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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사람 살리자고 설치한 피난기구, 기준 미달 웬 말?

시중 유통된 승강식 피난기 부적합 제품 대량 적발 ‘충격’
“국민 안전 위협” 주장하는 소방권익협회 엄중 조치 요구
과실 인정한 KFI “잘잘못 철저히 가리고 개선방안도 마련”
제품검사 중단시킨 소방청 개선 의지 밝혔지만 잡음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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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기자 | 기사입력 2021/01/11 [13:33]

[집중취재] 사람 살리자고 설치한 피난기구, 기준 미달 웬 말?

시중 유통된 승강식 피난기 부적합 제품 대량 적발 ‘충격’
“국민 안전 위협” 주장하는 소방권익협회 엄중 조치 요구
과실 인정한 KFI “잘잘못 철저히 가리고 개선방안도 마련”
제품검사 중단시킨 소방청 개선 의지 밝혔지만 잡음 여전

신희섭 기자 | 입력 : 2021/01/11 [13:33]

▲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승강식 피난기들

 

[FPN 신희섭 기자] = 성능인증 기준에 부적합한 승강식 피난기가 시중에 유통된 정황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검ㆍ인증을 담당한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업무 과실까지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승강식 피난기는 건축물에 화재 등 위급상황 발생 시 사람들이 안전한 장소로 탈출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피난기구 중 하나다. 무동력으로 작동돼 화재로 인한 정전 시에도 사용할 수 있다.


소방법상 승강식 피난기는 성능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제품이다. 소방용품 검ㆍ인증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에서 성능인증을 획득한 이후 양산품에 대한 제품검사를 거쳐야 시중에 판매할 수 있다.


국내에서 승강식 피난기를 제조하는 기업은 A 사와 D 사 두 곳이다. 제품의 외형은 둘 다 비슷하지만 승강판 구동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A 사의 경우 승강판을 와이어로, D 사는 랙 기어로 구동하는 구조다.


승강식 피난기 문제는 지난달 9일 한국소방권익협회(이하 권익협회)가 소방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D 사 제품이 현행 규정에 맞지 않다는 내용이다.


권익협회는 현재 시중에 유통된 D 사의 승강식 피난기의 승강판과 하강구 프레임이 기준과 맞지 않고 하강한 승강판의 연속사용 불가, 랙 기어 방식의 내구성 미흡, 규정에 따른 비상제어장치 부재, 반복 시험용 회수측정기 조작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비상제어장치가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검ㆍ인증을 담당한 KFI 측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승강식 피난기의 성능인증 기준에는 ‘와이어로프의 파단 등 피난기의 이상으로 승강판이 급격히 추락하는 경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비상제어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D 사 제품의 최초 성능인증 당시 검ㆍ인증을 담당했던 KFI 직원이 개인의 기술적인 판단하에 인증을 내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 조사 결과 부적합 ‘수두룩’

 

민원 접수 이후 소방청은 지난달 17일과 18일 양일간 시중에 유통된 승강식 피난기의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현장 조사를 위해 KFI와 관할 소방서, 제조사 등도 동행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조사 나간 현장 18개소에는 승강식 피난기가 총 199대 설치돼 있었다. 이 중 103대가 A 사 제품이고 96대가 D 사 제품이었다.


성능인증 기준상 승강식 피난기의 승강판과 하강구 프레임의 높이차는 0.5㎝ 이하다. 그런데 D 사의 경우 현장에 설치된 제품 모두 허용 범위를 벗어나 100%(96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A 사 제품도 21.4%(22대)나 부적합에 해당했다.


승강판과 하강구 프레임 간격도 D 사 제품은 96.9%(93대)가 부적합이었고 A 사도 12.6%(13대)의 제품에서 부적합 판정이 나왔다.


승강판이 제자리로 복귀하지 않는 문제는 두 제조사 모두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D 사의 경우 1%(1대)의 제품에서 A 사의 경우 2.9%(3대)의 제품에서 각각 부적합이 확인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권익협회에서 제기한 민원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며 비상제어장치 등이 없는 D 사 제품은 현행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으로 제품검사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승강판과 하강구 프레임의 높이차 부적합에 대해서도 소방청은 “허용 범위를 모두 벗어난 D 사 제품의 경우 최초 성능인증 당시 KFI 담당 직원이 측정 위치를 잘못 적용해 빚어진 문제”로 판단했다.


