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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생계형 망각인가? 아차 하는 부주의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1/08/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생계형 망각인가? 아차 하는 부주의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1/08/20 [10:00]

우린 조금 힘든 일을 마주할 때면 ‘힘들어 죽겠다’, 일이 잘 안 풀릴 땐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나오곤 한다. 하지만 체념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사는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건재하다. 우린 오늘을 열심히 살고 미래에 찾아올 미소를 희망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화재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잠깐, 아차, 아니 이 정도는 괜찮아하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 화재의 불씨는 작게 서서히 피어오른다. 화재가 발생하면 원인에 대해 자신의 잘못보단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가스레인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과열하면 당연히 차단돼야지!’라고 한다. 제조사에서 만들 때 과열해 화재가 발생할 것 같으면 자동으로 소화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곤 한다. 주의의무를 먼저 지켜야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화재가 연간 4만여 건 발생하는데 이 중 가장 많은 화재 원인은 ‘부주의’다. 부주의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조심하지 않는 걸 말한다. 그렇다면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한다면 부주의는 줄고 부주의에서 오는 사고는 예방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계형 부주의인가?

어느 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겨울이라 하기엔 양지는 살짝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고 음지는 다소 쌀쌀한 냉기가 느껴지는 시기에 발생한 화재다. 화기나 난로를 가까이하기엔 덥고, 멀리하기엔 다소 추운 그런 시기에 발생하는 화재는 부주의 화재가 잦다. 이번에 소개할 화재 사고는 생계형 부주의라 생각된다. 자칫 연소 확대됐더라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신고과정을 확인하라!

어느 공장 휴게실 겸 간이 주방으로 사용하는 부분에서 발생한 화재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사용했더라면, 아니 조리 시간만이라도 연소기구를 확인하고 감시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목격자 조 씨는 인근 밭에서 일하는 중 공장 뒤 컨테이너 부근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아 공장 관계자에게 알려 줬다. 목격자도 화재라고 여기지 않고 단순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도로 생각해 공장 관계자를 찾아 그 사실을 알렸다.

 

연기가 난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공장 관계자는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컨테이너로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공장 대표 김 씨에게 연락했다. 김 씨가 컨테이너로 가보니 컨테이너 주방 쪽에서 연기가 올라와 소화기로 자체 진화를 시도했고 실패하자 그제야 119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연소가 확대됐고 1층 컨테이너와 측면 공장 창고까지 연소했다.

 

발견 과정을 보면 최초 목격자가 바로 119에 신고하고 공장 관계자에게 알렸더라면 소방대가 좀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해 창고까지의 연소 확대는 막을 수 있었을 거다.

 

목격자가 공장 직원에게 알리고 공장 직원은 공장 대표자 김 씨에게 알렸다. 현장을 확인한 김 씨는 소화기를 가져다 자체 진화를 시도하고 실패하자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연소는 계속됐다. 컨테이너는 전소했고 창문으로 출화해 창고동까지 전소했다.

 

화재, 인지하는 즉시 ‘119’ 신고 먼저!

화재 신고는 화재를 인지하면 바로 지체할 것 없이 ‘119’로 먼저 신고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일부 국민께서 잘 못 알고 있는 인식을 바로잡습니다. 

 

“소방서에 신고해 소방차가 출동하면 벌금이 얼마인가요?” 

 

→ 119에 신고해 소방차가 수십 대 출동해도 소방당국에 내는 벌금은 없습니다. 다만 공공의 위험을 발생시킨다면 형법상에 실화죄에 해당할 수 있으나 수사기관에서 수사하고 실화죄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러니 화재가 발생하면 조그만 화재라도, 작은 화재라도 우선 신고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신고하고 자체 진화를 했다면 다시 119에 전화해 화재가 진압됐다고 알려주세요. 그럼 출동했던 소방대 대부분은 돌아가고 지역을 관할하는 소방대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 갑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면 소방관이 현장을 확인합니다. 안전조치가 필요하면 안전조치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내를 드리고 있으니 화재 징후가 확인된다면 반드시 우선 신고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이 화재 사고는 우선 신고하고 관계자에게 알리거나 자체 진화를 시도했더라면 화재가 발생한 컨테이너는 소실됐어도 창고로 연소 확대하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거다. 컨테이너 내부 벽면은 단열을 위해 가연물로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쉽게 연소하지만 외부가 불연재로 빠르게 확대하진 않는다.

