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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스프링클러 설치해야 하는 2천여 의료기관 ‘갈팡질팡’

3년 유예기간 중 절반 지나… 내년 8월까지 스프링클러 갖춰야
소급 설치 비용 지원하겠다던 보건복지부, 올해 예산은 고작 2%
정부 예산 지원 어디까지 하나, 방향 없는 사업에 혼돈 속 의료계
차일피일 미루는 소방시설 설치에 “세종병원 화재 반복될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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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1/02/25 [11:00]

[집중취재] 스프링클러 설치해야 하는 2천여 의료기관 ‘갈팡질팡’

3년 유예기간 중 절반 지나… 내년 8월까지 스프링클러 갖춰야
소급 설치 비용 지원하겠다던 보건복지부, 올해 예산은 고작 2%
정부 예산 지원 어디까지 하나, 방향 없는 사업에 혼돈 속 의료계
차일피일 미루는 소방시설 설치에 “세종병원 화재 반복될라” 우려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1/02/25 [11:00]

▲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 소방방재신문


[FPN 박준호 기자] = 내년 8월까지 과거 지어진 병원급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스프링클러설비 등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소급 대상인 의료기관의 소방시설 설치 비용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혼란 속이다. 지원 사업을 준비하겠다던 보건복지부가 올해 따놓은 예산이 쥐꼬리만 한 수준인 탓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전국 수천 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도 예산으로 전체 설치 대상 중 2% 지원 가능한 금액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게다가 앞으로의 지원 대책까지 불투명해 의료단체 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정부의 강화된 소방관련법에 따라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병ㆍ의원급 의료시설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봤다.

 

소급적용한 소방법 따라 지원 사업 확정은 했는데…

소방청은 2018년 1월 47명이 숨지고 145명이 다친 밀양 세종병원 참사 이후 전국의 모든 병원급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소급 설치토록 관련 법을 강화했다.

 

세종병원 화재 당시 소방관련 법규에서 건축물 규모가 작은 중ㆍ소병원급 의료기관은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강화된 이 법에 따라 병원급 시설은 스프링클러, 바닥면적 600㎡ 미만인 병원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기관은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19년 8월부터 과거 지어진 의료기관까지도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소급 설치하는 법이 본격 시행되자 의료단체 등은 크게 반발하며 정부의 재정 지원 방안과 유예기간 설정을 요구해 왔다. 스프링클러 설치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공사에 따른 진료 차질로 영업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측은 “지역 중ㆍ소병원은 영세한 곳이 많아 앞으로 지어지는 병원은 당연히 설치해야겠지만 모든 병원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는 건 상당한 무리가 있다”면서도 “정부가 일부 지원해준다면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5년 이상의 유예기간과 재정지원 시 법규 강화를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소급대상 의료기관에 소방시설 설치 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끝내 마련하지 못했다. 법 도입 직전인 2019년 6월경 기획재정부는 “다른 병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민영 병원에 정부 예산을 지원한 전례가 없다”며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도 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줄곧 요구했다. 끝내 지난해 하반기에 들어서야 3:3:4(국비:지방비:자부담) 비율로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쥐꼬리만 한 지원 예산에 눈치 보는 병원들

 

정부의 올해 ‘의료기관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소방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스프링클러 소급 설치 대상인 병ㆍ의원급 의료기관은 총 2411개소다. 그러나 올해 이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8억7천만원 뿐이다. 이는 50여 개소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으로 전체 설치 대상의 약 2%에 불과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개소당 5800만원 정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읍ㆍ면에 위치한 100병상 이하의 중소병원이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며 “재정 당국에서 많이 도와줘야 하는데 여러 이유로 예산이 적게 책정됐다. 내년엔 좀 더 많이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 확보 여부를 놓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자 의료기관 등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정부 지원 사업의 실제 진행 여부에 따라 소방시설 설치 시기를 더 늦추거나 자비로 설치해야 하는 등 빠른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칫 내년 8월을 넘기면 소방관련법을 어기게 돼 법적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병원은 하루빨리 스프링클러 공사를 하고 싶어 하지만 내년에 예산이 확대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설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라며 “차일피일 미루는 그 기간에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올해 고작 2%만 예산이 반영됐는데 내년까지 전부 지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병원장들이 빚을 내서라도 먼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중에 이를 보전받는 방법도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단체에서 주장하는 ‘선 설치 후 보전’은 일반적인 프로세스와는 맞지 않다”며 “자부담이 가능하다고 하면 해당 병원은 재정 여력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 경영이 더 어렵거나 시급한 다른 병원을 선정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법 시행 시기가 다가오는 만큼 의료기관의 소방시설 설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의료계에 3년이라는 충분한 유예기간이 있었다”며 “해당 병원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조속히 설치돼야만 불의의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급대상 지원 전체? 일부?… 정부, 명확한 입장 내놔야

의료계는 강화된 소방시설 설치 의무를 두고 정부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실질적으로 예산이 지원되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그게 아니라면 자체적으로라도 설치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렇다 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데 있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보겠다”는 보건복지부 입장만 있을 뿐 앞으로 지원 대상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건지, 전체 대상을 지원할 건지 등 확실한 정책 방향이 나오지 않았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소방시설 설치 비용 탓에 의료계는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의료단체 관계자는 “올해 정부 예산으로 혜택을 받은 곳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의료기관이 지원받아야 한다. 일부만 지원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추후 보전이라도 정부가 약속하면 상당히 많은 기관이 빠르게 설치할 거로 본다. 정부의 지원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화된 소방법의 유예기간은 3년 중 절반이 흐른 상황이다. 그러나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 2천여 곳 중 실제 시설을 갖춘 대상물의 정확한 통계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명확한 지원 방침을 제시하는 게 시급하다. 정부 예산에 기대려는 의료계와 명확한 정책 방향을 내놓지 않는 정부 탓에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또다시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을 이용하는 국민이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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