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인가, 전기적 요인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2/03/21 [10:30]

[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인가, 전기적 요인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2/03/21 [10:30]

화재조사관은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과 반론이 제기될 부분을 생각하고 결론 내려야 한다. 연소 흔적이나 화재 원인에 대한 주장을 이어가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 또는 과학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즉 현장 관찰을 통해 하나하나의 증거를 찾고 정리해 화재 원인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검증해야 한다. 검증된 화재 원인을 토대로 진실을 따지고 증거를 찾아 정리한 내용의 논리적 타당성을 가려 규명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화재 원인을 발굴하지 못하거나 현장에서 화인을 전혀 확인할 수 없을 때도 화재 원인을 보고서 작성용으로 규명하거나 작성해선 안 된다. 화재 원인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 그쳐야 하고 중심을 잃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소유나 점유를 달리하는 둘 이상의 소훼물이 있을 때 더욱 신중하게 조사해야 한다. 원인 규명이 없을 땐 현장을 그대로 가감 없이 지면 위에 올려놔야 한다.

 

어느 해 봄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에 넓고 넓은 공사 현장 굴삭기에서 발생한 화재다. 인근에 도로나 보도가 없고 주변은 개발이 한창이라 온통 땅을 헤쳐 놓은 상태였다. 공사 현장 테두리는 펜스가 있었으나 출입구 방향은 개방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다.

 

▲ [사진 1] 연소한 굴삭기


목격자 진술을 청취하라!

공사 현장을 드나드는 덤프트럭 운전자 이 씨는 출근해 작업 준비 중 멀리 떨어진 굴삭기에서 불꽃이 솟는 걸 보고 신고했다. 주변에 탈 게 없어 연소 확대는 없었다고 했다. 불길을 목격한 시간은 새벽으로 공사 현장에는 작업자가 없었다. 주변에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멀리서 바라봐 굴삭기 어느 부위에서 불꽃이 솟는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그냥 굴삭기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만 진술했다. 그도 그럴 게 굴삭기가 주차된 지점은 도로나 출입구에서 직선거리로 300m 이상 거리였다. 중간에 흙더미가 있어 잘 안 보일 수도 있었다.

 

탄화 흔적을 확인하라!

▲ [사진 2] 굴삭기 전면


[사진 2]는 굴삭기 전면으로 운전석과 붐대 상단에 그을린 형태가 식별된다. 다른 부분은 탄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하단이나 왼쪽 엔진실은 소훼 형태가 작게 식별되고 굴삭기 바퀴(체인) 하단에 기름이 묻어 있는 게 관찰됐으나 탄화 흔적은 없었다.

 

자동차나 기계처럼 독립돼 움직이는 기기들은 사방에서 촬영한 후  연소 흔적이나 연소 방향성을 확인해 발화지점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조사해야 한다.

 

▲ [사진 3] 유압실


유압실은 집중 탄화 흔적이 식별됐다. 하지만 측면 엔진커버는 원색으로 화염전파나 탄화 흔적이 식별되지 않았다. 유압실 연소 형태가 심한 건 누유가 발생해 연소하면서 유압류 자체 연소로 전체적인 소훼 형태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사진 4] 유압실 내부


유압실 내부는 수열 받은 형태는 관찰되나 발열해 출화한 형태는 식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소훼되고 변색한 흔적은 직접 발열 형태보다 수열에 의한 변색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유압실에는 마찰열이나 전선 연결이 없고 발열 가능성이 작아 보였다. 사실 출화 흔적이나 타는 물질은 없었다.

 

▲ [사진 5] 배터리실


배터리실 소훼 상태는 심했다. 철재 변색 흔적은 다른 부분과 비교할 때 진한 군청색으로 잔류했고 배터리도 완전히 소실됐다. 이렇게 소실되면 용융점이 높은 금속이나 비철금속이 잔류하기 마련이다. 용융온도를 상기하고 잔류한 금속이나 비철금속을 확인한다면 발화지점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잔류한 흔적을 확인하라!

▲ [사진 6] 운전석


운전석은 소훼가 심했고 가연물은 모두 소실된 상태였다. 운전석 유리가 내부로 많이 떨어진 걸 미뤄 짐작할 때 운전석 내부나 사진상 오른쪽에서 발화한 형태로 관찰된다. 유리는 용융점 이상으로 강한 수열을 받으면 수열 받은 부분이 먼저 용융돼 약해지면서 소락하게 된다.

 

운전석은 가연물이 모두 타고 일부 알루미늄이 심하게 용융된 형태로 볼 때 내부 온도가 660℃를 상회했을 거로 추정했다. 또 운전석 하단은 운전석 전면에서 후면으로 연소 진행 형태가 식별됐는데 이는 내장재가 연소하면서 나타난 거로 판단했다.

 

▲ [사진 7] 엔진룸


엔진룸의 수열 형태는 엔진커버가 있어 전체적으로 소훼 상태가 심하게 잔류했다. 엔진룸 커버에 부착된 난연재에 방향성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엔진실 내부보다 인접한 다른 부분에서 연소가 확대한 형태로 관찰됐다. 이런 경우 엔진실은 발화지점에서 배제할 수 있다.