 

다만 창문을 통해 화염이 분출하고 불티가 날아서 흩어지면 연소 확대는 쉽고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화재를 발견하거나 징후 확인 당시 바로 119에 신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화재 현장이었다.

 

화재 현장 배치를 살펴라!

화재 현장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그림 1] 배치도


컨테이너 세 개를 건물 앞에 배치해 사용하고 있었다. 화재 신고가 늦어 컨테이너 세 개 동과 창고까지 연소하는 피해를 봤다.

 

▲ [사진 1] 연소 상황


전면에서 봤을 때 컨테이너 두 개 동과 뒤 창고동이 연소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연소하는 불꽃이 있었고 지붕에는 흰색 연기만 분출하고 있었다. 배치도에서 컨테이너는 세 개로 식별되지만 지붕을 전체적으로 덮어 놓아 지붕에서 본다면 하나의 컨테이너로 보인다.

 

▲ [사진 2] 탄화한 형태


연소 패턴과 잔류물 흔적을 살펴라!

컨테이너 하나는 적 산화 현상이 관찰되고 창고 지붕은 화염전파로 만곡해 있다. 우측에 주차했던 승합차는 전소해 차체가 산화돼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축조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방향성을 알 수 있으나 발굴과정이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다.

 

붕괴하고 만곡돼 거의 원 상태로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형돼 잔류한다. 이 화재 사고는 목격자가 분명했고 연기 나는 지점이 확연해 발화지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화재 원인만 밝히면 된다.

 

▲ [사진 3] 연기가 발생했던 컨테이너


목격자가 연기 나는 걸 본 컨테이너다. 컨테이너는 공장 직원들의 식사를 위해 주방과 식당으로 사용했다. 이 정도로 탄화하고 목격자 진술과 일치한다면 화재 원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화재 발생 시간이 오후 1시를 넘겨 식사 시간도 끝나고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컨테이너 내부에서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을 전기 아니면 부주의로 쉽게 압축할 수 있다. 관계자는 “점심시간이 끝나 연소기구 사용은 없었고 전기난로는 꺼 놨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전기난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치운 건지, 아니면 아예 없었던 건지, 현장에서 화재조사관이 확인하지 못한 건지, 현장을 조사하면서 조사가 끝날 때까지 전기난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 [사진 4] 주방


주방으로 사용했던 부분이며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식별되고 벽면은 군청색으로 변한 게 수열을 많이 받은 형태로 판단됐다. 싱크대 위에 창문이 있어 공기 유입이 원활하고 창문을 통해 열 교환이 이뤄지면서 수열 형태가 심하게 잔류한 것으로 판단된다.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하라!

간단하면서도 입증해야 할 내용이 있다. 관계자는 점심시간이 끝나 연소기구를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전선에서는 용융 흔적이 관찰됐다. 관계자 진술대로라면 부주의보다 전기적 요인에 무게가 실리고 원인도 찾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늘 현장에서 있는 일이듯 관계자 진술은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 다른 원인으로 밝혀졌으면 하는 의도가 있기도 해 진실을 밝히긴 쉽지 않다.

 

그러나 진실은 쉽게 묻히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원인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그걸 입증하기 어려울 뿐이다. 전기적 요인이면 다들 수긍하고 ‘뭐 날 수도 있어’라고 치부하면서 ‘부주의’라고 하면 발끈하는 경우가 있다. “왜? 난 잘못이 없으니까!” 하고 말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사실을 수긍하게 만드는 것도 화재조사관의 몫이다.

 

사실 이 화재 현장에서 가장 의심이 됐던 건 가스레인지다. 그런데 이미 1시간 전에 사용한 후 꺼 놨다고 했다.

 

▲ [사진 5] 가스레인지


가스레인지 점화 레버가 플라스틱으로 모두 소실돼 외관으로 ON, OFF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흔적은 찾으면 찾을 수 있다.

 

▲ [사진 6] 가스레인지 버너 부분


가스레인지 버너 부분이다. 우측은 수열 상태에서 수분 접촉으로 적 산화 현상이, 좌측은 조리기구가 거의 용융돼 조리기구 일부만 잔류해 있었다. 이런 경우 자체 발열인지, 화염전파로 인해 용융된 건지의 판단은 현장 연소 흔적과 잔류물, 용융한 패턴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

 

▲ [사진 7] 버너


가스레인지 버너 부분으로 좌ㆍ우측이 차이가 있었다. 사진 좌측 버너 캡은 용융된 상태고 우측 버너 캡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판은 좌측보다 우측에 적 산화 현상이 심하게 식별됐다. 좌측이 발화지점인가, 우측이 발화지점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아니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 [사진 8] 가스레인지 주변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가스레인지 주변 구조물의 변색 흔적은 군청색으로 관찰됐다. 가스레인지 자체 일부만 적 산화 현상을 띄고 있다. 주변에 어떤 종류의 가연물이 얼마만큼 쌓여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가연물은 모두 소실되고 비철금속 일부만 용융된 채로 잔류해 있었다.

