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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11 - 부정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1/03/22 [09:50]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11 - 부정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1/03/22 [09:50]

 

일요일 아침 첫 출동. 상황실 직원의 난처한 목소리가 무전기로 들려 온다.

 

“아… XX 급 신고자가 빨리 오라고 얘기하고 계속 전화를 끊습니다. 아버지가 다쳤다 하는데 자세하게 얘기를 안 해주고 짜증을 계속 냅니다. 현장 확인 바랍니다”

 

뭐 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구급차의 가속페달을 밟는다. 출동하면서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하니 OO 역 앞으로 오면 된다고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뚝 끊는다.

 

‘하… 놔… 이 양반이…’

 

현장에 도착해서 한참이나 기다리니 후줄근한 차림새의 남자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구급차를 향해 까딱까딱 손짓한다. 신고자의 콧김에서부터 소화된 알코올 냄새가 지린내처럼 풍겨오는데 입을 열 때마다 나까지 취하는 느낌이다.

 

신고자를 따라 시장 골목을 한참 들어가니 비좁은 계단 위 집안에서 어르신이 머리에 피 칠갑을 하고 누워 계신다. 노년의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태평하게 앉아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환부는 20㎝ 이상의 두부 열상에 정맥 손상이 있는지 피가 꿀렁꿀렁 스며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다쳤냐는 구급대원의 질문에 환자는 “아야, 아야” 소리만 내고 가족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들은 가까운 병원이나 가자고 짜증을 내며 독촉하길래 한참을 설득해서야 대학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들이 접수하러 간 사이 구급대원이 어르신에게 재차 집요하게 물어봤다. 어쩌다 다치셨냐고…

 

그제야 어르신은

 

“아들놈이 계단에서 나를 밀었어…”

 

라고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신다.

 

“어르신 경찰 불러드릴까요?”

 

“아니… 그냥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어… 괜히 일 커지니께…”

 

어르신은 다시 입을 닫고 아무 얘기도 하질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 인연이 아니라 어떤 악연이기에 이 어르신은 이런 험한 꼴을 당하셨나. 이 또한 어르신의 유전자 때문인가? 성악설이 타당한가? 멘델을 족칠까? 순자를 잡아 족치면 뭔가 해답이 나올까?

 

저런 아들도 지켜주고 싶은 父情인가…

이런 불행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否定인가…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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