로 인해 심리상담 업체와 매년 계약을 해야 하다 보니 계약에 소요되는 시간(통상 2~3개월) 동안에는 상담의 공백이 불가피하고 만약 지난해와 다른 업체가 선정된다면 그동안의 상담업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

 

소방관의 입장에서 보면 해마다 새로운 심리상담사를 만나 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자칫하면 심리상담을 귀찮은 요식행위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심리상담 시스템의 부정적인 인식은 또 다른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불 한번 꺼보지 않은 심리상담사가 과연 나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지, 혹시라도 내가 경험한 일을 말함으로써 오히려 심리상담사가 충격을 받지나 않을지 걱정하면서 결국 상담은 별 효과가 없다고 단정하고 마음을 닫아버릴 여지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의 시스템은 참고해 볼 만 하다.


미국에서는 소방관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심리상담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는 주변의 친한 동료나 소방서 동료상담사들에게 외부 심리상담사를 추천받는 방법을 권장한다. 보통은 동료심리상담사가 외부기관의 전문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자신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심리상담사를 쉽게 추천받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심리상담사를 추천받으면 그가 얼마나 많은 소방대원을 상담했는지, 그리고 얼마 동안 이 일을 해 왔는지 확인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소방관을 한두 번 상담해 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당 심리상담사의 고객 비율에서 소방관이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를 안다면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로는 각 주별로 등록돼 있는 심리상담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방대원 정신건강 연대 (Firefighter Behavioral Health Alliance)’ 홈페이지에는 주별로 임상경험을 보유한 심리상담사가 등록돼 있으며 구체적인 정보도 기재돼  있다.

 

대면상담과 전화상담이 가능한지 여부와 이메일을 포함한 연락처, 심리상담사 주소와 상담 전문분야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서 소방관의 필요에 따라 적합한 상담사를 고를 수 있다.

 

심리상담사가 반드시 소방관이나 응급구조사의 경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충분한 임상경험이 없는 상담사라면 ‘소방대원 정신건강 연대(FFBHA)’에서 마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관련 분야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이런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심리상담사를 공급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각 시ㆍ도별로 심리상담사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방관이 직접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전문가를 선택함으로써 상담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명.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심리적 손상은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소방관의 독감’이라고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지금의 나와 완벽한 케미를 맞출 수 있는 심리상담사를 만나는 것은 한 소방대원이 평생 근무하는 동안 그리고 퇴직한 이후에도 삶의 질 전반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지금의 심리상담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른 상담사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심리상담사와 함께 하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소방관으로써 일과 삶 두 영역에서 분명 큰 재산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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