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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칼럼] 현장의 기록, 소방관 보건ㆍ안전의 시작

소방관 보건안전과 복지가 미래다 <14>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 기사입력 2021/03/24 [10:58]

[이건 칼럼] 현장의 기록, 소방관 보건ㆍ안전의 시작

소방관 보건안전과 복지가 미래다 <14>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 입력 : 2021/03/24 [10:58]

▲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방재신문

재난 현장에 대한 세심한 기록은 단순히 보고의 의미를 넘어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위한 소중한 근거가 된다.

 

화재나 구조 등 사고 현장은 기본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때로는 숙련된 지휘관의 경험이나 예측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대원의 질병, 공상 또는 순직이 재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 의학적ㆍ법적 연관성을 인정받는 일은 전혀 다른 의미다.

 

화학사고를 비롯해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디젤가스 등과 같은 유해물질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 암 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에서 지정한 발암물질에 해당한다. 그렇다 해서 이런 물질들이 소방대원의 암을 유발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건 별개의 문제며 이와 관련된 공무원연금공단의 공상 승인율 또한 대단히 인색한 편이다.

 

그래서 재난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이뤄졌는지, 발생한 화재가 어떤 종류였는지, 어떤 물질이 연소했으며 화재와 결부된 유해화학물질의 이름은 무엇이고 누출된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세심하게 기록해서 관리하는 건 소방대원이 부상을 당했거나 혹은 특정 질환의 진단을 받았을 때 그 내용을 입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기록들은 소방청이나 시ㆍ도 소방본부에서 향후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을 위한 예방대책을 수립할 때에도 필수자료가 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주별로 마련된 ‘암 추정법’을 비롯해 2018년 만들어진 ‘소방관 암 등록법(Firefighter Cancer Registry)’을 통해 소방대원의 현장 활동과 암의 연결고리를 인정하고 끊임없는 연구와 통계자료를 확보해 혹시라도 누락된 사각지대는 없는지 점검하는 등 소방대원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한편 ‘미연방산업안전보건청(OSHA)’에서는 고용주로 하여금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가 퇴직한 이후에도 30년 동안 의무기록을 보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미국방화협회(NFPA)' 기준 1582번에서도 소방서는 일정 기간 소방대원의 의무기록을 보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현직 소방대원에게 발병하는 질환도 있지만 그보단 오랜 기간 각종 유해물질이나 발암물질에 노출된 소방대원이 퇴직한 후 7년 이내에 암 진단을 받는 통계가 상당히 높다는데 그 기록 보관의 의미가 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난다. 필자가 1995년 서울 구로소방서 독산119소방파출소(현재 독산119소방안전센터)에 발령받았을 때 출동 근무일지에 화재는 빨간색, 구급은 파란색, 기타 출동은 검정색 볼펜으로 기재하는 게 기본틀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기록은 각각의 보고서를 보면 되지만 세심하고 꼼꼼한 기록이 어려웠던 시절인 만큼 나중에 병이라도 생기면 본인이 직접 모든 기억을 소환해 자료를 수집하고 입증해야 했으니 그 어려움과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2014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김범석 소방관의 경우에도 혈관육종암 진단을 받았으나 발병 원인과 감염경로가 불분명해 공무에 기인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며 공무원연금공단이 유족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결국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5년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며 소송한 유가족이 국가로부터 공무상 사망이라는 인정을 받게 됐지만 이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뿐인 승리’를 안겨 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현재 소방청에서는 소방관 신분의 국가직 전환 2년 차를 맞이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정책적 고민을 이어가고 있으며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운영과 연구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소방관으로서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임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공상이나 순직이 또다시 희생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묻히지 않도록 하는 예방대책도 필요하다.

 

한편 일선에서는 상시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며 출동을 마친 후에는 깨끗하게 샤워하고 장비를 제독하는 등 유해물질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방관은 ‘국가가 내미는 손’이다. 아울러 도움이 필요한 소방관이 내미는 손은 다시 국가가 견고하게 잡아줘야 한다. 소방대원의 의무기록을 비롯해 세심한 현장 활동의 기록이 잘 관리되는 게 바로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의 시작점이다.

 

결국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이 중요한 이유는 소방대원 자신은 물론이고 그들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사람, 가족과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소방관도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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