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안전을 지키는 ‘철강의 힘’… 소화기 산업에 손 내민 ‘포스코’소화기 산업 인큐베이팅 대상 첫 지정, 산업 생태계 강화로 체질 개선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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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기자] = 1293만3151개. 지난해 우리나라에 공급된 소화기 숫자다. 2012년 가정용 소화기 비치 의무화에 이어 2017년 1월 내용연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소화기 시장은 급격히 확대됐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분말소화기의 경우 수요 증가율이 92%가 넘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소화기의 용기와 밸브, 약제 등 각종 부품은 물론 완제품까지 친다면 10개 중 9개는 중국산이다. 국산품 제조로는 관련 시장에서 가격 경쟁부터 쉽지 않아서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고 소화기 산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한 우리나라 철강 기업 포스코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포스코는 3년 전 소화기 산업을 ‘인큐베이팅 산업’으로 지정하고 산업 육성과 생태계 개선을 목표로 다각적인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포스코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는 특정 분야 산업에 디자인뿐 아니라 연관 기술과 정책, 법률, 브랜드 쉐어링 등을 다양하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포스코의 ‘기업시민’이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한 ‘중소기업과의 상생 도모’라는 취지가 녹아있다. 이는 기업 역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사회에도 공헌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 덕에 국내산 소화기의 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2021년 100t에 불과했던 소화기 분야 철강 수요는 이듬해 500t으로 증가했고 지난해를 기점으로 2천t을 넘어섰다. 국내 소화기 용기에 쓰이는 철강의 양이 증가했다는 건 국산품의 보급량 또한 늘었다는 걸 의미한다. 포스코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의 매출 증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수치의 증가를 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포스코와 국내 중소기업 간의 협력은 상호 보완적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의 안정성과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 소화기 산업에 대한 포스코의 관심은 지난 2021년 철강 파동 때 국내 소화기 산업체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이 시작이었다. 저가 중국산 소화기에 밀려 국내 소화기 생산업체 중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생존한 기업들도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박현우 포스코 냉연마케팅실 담당은 조사에 착수했다. 국내 소화기 시장의 실태를 마주한 그는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의 첫 대상으로 꼭 삼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당시 소화기 업체와의 통화 이후 시장 조사와 함께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죠. 소방안전 산업은 철강 산업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처한 현실이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포스코가 소화기 산업을 인큐베이팅 해보자고 마음먹은 건 중국에 의존한 시장 구조를 보고 나서다. 자칫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나라 소화기 수급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컸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요소수 사태가 발생했어요. 공급처를 다변화하지 않고 특정 국가에 의존한다는 게 산업계와 국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체감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2021년 6월 국내 소화기 산업 육성을 결정한 포스코는 차별화를 위해 가정용 소화기의 디자인 솔루션 개발을 완료했다.
2022년 6월엔 자동차용 소화기 용기를 개발하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자동차용 소화기 설치 의무화 제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소화기 용기 개발을 위한 연구과제를 포스코가 직접 수행해 지금까지 없던 0.6㎏급 자동차용 소화기를 중소기업인 (주)대동소방과 함께 개발해냈다.
또 연간 4만5천개에 달하는 국내산 소화기를 같은 그룹사인 포스코E&C가 구매하면서 동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인큐베이팅 과정에선 소화기 생산업체의 재활용 소화약제 수급 방안과 수입국 다변화 대책을 함께 찾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포스코가 소화기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기로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나라 풀뿌리 기업의 확대였습니다. 국내 제조업은 강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대다수가 고정비와 변동비 상승, 글로벌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포스코의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국내 소방산업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철강산업의 거인이 소화기 산업에 관심을 가진 덕에 상생과 동반 성장의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최근 포스코는 국내 소화기 산업의 수출길을 모색 중이다. 글로벌 인증 기준인 UL과 FM 등 수출에 필요한 규정 분석에 더해 판로 개척을 위한 포스코그룹사의 공동 협력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제는 안전 품목도 우리가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단순히 하나의 산업 지원을 넘어 국가 산업의 다변화와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게 포스코의 장기적 비전입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