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조사관 이야기] “형광등 기구인가, 전기적 요인인가, 화재 원인에 관한 보험인가?”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여름은 무척이나 힘든 계절이 됐다. 혹서기라고 표현할 만큼 기온이 상승하고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더운 여름이라도 슬기를 발휘해 더위를 시원함으로 바꿔 즐길 수 있는 지혜가 주어지길 바란다.
우린 더울 때는 시원함을 생각하거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세상은 호락호락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다가서느냐, 기지를 발휘해 더위를 내게 맞는 쾌적함으로 만들어 가느냐가 가장 큰 바캉스(Vacance)라고 생각한다.
무덥다고 해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 아니다.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쾌적하고 풍성한 만추의 계절이 찾아온다.
잠시만 기다리면 곧 밝은 태양이 비추는 내일이 우릴 기다린다. 밝은 내일은 오늘에 충실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화재조사관은 오늘이 화재 없이 지나가길 기원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끝까지 화재 원인을 밝혀 정책에 반영되도록 충실하게 기록을 남긴다.
우리나라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화재 원인은 ‘부주의’고 두 번째는 ‘전기적 요인’이다. 우리가 잠시만 부지런하고 사회상규상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준수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화재가 대부분이다.
차량을 운전하고 도로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던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흡연 후 담배꽁초를 차 밖으로 던지는 사람은 자신의 차 내부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다.
너무도 자기 편의주의다. 담배꽁초를 던져 건축물이나 다른 차량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담배꽁초를 투척하지 못할 거다.
두 번째로 많은 전기적 요인을 가만히 보면 화재 원인에 대한 보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친다. 우리나라는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 발생빈도가 높다. 이는 인식의 차이와 분류체계에서 오는 통계일 수도 있다.
정상적인 전선 피복이 왜 손상되고 두 전선이 단락되는지, 기기들 내부에 연결된 전선에서 단락이 발생한다면 진정한 전기적 요인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필자는 전기설비와 옥내 전선, 전원 코드에서 발생한 단락은 전기적 요인으로 분류한다. 기계 내부에 연결된 전선, 즉 기계를 컨트롤하기 위해 연결한 전선에서 단락이 발생한다면 기계로 해석해 기계적 요인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견해다.
어느날 비닐하우스 화재 무더운 여름 오전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닐하우스를 주거시설과 창고로 사용하던 중 관계자가 외출한 사이 발생했다.
연소 잔류물을 살펴보면 농기계와 연소기구, 개수대 등이었다. 신고자는 비닐하우스 부근을 지나가는데 멀리서 비닐하우스 상단에서 검은 연기가 보여 신고했다고 말했다.
관계자 진술과 현장 관찰 소유자 함 씨는 오전 8시께 농사일을 마치고 외출했다고 진술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4개 동 중 평면도 ‘2동’은 1, 3, 4동과 비교할 때 철제 파이프의 만곡 현상 등 소실도가 심하게 식별됐다.
발화지점인 2동에는 건조기가 있었고 화기 취급시설은 사용하지 않고 전일 모두 잠가 놓거나 전원을 차단한 상태였다고 했다.
관계자 진술로 볼 때 건조기 상단에 연결된 전등과 건조기가 발화 원인으로 의심됐다. 전기배선의 절연 열화나 절연 파괴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전기적 요인으로 발화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그러나 모든 현장에서 그러하듯 선입견이나 추측성의 원인 추론은 절대 금물이다.
동별 소실과 만곡 형태를 관찰하라 동별 만곡 형태나 변색 형태를 비교해 관찰하면서 내부에 적재물이 뭐였는지 관계자 함 씨에게 물어보며 잔류물과 만곡 형태, 화염 방향성 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또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던 목재에 잔류한 균열(Turtle pattern, Crocodile pattern) 등을 세심하게 살펴봐도 화염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비닐하우스 내부엔 산소통과 LPG 통, 보일러, 세탁기 등이 보관돼 있었다.
목격자가 2동 지붕에서 검은 연기를 봤다고 했는데 만곡된 형태 또한 1, 2, 3동 중 가장 심하게 식별됐다.
부주의에 의한 화원방치나 전기, 취사도구 과열 등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화재 열원이나 요인을 하나하나 배제하는 형태로 조사하다 보면 무언가 꽂히는 힌트가 보이기도 한다.
전기시설을 확인하라
어쨌거나 차단기는 OFF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화재 당시 전기적 스트레스에 의한 건지, 누군가가 임의로 내린 건지 확인은 불가한 상태였다. 차단기 케이스가 강제 개방된 형태로 관찰되는 건 누군가가 임의로 개방하고 차단기를 내렸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목격자 진술과 관계자 진술을 생각하라 목격자 권 씨는 비닐하우스 부근을 지나는데 비닐하우스 상단부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고 했다. 소유자 함 씨는 아침 일찍 농사일을 마치고 8시께 외출했다고 진술했다.
건조기는 작동시켜 놓은 상태였지만 전등은 켜 놓았는지, 끄고 외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기를 켜 놓은 건 건조기와 형광등이었고 김치냉장고는 항상 꽂아 놓는다고 했다.
