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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9 - 구급대원과 경찰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1/01/20 [09:3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9 - 구급대원과 경찰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1/01/20 [09:30]


많은 구급대원이 그러하듯 나 역시 경찰을 좋아하진 않는다. 11년 동안 현장에서 많은 경찰과 만나고 부대끼며 몸소 체험한 개인적인 경험칙이라고나 할까? 안 좋은 기억들은 너무나 많고, 내일도, 모레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을 꺼내 본다.

 

심정지 신고를 받고 다세대주택에 출동했다. 부산의 주택가가 대부분 그러하듯 여기도 좁은 골목에 삐뚤빼뚤한 계단.


현관 밖에서 ‘어르신들만 살고 계시는구나’ 하는 걸 후각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좁은 현관에 들어찬 신발을 정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로 된 바닥과 천장, 벽이 먼저 눈에 띈다.

 

‘내가 국민학생 시절에 살던 우리 집도 이렇게 나무로 돼 있더랬지…’

 

잡생각도 잠깐. 안방에 빼싹 마른 고령의 어르신이 고이 누워 계시고 옆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얼른 제세동기를 붙이고 심전도를 보니 무수축이다. 누가 봐도 소생 가능성이 없는, 어떻게 보면 천수를 누리신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할머님께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하고 소생술 여부를 물어보니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하신다. 소생술 준비하느라 풀어제낀 상의도 매무새를 고쳐드리고 멀리 던져놓았던 이불도 고이 덮어드렸다.


그 사이 할머님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영감,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이. 나도 곧 따라갈텡게, 금방 봅시더” 하신다.


이내 중년의 경찰이 오셔서 환자에 관한 상황설명을 해드리니 모자를 벗고 할머니께 목례를 하시고 다시 안방의 고인에게 목례를 하면서 정중하게 예를 표하셨다.

 

‘아! 이런 경찰관도 계셨구나’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중년의 경찰관이 할머님께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정중하고 품위 있을 수가 없었다. 늘상 현장에서 접하는 망자이다 보니 나 역시 소홀한 적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던 벌써 5년도 넘은 기억을 늦은 밤에 꺼내 본다.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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