 

▲ [사진 9] LPG

 

[사진 9]를 보면 가스레인지 벽면 바로 뒤에 LPG 통을 설치해 사용했다. 연소 확대 과정에서 잔류 가스가 분출해 연소하면서 연소 확대를 가중했다. 컨테이너에서 본다면 외부지만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에 놓고 사용한 건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지붕을 하나로 덮어 사용한 걸 고려할 때 실내에 가스통을 놓고 사용한 거나 진배없다.

 

▲ [사진 10] 가스레인지 버너


[사진 10]은 가스레인지 좌측 버너이며 버너 캡 일부가 용융된 채 잔류해 있었다. 아마도 발열하고 있었던 거로 판단된다. 점화 스위치를 확인하면 가스레인지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스레인지 점화 스위치 손잡이는 플라스틱이라 연소해 소실되지만 점화 스위치는 철재라 ON, OFF 확인이 가능하다. 좌ㆍ우측 점화 스위치를 비교해 확인하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 [사진 11] 가스레인지 점화 스위치


증거를 확인하고 입증하라!

[사진 11] 상단은 좌측 버너 점화 스위치, 하단은 우측 버너의 점화 스위치다. 좌측은 적색 화살표 부분이 사진에서 우측으로 가 있지만 하단은 좌측으로 가 있다.

 

상단 스위치 우측의 스프링 부분은 헤드다. 점화 스위치를 돌릴 때 스프링 하단의 헤드가 올라갔다가 반경을 지나면서 튕겨 나가 하단으로 내려오면서 좌측의 압전소자 부분을 눌러 불꽃을 일으키는 구조다. 적색 화살표 부분이 우측으로 넘어갔다는 건 인위적으로 점화 스위치를 돌렸다는 증거다. 반면 하단의 압전소자 헤드를 올리는 걸림 쇠가 좌측에 있다는 건 동작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최초 목격자 조 씨가 인근 밭에서 일하는 중 공장 컨테이너 부근에서 연기를 보고 관계자에게 알렸다고 진술했다. ○○공장 대표 김 씨는 컨테이너에서 연기가 난다는 직원의 연락을 받고 컨테이너로 가보니 컨테이너 주방 쪽에서 연기가 올라와 소화기로 화재진화를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또 컨테이너 외부에서 불길이 있었다고 했지만 안쪽은 연기로 잘 볼 수 없다고 했다. 점심 식사 후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으나 식당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 내부 가스레인지 상판에 잔류한 수열 흔적으로 볼 때 가스레인지 좌측에서 발열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가스레인지 부분에서 발열돼 주방 기구와 컨테이너가 연소하며 분출한 화염으로 불이 번진 것으로 판단했다.

 

▲ [사진 12] 선풍기


내용을 종합하면 목격자 조 씨와 ○○공장 대표 김 씨의 진술은 모두 주방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에서 연기가 올라왔다고 했다. ○○공장 대표 김 씨는 컨테이너 외부에서 연기가 났다고 진술했으나 신빙성이 없다. 컨테이너 내부 냉장고와 선풍기에서 출화 형태는 관찰되지 않았으며 전선도 용융 형태가 관찰되나 단락흔인지, 용융 흔적인지의 논단은 불가한 상태다.

 

▲ [사진 13] 냉장고


관계인이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가스레인지 상판의 수열이나 변색 흔적이 잔류한 가스레인지 레버가 ON 위치로 식별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관계인이 점심 식사 후에 음식물을 조리하는 걸 잊은 채 모두 작업장으로 이동해 작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물을 조리하던 조리기구와 버너 캡이 용융되고 조리기구 받침대 위에 조리기구가 용융, 응착된 상태로 잔류해 있는 건 외부 수열에 의한 현상보다 자체 발열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컨테이너 벽면 단열재 부분에 착화ㆍ발화해 연소 확대한 화재로 화재 발견부터 신고까지 시간이 지체돼 연소 확대 피해가 컸던 사고로 기억에 남는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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