철제 파이프를 제거하고 하단의 전원부와 PCB 부분을 확인해야 함에도 상단에서 화염을 받았다는 생각에 하단부를 맨눈으로 식별하는 데 그쳤다.
사실 현재 우리 장비나 여력으로는 철재를 절단하고 걷어내면서 발굴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아니면 철거하고 다시 지을 때 현장을 재감식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현장에서도 화재조사관의 여력이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화재조사관은 증거로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형광등 기구를 살피던 중 특이점이 관찰됐다. 형광등 안정기에 연결된 전선에서 용융 흔적이 관찰됐다. 교재에 있는 형태처럼 둥글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러운 형태로 식별됐다.
현장에서 단락 흔적으로 판단하는데 용융 흔적만으로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망울 형성은 열에 의해 발생하기도, 전기적 에너지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험과 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치를 논하고자 한다.
현장에서 단락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첫째 모재부(母材部)와 용융부 사이 경계부가 있을 것, 둘째 용융부와 모재부의 변색 흔적이 짧을 것, 셋째 용융부 주변의 전선이 경화되지 않고 부드러울 것 등이다. 이 세 가지가 부합한다면 현장에서도 단락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매끄럽고 윤기가 있다고 해서 단락 흔적으로 판단한다면 오류가 있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전기 단락 흔적은 단락 발생 시 순간 온도가 최소 1083℃ 이상 됐을 거다. 인화점이 1083℃ 이하의 가연물에 접촉했다면 충분한 발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증거를 확인하라 화재 현장에서 관계자 진술과 잔류한 증거물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를 확인해야 한다.
형광등 안정기 전선은 망울이 둥글고 경계가 뚜렷하게 식별되며 모재부가 경화되지 않은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외관상으로 봐도 전기적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비닐하우스 화재는 소훼 상태가 심해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지만 잔류한 증거로 최대한 원인에 접근해야 한다.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하나하나 배제하는 방법과 특이점을 찾는 방법을 선택해 병행하며 조사한다면 오류가 있다. 그래도 최소폭으로 줄어들 거다.
이 현장은 농막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비닐하우스에 보관하던 물품들은 농기구보단 생활용품이나 산업용품이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인위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관계자 진술과 현장 사물, 잔류한 물질 등을 비교해 화재 원인을 규명한다.
화재 현장에서 열원과 관계있는 건 하나하나 세심히 확인하고 소소한 거라도 배제하기보다는 증거 가치를 살피면서 확인해야 한다. 전기시설과 김치냉장고, 건조기, 형광등을 모두 확인했다. 메인 차단기는 OFF 상태로 누가 내렸는지, 전기적 요인이 발생하면서 차단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원인을 검토하라 비닐하우스라더라도 차광막이 설치돼 있었고 내부가 어두워 형광등을 켜고 있었다는 관계자 진술에 따라 자연적 요인은 배제된다. 관계인이 새벽부터 농사일을 하고 아침 8시께 마친 후 외출했다고 한 진술과 외부인의 출입은 잦은 곳이 아니라 방화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판단했다.
가스누출 부분은 비닐하우스 내부에 가스레인지가 설치돼 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관계자 진술과 화재지점으로 추정되는 2동 내부 가스레인지에서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았고 가스통이 3동 측면에 설치된 점 등을 미뤄 볼 때 가스누출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했다.
전기를 켜 놓고 외출했다고 해서 부주의로 단정할 수 없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차단하는 게 안전수칙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전기사용에 비춰볼 때 건조기를 가동하고 형광등을 켜 놓은 채 외출했다고 해서 부주의로 보긴 어렵다.
기계적 요인은 건조기가 작동하고 있었지만 소훼 상태가 심하고 잔류물 중에서 증거 확인이 불가했다. 다만 형광등 기구에 연결된 전선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됐고 비닐하우스 2동 내부에 건조기와 김치냉장고, 일반 냉장고, 다수의 가전제품이 식별됐다.
그러나 전기적 특이점이 식별되지 않고 건조기 상단에 설치된 형광등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된 점으로 볼 때 발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닐하우스 내 천장에 설치된 배선이 온도상승 또는 경년열화로 인한 절연 피복 손상이나 습기, 먼지에 의한 도전로 형성 등으로 단락이 형성되며 발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
비닐하우스는 창고 용도로 사용되는 4개 동이 있었고 이 중 비닐하우스 2번째 동은 1, 3, 4동과 비교해 철제 파이프 만곡 현상이 심하게 식별됐다.
건조기에 잔류된 흔적은 화염의 분열 흔적으로 판단했다. 건조기 직상부에 설치된 전등에서 전기적 용단 흔적이 관찰되는 점 외 특이한 화원이 식별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비닐하우스 천정에 설치된 전기배선이 외부 기온상승과 비닐하우스 특성상 지면에서 증발하는 습기 등에 의해 전선에 도전로가 형성돼 발열, 발화한 화재로 판단했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재조사관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