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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근절돼야 할 방화, 누구의 잘못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1/12/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근절돼야 할 방화, 누구의 잘못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1/12/20 [10:00]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고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계절이다. 추워지면서 난로나 난방기구를 찾곤 하는데 가까이하면 뜨겁고 멀리하면 추운 딱 그런 날씨다.

 

추운 계절 일상생활에서 나와 관계는 없어도 흥미를 느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시 쳐다보다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화재와의 싸움이다. 흔히 강 건너 불구경,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안타깝긴 하지만 크게 슬픔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냥 남의 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후 영화나 드라마를 본듯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길거리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고 다투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흥미롭게 쳐다보며 한가로울 수 있다. 내 시련이나 아픔이 아니고 남의 일이니 쉽게 생각하고 즐긴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의 승패와 관계없이 그 싸움 자체를 즐기는 게 주변인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화재는 소방당국에서 예방정책을 펼치고 아무리 강조해도 국민 스스로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예방하기 어렵다. 특히 방화와 같은 범죄는 사람이 이미 불을 놓을 생각으로 계획하고 움직여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더 이상의 예방정책은 의미가 없다.

 

‘불조심’을 홍보하고 교육하면서 학습하지만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화재가 가장 잦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사자성어가 있듯이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하고 되풀이해 교육하면서 홍보해도 과하지 않다.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건 우리가 생활하면서 ‘나는 괜찮아!’, ‘이 정도쯤이야, 설마 불이 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다.

 

어느 봄날 자정 무렵 관광버스 회사 차고지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다.

 

화재 발생 지점에는 관광버스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다. 주차된 버스 중 정 가운데 주차된 버스 안에서 화재가 발생한 형태로 보였다.

 

그러나 최초목격자 나 씨는 주택에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주택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 주변을 확인하던 중 주차된 오른쪽 버스 안에서 불꽃과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고 신고했다고 했다.

 

연소상황을 확인하라!

주차장 외부 경계는 2m 높이 철판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다.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아니 출입문이 없다고 하는 게 맞다. 버스가 수시로 드나들기에 출입문은 상시 열어 놓은 상태로 고정해 잠금이 의미가 없었다.

 

▲ [그림 1] 버스 주차 형태

 

소방대 도착 시 화재 차량에서 연소 확대해 주변 차량을 연소시키고 있었다. 가운데 ‘7978’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변으로 연소 확대한 형태로 식별됐다. 화재조사관은 현장에 도착하면 최초목격자 진술과 선착한 소방대원의 진술이 일치하는지와 연소 패턴이 맞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오류가 적다.

 

▲ [사진 1] 화재 현장


언뜻 [사진 1]에서 볼 때 가운데 버스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처럼 관찰된다. 버스나 모든 자동차는 상시 전원(B+)과 Key on(ACC)으로 전원이 설계돼 있어 자동차 어느 지점에서 최초 화염이 발생했는지가 중요하다. 주차된 상태에서 발생한 화재로 상시 전원이 있는 부분인지, Key on 전원이 있는 부분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연소 패턴을 확인하라!

차량의 연소 흔적이 잔류해 있다면 연소 패턴을 확인해야 한다. 차량 내부 내장재는 평준화돼 있고 의자 배열이 비슷하다. 가연성 재질이 많기에 연소 속도와 탄화 정도가 골고루 나타난다.

 

물론 화염과 열이 급격하게 상승해 연소 패턴의 판단이 어려울 때도, 차체에 그대로 연소 방향성이 잔류하는 때도 있어 어느 것 하나라도 간과해선 안 된다.

 

버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내부 공간이 넓고 의자 등 가연재가 많아 착화하면 쉽게 연소 확대한다. 버스는 운전석 주변으로 상시 전원이 있지만 중간이나 뒤쪽으로는 상시 전원이 한정돼 있어 실내에서 화재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 [사진 2] 최초 발화한 버스


최초 발화한 버스에는 버스 내부에서 발생한 패턴이 잔류해 있었다. 운전석 방향보다는 뒤쪽 연소 형태가 깊게 관찰되고 연소 패턴은 발화지점이 버스 내부인지 외부인지를 구별 지을 수 있는 형태의 패턴으로 관찰됐다.