비상제어장치와 마찬가지로 KFI 담당 직원의 명백한 과실이 드러난 사안이기 때문에 자체 감사를 진행해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A 사 제품에서 나타난 문제도 리콜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 지난 12월 29일 열린 승강식 피난기 관계 전문가 자문회의

 

과실 인정한 KFI "확인된 문제점 신속히 개선“


승강식 피난기의 검ㆍ인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KFI는 일단 소방청 조사 결과에 따라 자체 감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KFI에 따르면 D 사의 승강식 피난기는 이전까지 승인된 와이어 구동 방식과 달리 새로운 랙 기어 구동 방식이다. 이 제품에도 와이어가 적용되지만 이는 하강한 승강판을 다시 제자리로 올려주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따라서 와이어 파단 등에 따른 급격한 추락이 발생하지 않는 제품이라 판단하고 비상제어장치 없이 이를 인정해 줬다는 게 KFI 설명이다.


KFI 관계자는 “비상제어장치는 와이어파단뿐만 아니라 승강식 피난기 이상 시에도 안전장치로서의 기능을 해야 한다”며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기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5천회 반복시험 확인 프로그램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며 “시험시설을 직접 운영해 거짓, 조작 등의 문제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하면서 현재 제기된 문제점들도 기술기준에 적합토록 신속히 개선 조치해 나가겠다”고 했다.


또 “승강식 피난기의 승강판과 하강구 프레임의 구조는 제조사에 따라 일체형과 분리형 두 가지로 제작이 이뤄지는데 분리형의 경우 건축 시공단계에서 하강구 프레임을 먼저 설치하고 본체가 설치된다. 이 때문에 현재의 성능인증 기준으로는 규정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설치기준을 별도로 두는 등 이 부분에 대해선 관련 기준의 개정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KFI는 승강식 피난기의 내구성 판단 기준에 대해 추가 도입 필요성도 언급했다. 관계자는 “이물질 유입과 결빙 등의 환경적 문제는 모든 승강식 피난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설치ㆍ사용 조건 등을 고려한 기준도입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선 의지 밝혔지만, 잡음은 여전


전수 조사를 끝낸 소방청은 지난달 29일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부적합 제품이 현장에 시공되면서 발생하는 민원과 효율적인 기준 운영방안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제조사 두 곳과 권익협회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회의는 전수 조사 결과를 소방청이 설명하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시작됐지만 금세 언성이 높아지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특히 권익협회 관계자는 “비상제어장치는 승강식 피난기를 사용하는 피난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설치하도록 관련 기준에도 명시돼 있는데 이를 KFI 담당 직원의 업무 과실로만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며 “해당 제품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가 반드시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제조사 한 곳의 경우 5천회 반복시험을 진행하면서 스프링 파열 등 제품 마모를 우려해 자체적으로 측정기를 조작했다는 정보가 권익협회에 입수되기도 했다”며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됨은 물론 소방 제품의 신뢰도에도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 사 측 관계자는 “랙 기어 구동 방식의 승강식 피난기는 와이어가 끊어져도 똑같은 속도로 하강하는 구조고 비상제어장치로 피난 중 작동이 멈춰 버린다면 그게 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맞섰다.


승강판 하강구 프레임 높이차에 대해서도 D 사 측은 “건축적인 측면까지 제품을 고려하다 보니 층간 내화구조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덮개를 설치하게 됐다”며 “덮개 설치를 위해 높이차 크기를 키운 건데 기준상 허용이 불가하다면 높이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제품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A 사 관계자는 “비상제어장치는 만일에 벌어질 수 있는 승강판 추락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며 “낡고 오래된 와이어가 끊어질 수 있듯 랙 기어 역시 기계장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파단 등으로 인해 급격히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승강판 하강구 프레임 높이차는 몸이 불편하거나 노유자 등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위가 설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반인이 아닌 재난 취약 계층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제조사 측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고 권익협회 측도 소방청 답변에 불만을 제기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단 문제가 드러난 제품은 검사를 중단시켰고 검ㆍ인증 업무를 담당한 KFI 직원에 대한 감사도 진행하겠다”며 “관련 기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고심하고 있으니 좀 더 믿고 기다려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승강식 피난기에 대한 추가적인 논란도 이어질 조짐이다. 권익협회가 시험 과정에서의 제조사 측 측정기 조작 의혹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어서다. 승강식 피난기의 성능인증 기준에는 제품의 내구성 등을 검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5천회 반복 시험하는 항목이 담겨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소방청은 “반복 시험의 경우 각 제조업체에 감시용 CCTV를 설치ㆍ녹화하고 KFI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성능인증 시 조작 등의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걸 KFI 측에 확인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무턱대고 추측만 갖고 업체를 조사할 수는 없다”며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다면 철저히 진상 조사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현행 시험방법에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며 “빠른 시일 내에 KFI 내부에 시험설비를 구축토록 해 시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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