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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시원 안전법규 고쳐놓고도… ‘공염불’ 그친 다중이용업소법

영업주 바뀌어도 강화 규제 법망 소용없는 느슨한 규정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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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4/22 [11:21]

[단독] 고시원 안전법규 고쳐놓고도… ‘공염불’ 그친 다중이용업소법

영업주 바뀌어도 강화 규제 법망 소용없는 느슨한 규정이 문제

최영 기자 | 입력 : 2022/04/22 [11:21]

▲ 화재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의 고시원 복도


[FPN 최영 기자] = 지난 11일 화재로 두 명이 숨진 영등포 고시원은 2019년 업주가 변경되면서 다중이용업소 안전시설에 대한 완비증명을 받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대형 사고를 겪으며 고친 법규의 안전시설은 제대로 적용된 게 없는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고시원은 그동안 대형 화재사고를 겪으며 간이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시설, 피난시설 등 다양한 규제 강화가 이뤄졌다. 이 중 연기를 감지하는 방식의 화재감지기 설치 의무화가 대표적인 개선책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 1월 23일 고시원에는 연기감지기를 설치하도록 법규를 고쳤다. 연기감지기보다 최대 8분가량 늦게 화재를 감지하는 열감지기가 잠을 자는 고시원 등 숙박 형태 시설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의 32개 객실에는 모두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화재경보시설이 정상작동을 했더라도 현행 법규에서 요구하는 연기감지기보단 감지 속도가 느려 거주자들의 피난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행법으로 따질 때 구획된 실 마다 설치해야 하는 비상벨도 없었다. 해당 고시원에는 한 평 남짓한 방이 32개나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화재 시 경보음을 발생시켜주는 비상벨은 방마다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역시 2013년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할 경우 지구음향장치를 구획된 실 마다 설치하도록 한 규정이 반영되지 않은 탓이다.

 

고시원에 설치된 비상벨은 입구 우측 화재 수신기 위의 달랑 한 개가 전부였다. 2019년 교체한 간이스프링클러설비와 연동된 싸이렌이 있긴 했지만 이 역시 수신기 앞쪽에 위치해 전체적인 경보를 울리지 못하는 구조였다.

 

▲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 평면도, 비상벨의 위치는 입구쪽 하나가 전부였다. 두 명의 사망자는 모두 피난구 인근과 급접한 곳에서 쓰러진채 발견됐다.   © 최영 기자


결국 경보를 울려주는 비상벨은 입구 쪽에서만 울려 고시원 내부의 각 방에 있던 거주자가 화재 사실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비상벨로 설치된 경종은 90dB 이상의 성능을 갖지만 격벽이 많고 거리가 멀 경우에는 경보 음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기 때문이다.

 

▲ 고시원에 유일하게 설치돼 있던 비상벨  © 최영 기자

20년 전 제품이 설치된 화재 수신기도 문제다. 관할 소방서인 영등포소방서는 화재 직후 화재경보시설이 정상 작동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영등포소방서 측은 “화재 당시 출동한 대원들이 화재 경보설비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었고 아마 촬영된 영상에도 녹화가 됐을 것”이라며 “대피자들도 경보 소리를 들었다고 했었다”며 이를 정상작동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사 중인 사고라 근거 영상은 제공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고시원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는 2002년 생산된 제품이다. 지난 2016년 1월 소방청은 화재 발생 시 경보시설의 정상작동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기록장치’를 탑재하도록 화재 수신기의 기준을 강화했다. 이듬해부터 생산된 수신기의 경우 화재경보시설의 작동 이력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차량 사고 시 블랙박스로 사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역으로 말하면 오래 전 제조된 해당 고시원의 수신기는 특성상 화재경보시설의 작동 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했다면 과연 화재 초기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얘기다. 

 

또 내부 복도 폭 규정과 원활한 피난을 위해 복도에 의무 설치해야 하는 피난 유도선 등 대다수 안전시설 규정이 최초 완비증명을 받은 2011년부터 2019년 업주가 변경되는 사이에 바뀌었지만 영등포 고시원에는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가 수많은 화재사고 이후 고심하며 내놓은 법규 개선책을 통해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성이 강화되고 소방시설도 과학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관련 개선 정책이 실상에선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고시원 같은 다중이용업소에서 개선 법규가 적용되지 못하는 배경은 느슨한 ‘다중이용업소법’이 원인으로 꼽힌다. 다중이용업주 변경 시 안전시설을 그 시점의 법규로 준수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선 업주가 바뀌더라도 영업장 내부구조의 면적이나 구획실의 증가 또는 내부통로 구조 변경 등이 없다면 소방관서에 안전시설 등을 다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재발급 개념으로 봐 기존 설치해 놓은 안전시설에 대한 점검만 이뤄진다.

 

고시원 같은 고위험군 다중이용업소마저 업주가 수십 번 바뀔지언정 내부구조나 시설 변경이 없다면 그사이 개선된 법규가 있었더라도 소용이 없는 셈이다. 

 

기존 영업 중인 시설까지 강화 법규를 소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영업주 변경 때에는 안전시설의 최신 법규 준용 여부를 검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한 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은 “다중이용시설에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근본 이유는 시설 운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업주보단 불특정다수의 이용자인 국민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며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일률적인 소급적용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업주변경 시점에서의 개선 법규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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