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얼토당토않은 과대 홍보는 언제나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이는 마케팅으로 누군가를 현혹하고 상품의 가치를 과도하게 부풀려 소비자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불건전한 상술이다. 결국 이런 마케팅의 부작용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최근 돌아가는 소방장비 기본규격 개발사업을 보고 있자니 과대 홍보 문제가 떠오른다. 7년 전 소방청은 현장 대원이 사용하는 소방장비의 품질과 안전성을 높이겠다며 소방장비 기본규격 개발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애초 소방청은 소방장비 기본규격 개발사업을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 6개년으로 계획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무려 60여 종에 달하는 소방장비 기본규격을 개발했다.
사업 시작 당시 소방청은 기본규격 개발이 완료된 소방장비를 국가인증제도인 ‘KFAC’ 대상 품목으로 전환해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방장비를 직접 사용하는 현장 대원들은 환호했다. 품질과 안전성이 확보된 장비를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란 기대감에서다. 관련 업계 역시 제값을 받고 장비를 공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소방청의 정책을 응원했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될수록 현장 대원들과 업계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다. 수십 종의 장비규격을 개발했다는 성과는 이뤄냈을지언정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 정책이라는 비판이 함께 나온다.
실제 지난해까지 기본규격이 개발된 60여 종의 소방장비 중 KFAC 대상 품목이 된 장비는 7종(펌프차, 고가차, 물탱크차, 화학차, 구조차, 방화복, 공기호흡기)에 불과하다.
올해 9종의 장비를 새롭게 KFAC 대상 품목에 포함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지만 이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검인증 절차를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전문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국 지방 소방본부에서는 국가인증제도를 소방차량 도입을 위한 입찰 참여 자격 부여 용도로만 활용할 뿐 별도 제작규격을 만들어 제각각으로 준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소방청은 최근 기본규격 개발사업의 연장을 결정했다. 지난해까진 1차 사업이었고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다시 2차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목적도 소방장비의 고도화 체계 전환이라는 말로 거창하게 재포장했다.
2차 사업 계획에 따라 올해 첫 번째 기본규격 개발 대상으로 선정된 품목은 9개다. 하지만 선정 품목부터 이해할 수 없다는 논란을 낳고 있다.
기본규격을 새롭게 개발하겠다는 장비는 ‘차체작업등’과 ‘소화보조기구(천정파괴기, 갈쿠리, 지렛대)’ 등 두 가지다. 이 중 소화보조기구는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공구점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장비를 굳이 기본규격까지 개발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나머지 7개 품목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규격의 개정 작업에 불과하다. 기본규격 개발사업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뒷말이 나온다.
소방장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구성원의 이해가 담보되고 해당 정책의 실효성 역시 갖춰졌을 때의 얘기다.
기본규격 개발사업이 정당성과 실효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지금까지 개발된 규격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또 현장 대원은 물론 장비를 공급하는 산업계와의 공감대 역시 형성돼야 한다. ‘소방장비 기본규격 개발사업’이 포장만 그럴싸한 정책이란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현실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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