 

▲ [사진 8] 엔진 특이점

 

엔진실 내부는 공기 혼합기 유입 부분이 심하게 연소한 형태로 관찰됐다. 이런 현상은 가연재로 이뤄진 상태에서 화염에 의해 연소한 흔적이다.

 

윤활유는 차량이나 기계를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윤활유가 회전하는 관의 재질은 비철금속과 가연성 재질인 고무호스로 연결돼 있어 화재 시 연소하곤 한다. 연소한 굴삭기도 엔진실 내부 가연성 재질은 대부분 소훼 또는 소실됐다.

 

▲ [사진 9] 배터리실 상단


배터리실은 운전석 바로 뒤에 있다. 배터리실 상단은 마치 난로 연통처럼 하단으로 연결돼 있었다. 상단에서 살펴볼 때 케이스가 군청색으로 변색하고 흙이 있어 철재의 변색 흔적만으로 화염 방향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탄화물 변형이나 연관성을 확인하라!

▲ [사진 10] 중앙 유압실


대부분 유압호스 표면은 연소해 소실된 상태였다. 내부 플렉시블(Flexible) 관이 잔류한 형태로 스웨이징(Swaging) 부분도 원형으로 견고하게 압착돼 있었다.

 

유압실 내부 밸브는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 발화 원인으로 작용할 만한 부분이나 발열되는 특정 부분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탄화형태도 타 부분보다 심하지 않게 느껴졌다.

 

▲ [사진 11] 수열 흔적


유압실과 배터리실 소훼 상태를 비교해 변색 흔적으로 확인한바 배터리실 부분 변색이 심했다. 게다가 군청색이 진하고 천공이 확인됐다. 철재 케이스가 군청색으로 변색하고 천공이 발생한 건 어찌 보면 배터리실 화염이 강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사진 12] 유압실 특이점


유압실 오일 게이지 두 개가 있었는데 용융점이 각각 달랐다. 장시간 수열받은 부분은 용융이 심했다. 용융이 덜한 부분은 수열을 적게 받았거나 화염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거로 추정할 수 있다.

 

▲ [사진 13] 오일 게이지 특이점


[사진 13] 왼쪽을 보면 고무 패킹이 모두 소실된 형태다. 오른쪽 오일 게이지 고무 패킹 부분은 잔류해 있다. 이런 현상으로 직접 수열과 간접 수열을 가늠할 수 있다.

 

즉 화염에 가까이 노출되거나 직접 노출된 부분은 가연물이 완전히 소실되고 화염에 멀리 있거나 간접 노출되면 미연소 상태로 남는다. 이런 연소 부분과 미연소 부분의 차이로도 화염의 진행 방향을 추론할 수 있다.

 

용융점을 상기하라!

▲ [사진 14] 배터리실 발굴

 

배터리실 내부는 전소해 배터리 형태조차 식별되지 않았다. 화염 전파 형태가 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잔류한 형태는 전선이 용융돼 있었다.

 

전선이 경화된 상태고 용융 흔적이 있다는 건 주변 온도가 1천℃를 상회했다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선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한 용융점이 식별됐으나 직접적 화인으로 작용했는지 화염에 의해 형성된 형태인진 확인할 수 없었다.

 

▲ [사진 15] 전기적 특이점

 

배터리실에서 전기적 특이점이 식별됐으나 어디로, 어떻게 연결됐던 전선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미확인 단락’이라고 표현한다.

 

미확인 단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면 어느 보고서나 문서에서는 ‘차단기가 트립돼 있고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돼 확인되지 않은 단락’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확인되지 않은 단락이니 ‘미확인 단락’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확인하지도 않은 형태를 미확인 단락이라고 표현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확인 단락이란 단락 흔적이 확인돼야 한다. 단락 흔적이 증거로 있어야 한다. 단락 흔적이 발생한 전선이 어디로, 어떻게 연결된 전선인지 확인할 수 없을 때 표현한다. 

 

즉 단락 흔적은 있으나 어디에, 어떻게 연결돼 어떤 원인에 의해 단락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을 때의 표현이다. 미확인 단락이라도 단락 흔적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단락은 있는데 어느 선에서 어떻게 연결돼 있다가 어떤 이유로 단락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취지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립하고자 한다. ‘미확인 단락’은 단락 흔적은 확인됐으나 어디에, 어떻게 연결된 전선인지 알 수 없을 때의 표현이다. 즉 발화부 주변에서 단락된 전선이 발굴됐으나 어떤 이유로 발생했는지, 어디로 연결됐는지 알 수 없을 때를 칭한다.

 

전선 끝에서 확인된 전기적 특이점은 터미널(Terminal) 단자가 모두 용융된 형태로 식별됐다. 배터리 자체는 대부분 소실되고 확인되지 않은 미상의 탄화물에서 다수의 용융 흔적이 식별됐다.

