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서천특화시장 ‘火’ 키운 범인은 다름 아닌 서천군이었다(종합)9년 전 리모델링 과정서 천장재 없던 수산물동에 SMC 1만6천여 장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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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박준호 기자] = 지난 7일 <FPN/소방방재신문>이 서천시장의 화재확산 이유를 분석한 기사([단독/집중취재] 화마가 삼킨 서천특화시장… 거센 불길 피할 수 없었던 이유) 보도 이후 플라스틱 천장재, 일명 SMC(Sheet Molding Compound)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천장에 시공된 것인지를 추적하기 위해 취재했다.
그 결과 서천시장 천장 마감재로 적용된 SMC는 9년 전 서천군이 시행한 현대화사업 과정에서 부착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천시장은 가연성 천장재가 없던 시절 두 차례 화재를 겪었지만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게다가 서천군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군청사 시공 시 서천시장과 달리 불에 강한 천장재를 적용한 사실도 밝혀졌다. 서민들을 위험 속에 방치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안전만 챙겼다는 비판이 거세진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서천시장을 화약고로 만들어버린 가연성 플라스틱 천장재의 적용 과정과 새롭게 확인된 과거 화재 사고 사례, 서천군의 이해 못 할 행태 등 그 내막을 집중취재했다.
독이 된 9년 전 서천특화시장 현대화사업
서천시장에 설치된 SMC 가연성 천장재는 9년 전 서천군이 시행한 현대화사업 과정에서 부착된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시장의 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한 리모델링 사업이 되레 지역 서민들의 터전을 화마의 위험 속에 몰아넣은 꼴이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지난 2004년 9월 서천시장 최초 개장 이후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블로거 등 누리꾼이 촬영한 수백 장의 과거 사진을 추적했다.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천군이 수산물동의 시설 현대화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화재 위험을 키운 흔적이다.
서천시장 수산물동은 개장 후 약 10여 년간 천장재 없이 운영해 왔다. 당시 2층 식당의 경우 불연재질인 석고보드가 천장재로 쓰였던 거로 확인된다. 이때만 해도 천장재로 인한 화재확산 위험은 없었다.
비극의 시작은 노후 시설을 정비하기 위해 시행한 ‘현대화사업’이었다. 서천군은 2014년 서천시장의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이를 수용할 대형 식당과 주차장을 조성하고 화재안전시설 등 안전관리 강화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사업엔 국비와 도비 등 약 110억원의 사업비가 편성됐다.
서천군은 2015년 6월 8일부터 8월 10일까지 두 달간 수산물동을 임시 휴업하고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바닥을 교체ㆍ보완하고 배수로를 정비했다.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차공간 80면을 확보하고 노후한 소방시설도 전면 보수했다.
또 ‘천장재’를 새롭게 시공했다. 이 과정에서 천장재가 아예 없던 1층과 2층 천장을 모두 SMC로 마감했다. 2층 식당가의 경우 불연재질의 석고보드 천장재가 있었지만 이를 모두 떼어낸 뒤 SMC로 교체했다. 개방된 천장을 SMC로 막고 불에 강한 마감재를 가연물로 바꾸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거다.
전통시장의 기반시설을 정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 현대화사업이 되레 수산물동 전체를 커다란 ‘화약고’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천군은 현대화사업 당시 스프링클러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교체하는 등 화재 안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정작 소방시설보다 시설물 자체의 안전성을 좌우하는 건축자재인 ‘천장재’의 위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화재안전 분야의 한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천장재를 가연성 자재로만 바꾸지 않았어도 서천시장 화재가 이번 사고처럼 천장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현대화사업 당시 소방시설에 거액의 예산을 투자한 의미 역시 모두 잃어버린 꼴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화재를 겪은 서천군은 SMC가 언제 시공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천군 관계자는 SMC 설치 시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잘 모른다”면서 추가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답을 피했다.
“과거 두 차례 화재 땐 달랐다”… 바뀐 건 ‘천장재’
서천시장은 과거 두 차례의 화재를 겪었지만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두 건의 화재 모두 가연성 천장재인 SMC가 없던 때로 밝혀졌다.
