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내무부 주관으로 치러지기 시작한 ‘소방의 날’이 6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공식행사는 없었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를 애도하기 위한 추모 분위기를 고려했다는 게 소방청 설명이다.
사실 11월 5일까지로 정한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난 11월 9일 행사가 열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소방의 날 행사를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 배경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전ㆍ현직 청ㆍ차장 등 고위직의 검찰 수사라는 불미스러운 일에 더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용산소방서장의 과실치사상 혐의 입건 소식 등 일련의 사태들을 뒤로한 채 축포를 쏘아 올릴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6만7천여 명으로 늘어난 소방공무원의 수와 번듯한 단독 소방청의 모습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무한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방은 그간 쌓아온 신뢰와 명예에 짙은 멍을 남기고 있다. 현장에서 소임을 다하는 소방지휘관과 일선 대원들에겐 커다란 실망과 상처를 입혔다.
이태원 참사 책임 추궁은 차치하더라도 최고위직의 연이은 검찰 수사가 앞으로 소방을 쇠퇴시키거나 발목을 잡진 않을까 걱정이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과 소방청 독립 등 큰 변화의 본질적 의미까지 퇴색돼 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다.
유례없는 최고위직의 비위 수사 소식에 “소방조직의 비약적인 규모 확대와 성장의 결과가 결국 인사나 비위 수사인가”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종 비리와 부정적인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직 내부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외부전문가 주축의 청렴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인사와 감사, 공공계약, 회계 등 전 분야를 진단한다는 계획이다.
이조차 소방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 조사 결과가 어떨지 모르는 시점에서 급하게 내놓는 대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겠냐는 이유에서다.
검찰 수사 초점이 최고위직을 향한 의혹과 불신임에도 관련 대책이 실무자 등 하위직을 향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렴성을 명분으로 한 감찰의 독립성이나 중간 심의 절차 등을 마련한다고 해서 인사의 공정성과 비위를 제거하긴 힘들 거란 시각이다.
청렴혁신을 위한 외부전문가 참여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시선도 많다. 소방 내부적으로 불거져온 그간의 인사 공정성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애초부터 청렴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주요 보직을 맡거나 승진하는 문제를 뿌리 뽑을 방안이 필요하다.
인사에 있어서만큼은 소방조직 구성원 모두가 예측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원칙과 이념이 지켜지는 인사를 위해선 자구적 쇄신책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의 지적은 최근 전국 소방본부장과 소방청 고위직이 모인 전국 소방지휘관 회의에서도 제기됐다.
이 자리에선 “윗물이 맑아야 하는데 맑지 않았다면 고위직 모두가 다 때 묻거나 냄새가 밴 사람들이 아니겠냐”는 쓴 말이 나왔다. 또 “과거 선배로부터 우리가 겪은 부조리한 관행과 불편함, 아픔이 있다면 우리 대에서 끊고 절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소방 내부 최고 지휘관이 쏟아낸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로 촉발한 소방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쉽게 걷히지 않을 조짐이다. 검찰 수사가 더 장기화하면 소방청장과 주요 보직의 자리 역시 메우기가 힘들다. 조직 안정화가 없다면 혼란 역시 이어질 게 빤하다.
하지만 때는 반드시 온다. 되돌아봐야 한다. 그간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케케묵은 조직 문화와 관행이 없었는지 세밀하게 살피고 또 점검해야 한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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