 

▲ [사진 16] 다수의 용융점


배터리실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되지 않는 물체가 발견됐다. 내부는 비철금속으로 이뤄져 있었다. 관계자도 어떤 용도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게 화재 원인이 됐는지, 수열에 의해 용융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탄화형태로 볼 때 외부 수열에 의해 용융된 형태로 판단했다. 즉 물체 내부에 연결된 비철금속은 원형으로 유지돼 있었고 외형 부분만 소훼되고 용융된 형태로 잔류했다.

 

▲ [사진 17] 전선의 특이점


배터리와 엔진으로 연결됐던 전선이다. 반단선 형태로 잔류했다. 전선 끝부분 일부는 용융돼 있었다. 일부는 잘린 형태로 식별됐다. 반단선이 있었다면 전선에서 부하의 불평형이 상시전원이나 Key-on 상태에서 발생해 전선에 무리가 있었을 거로 판단했다.

 

발화지점을 정리하라!

굴삭기 단독화재로 발화지점은 굴삭기 배터리실로 한정된다. 배터리실에서 분열 흔적이 관찰되고 소훼 상태가 다른 부분에 비해 심하게 식별됐다. 배터리실에서 중간 유압실과 엔진 등으로 연소 확대한 흔적이 식별됐다.

 

운전석과 배터리실, 중간 유압실, 측면 유압실, 엔진실 방향으로 연소 확대한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분열 흔적과 연소 확대 지점을 확인해 가며 발화지점을 축소할 수 있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새벽에 발생한 화재, 주변에 생물이나 지피물이 없고 땅이 파헤쳐진 상태, 새벽으로 태양에 의한 수렴화재 가능성도 작아 자연적 요인은 배제했다. 화학적 요인은 엔진오일과 유압유, 그리스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오일이나 윤활유는 모두 광유1)성분으로 화학반응이 없는 제품이다.

 

방화 가능성은 화재 현장이 공사 현장이고 불특정 다수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삼자의 출입이나 인위적 착화의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배터리실에서 분열 흔적이 관찰되는 점, 운전석과 중간 유압실, 엔진실 등으로 연소한 탄화형태가 나타나 있는 점, 공사 현장은 허허벌판으로 접근성을 고려할 때 고의성을 갖고 출입해 연소시키는 건 어려울 거로 판단되는 점, 굴삭기 전원은 12V, 100A 4개를 사용하고 있으며 배터리실에서 발굴된 미상의 물질이 용융된 형태라는 점, 배터리 터미널 부분과 배터리로 연결됐던 전선에서 반단선 형태가 식별되는 점으로 볼 때 배터리와 연결된 전선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부주의 가능성은 통상적으로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굴삭기나 건설기계를 그대로 현장에 놓고 사용하는 걸 고려할 때 부주의 개연성을 논하긴 쉽지 않았다. 굴삭기 자체가 건설기계로 분류되며 굴삭기 배터리실에서 발생한 화재지만 야간에 주차돼 기계적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굴삭기 상시전원이 통전되는 상태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으나 굴삭기를 하나의 기계로 해석해 전체적 화재 원인을 ‘기계적 요인’으로 봄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

공사장 건설기계인 굴삭기에서 발화된 화재다. 관계자 진술과 최초목격자 진술을 참고하고 잔류된 연소 패턴과 현장의 미연소 잔류물, 주염흔, 집중 탄화된 지점 관찰 등으로 발화지점을 추정했다.

 

굴삭기는 주차된 상태고 화재 발생지점이 공사 현장으로 작업자 외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화재 발생시간이 새벽 시간대로 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사람 외에는 출입자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굴삭기 단독화재로 굴삭기 턴테이블 상부에 국한돼 인위적인 개연성은 작은 거로 판단했다. 배터리실에서 분열 흔적이 관찰되고 운전석과 중앙 유압실 주변이 연소 확대된 패턴으로 관찰되는 점으로 볼 때 배터리실이 발화지점으로 판단됐다.

 

터미널 등이 용융된 점 등을 종합할 때 미확인 단락에 의한 화재로 결론지었다.

 

굴삭기 자체 화재로 본다면 화재 원인 분류는 기계적 요인, 직접적 원인인 배터리 전선의 발열이라면 전기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넓은 의미로 기계적 요인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으로 판단한다.

 

즉 배터리나 전기는 동력원이지 기계를 작동하는 직접적 구조가 아니고 기계를 이루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기기에서 발생한 화재는 전선에 단락 흔적이 있을 경우 전기적 요인으로 보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견이다.

 

기기가 정상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고 이상이 없다면 전선에 스트레스도 없고 화재도 없다. 그러나 기기 이상이나 부품 고장으로 발열해 화재가 발생하면 잔류한 증거는 전선의 용융이 많기에 그렇게 오인될 수 있다.

 

 

 


1) 광유: 석유, 석탄, 타르, 셀유 등의 광물성 원료에서 얻어지는 기름의 총칭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재조사관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연속기획
[연속기획⑦] 다양한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 ‘고객지원과’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