 

▲ [사진 3] 버스 측면 패턴

 

[사진 3] 왼쪽에 있는 버스가 발화한 버스고 신고 당시 오른쪽 버스는 미연소 상태였다고 최초목격자 나 씨가 진술했다. 그렇다면 버스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가 맞다.

 

내부 연소 형태를 확인하라!

버스 내부 연소 형태를 조사한바 목격자 나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연소 형태다.

 

▲ [사진 4] 버스 내부


버스 내부는 전소돼 의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서 연소 방향성 확인이 불가했다. 상시 전원이 있었으나 화재 하중이 높아 아마도 용융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버스 내 구조물을 지지했던 철재가 만곡된 형태는 전선의 용융점 이상 온도가 상승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버스 내부 연소 패턴, 외부 연소 패턴이 목격자 진술과 일치하는 패턴 등으로 나타났다. 버스 내부가 전소되고 외부에는 수열 방향이 일부 식별됐기에 내부에서 발화한 형태로 판단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 [사진 5] 버스 엔진


버스 엔진 부분은 연소 흔적이나 탄화흔적 없이 잔류했다. 이 화재는 단순하게 연소 패턴만 고려하고 버스 실내와 실외, 엔진실과 실내 등으로 구분해 살펴보면 탄화흔적이 얇고 넓게 탄화한 형태로 판단할 수 있다.

 

[사진 4]처럼 객실은 전소된 상태로 확인되는 반면 엔진은 전혀 화염 전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얇고 넓게 탄화한 흔적은 인위적으로 점화할 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주변에 숨어있는 목격자를 확인하라!

화재 현장이나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 또는 주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확인하라. 다행히 버스 주차장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있었다. 따라서 쉽게 발화지점을 찾고 화재 원인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재 현장이 그러하듯 발화지점이나 원인을 정확하게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는 그리 흔치 않다.

 

▲ [사진 6] 버스 출입문 확인


적색 화살표 부분이 버스 앞쪽 출입문이다. 버스 출입문이 닫혀 있었고 이때 시간이 오후 11시 40분께다. 버스 출입문이 닫힌 상태에서 발생했다면 버스 내부 상시 전원에서 문제가 발생한 거로 추정할 수 있다.

 

▲ [사진 7] 버스 출입문 열림


그런데 5분 뒤 촬영된 영상에서 버스 출입문이 열린 형태가 관찰된다. 누군가 출입했다는 증거다. 누가, 왜, 어떻게, 버스 출입문을 열었을까? 버스 Key를 가진 버스 회사나 담당 기사분일 거다. 폐쇄회로에서 정확하게 인물을 확인할 수 없어 일단 버스 담당 기사를 수배하고 확인했다.

 

담당 기사는 화재 당일 오후 9시께 차량을 주차하고 퇴근해 자택에서 취침 중 전화를 받아 화재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버스 Key를 갖고 있거나 문을 개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 [사진 8] 버스 내 불빛


버스 출입문 개방을 확인하고 약 4초 후 버스 내부에서 환하게 빛이 확인된다. 버스 내 전등을 켠 건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버스 내부에서 빛이 확인된다는 건 누군가 출입했단 증거다. 화재를 인지하고 진압하려 했든 불을 놓으려 했든 화재가 발생한 거라면 발화지점을 버스 내부로 한정할 수 있다.

 

출입자를 확인하라!

버스에 출입자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출입자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출입자가 있었다는 건 방화를 의심케 한다. 방화가 의심되는 경우 현장을 보존하고 수사기관에 업무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다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장 조사와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증거가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 또는 망실될 수 있다면 즉시 증거를 수집ㆍ보관해야 한다.

 

우선 주차장에 설치된 폐쇄회로를 확보해 영상을 차근차근 검색했다. 누군가 버스 내부로 진입한 후 버스 내부가 밝아지고 빛이 분산하면서 산란하는 형태가 식별된다. 빛이 산란한다는 건 유염 화원이란 방증이고 누군가 출입 후 빛이 산란했다면 고의로 불을 놓았다고 추단할 수 있다.

 

▲ [사진 9] 인명 확인


[사진 8]의 불빛이 밝아지고 약 8초 후 누군가가 버스에서 내려 움직이는 모습이 확인됐다. 분명 방화하고 나오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폐쇄회로가 너무 멀리서 촬영해 모습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웠다.

 

폐쇄회로에 촬영됐다면 누구인지, 옷은 무슨 색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어야 함에도 거리가 너무 멀고 야간이라 흑백으로 촬영돼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사람이 버스에서 나오는 장면과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확인될 뿐이다.

 

현장에서 생각하고 확인하라!

첫째 발화지점인 버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즉 차량 Key를 갖고 있거나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의 알리바이(alibi)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출입문을 들어와 다른 차량이 아닌 특정 차량에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을 알고 있거나 화재 차량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이다.

 

셋째 출입한 사람의 외모는 확인할 수 없지만 움직이는 동작이나 걸음걸이 등으로 특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즉 직원이나 대표자 등을 통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인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 건물 외부로 나가는 모습이 확인되니 골목에 설치된 폐쇄회로는 없는지 건물에 설치된 폐쇄회로는 없는지를 확인하고 출입문에서 나가는 동선을 확인해 최대한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

 

폐쇄회로에 촬영된 출입자를 확인하고자 직원과 대표자를 섭외해 폐쇄회로에 촬영된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걸음걸이 특징을 설명하고 폐쇄회로를 보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동료 직원 김 씨가 걸음걸이를 확인하더니 “그만둔 이 씨가 맞다”고 단정한다.

 

“왜 이 씨라고 단정하세요?”

“걸음걸이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걷잖아요”

“이 씨가 장애가 있었나요?”

“아니요.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서 걸어요”

“멀리서 촬영돼 확인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시네요”

“이 씨와 근무한 시간이 얼마인데요”

“왜 지금은 같이 일하지 않나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어 싸우고 그만뒀어요. 그렇다고 불을 지르나?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어요”

 

조사한 내용을 그대로 현장에 있던 경찰에 전달하고 폐쇄회로에 있는 사람이 얼마 전 그만둔 이 씨인걸 알렸다. 이렇게 원인과 불을 놓은 사람이 특정됐다. 이후의 일은 수사기관에서 진행할 일이고 화재조사관은 더는 방화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조사를 이어간다.

 

화재 현장을 더 상세히 조사한 후 화재 원인은 방화로 밝혀졌지만 사용한 연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불을 붙였는지 확인해야 한다.

 

‘방화’는 중대한 범죄다

방화 사건은 중한 범죄로 엄히 다스려지고 있지만 방화로 인한 결과나 아픔은 엄청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너무도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 쓰라린 기억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신변을 비관해 주유소에서 플라스틱 통에 휘발유를 담아 지하철에 승차했다. 그는 객실 내부에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객실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이 방화를 말리거나 화재를 진압할 시간조차 없었던 거로 해석된다.

 

또 2008년에는 국보 1호 남대문이 방화로 전소됐다. 자신의 토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사회에 불만을 품고 방화를 계획한 후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놓았다. 방화는 예방할 수 없다.

 

아무리 빨리 소방당국에 신고한다 해도 이미 연소 상태가 최성기로 접어들거나 쇠퇴기에 접어든 후라면 돌이킬 수 없다. 고의로 불을 놓기에 실화에서 발생하는 화재와는 양상이나 연소 속도가 다르다.

 

▲ [사진 10] 전소된 버스

 

이처럼 방화는 전소하는 화재가 대부분이고 소위 건질 게 없다. 버스 화재의 경우 방화 입증이 상당히 난해하다. 가연성 재질로 이뤄져 있고 연소가 시작되면 화재 하중이 크게 걸리기에 잔류한 증거 발굴도 어렵다. 설령 증거가 발굴된다 해도 입증이 녹록지 않다. 이차적으로 형성된 증거일 수 있다.

 

특히 버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내부 좌석이나 단열재 등이 소실되면 화염 온도가 1300℃ 정도로 철(Fe)이 만곡한 현상이 나타난다. 비철금속은 소실되거나 용융돼 형태 분간이 어렵게 잔류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폐쇄회로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는 화재 사건이었다. 화재 현장에서는 소소한 증거나 특이점 하나라도 간과하거나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이번 화재 사고는 폐쇄회로에 촬영된 방화자의 걸음걸이나 동작 또는 습관 등을 확인해 특정할 수 있었다. 

 

방화는 반드시 근절돼야 할 사회적 범죄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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