이번 화재로 전소한 서천시장 수산물동은 지난 2011년, 2014년 두 번이나 화재를 겪었다. 2004년 준공 이후 7년 차에 겪은 첫 화재는 2011년 9월 16일 오전 2시 41분께 수산물동 1층 내 한 점포에서 시작됐다. 분전반 부근에서 전기적요인(단락)으로 시작된 불은 고무 배관(냉각기 호스)을 타고 천장과 벽면의 샌드위치패널로 확산했다.
이 불은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34분 만에 진화됐다. 벽면 10㎡가 소실됐고 천장 96㎡가 그을리는 정도의 피해만 입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서천시장에는 또 한 번의 유사 화재가 발생했다. 2014년 10월 6일 오후 11시 13분께 1층 점포 벽 부근 분전반에서 시작된 불은 주변 가연물을 타고 확산했다. 소방대원들은 1시간 2분에 걸친 진압 활동 끝에 불을 끌 수 있었다. 분전반의 폭발과 함께 시작된 이 불 역시 건물 외벽과 점포의 벽체로 번졌지만 건물 전체로 확대되진 않았다.
이 두 사고와 최근 화재는 수산물동에서 화재 취약 시간대에 일어났다는 점, 소방관들이 출동해서야 진압됐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크게 닮아있다.
화재 원인도 유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발생한 두 화재의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오래전 결론이 났다. 이번 화재의 원인이 아직 공식 발표된 건 아니지만 합동 감식 과정에서 단락흔이 발견되면서 전기적 요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건물에서, 비슷한 시각에, 유사 원인으로 불이 났지만 건물 전체가 전소한 이번 화재와 확실히 달랐다.
큰 피해 없이 진화됐던 과거 두 화재와 이번 사고의 차이는 바로 ‘SMC’의 유무였다. 앞선 두 화재가 발생한 시점은 서천시장 현대화사업 시행 전으로 1층 천장에는 아예 마감재가 없었고 2층에는 불연재인 석고보드를 적용했던 때였다.
그런데 서천군은 2015년 현대화사업을 통해 서천시장 수산물동 1ㆍ2층에 무려 1만 6천 장에 달하는 SMC를 부착하며 건물 전체를 화약고로 만들었다. 자그마치 플라스틱 마감재의 무게가 18t에 달하는 양이다.
2024년 1월 22일까지 약 9년 동안 다행히 불이 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천장재 적용 후 처음 겪은 화재로 건물 전체가 전소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설치한 천장재가 오히려 불을 키운 독이 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소방과 경찰 등 조사기관에 따르면 이번 화재의 경우 과거 벽면의 전기시설에서 발화한 것과 달리 불이 천장에서 시작됐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 천장재가 없었더라면 전기시설 자체가 노출돼 있었을 거고 화재 확산이 쉬운 연소물(SMC)도 없어 사고 피해 규모가 달라졌을 거란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가연성 천장재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화재 사고 시 피해를 키우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황인호 경기 용인소방서 화재조사관은 “천장재에 불이 닿으면 한두 개의 플라스틱이 탄화된 후 수평적으로 폭발과 함께 확산하게 된다”며 “이는 반자와 천장 사이에 생기는 공간에 가연성 가스가 차 화재 시 폭발적인 연소가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플라스틱 천장 마감재를 쓰면 급격한 연소확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면서 “필로티 구조나 시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쓰면 안 되는 자재”라고 경고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과거 서천시장의 화재 사고 조사관도 화재 확산요인으로 지목된 천장재의 위험성을 심각한 문제로 봤다.
당시 화재조사를 수행한 소방공무원 A 씨는 “이번 화재확산에 SMC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건 명확해 보인다”면서 “2011년과 2014년 때처럼 수산물동에 SMC가 없었으면 불이 이렇게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 삶터 화약고 만든 서천군… 청사 건물 안전은 챙겼다
서천군은 지난 2016년부터 군청 신청사 건립을 추진했다. 주민공청회와 여론조사 등을 거쳐 서천역 부근을 건립부지로 최종 선정하고 2020년 착공, 지난해 3월 준공했다.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1만5670㎡ 규모로 47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직접 서천군청을 찾아 필로티 천장과 건물 내부에 쓰인 마감재를 확인해봤다. 서천군청은 1층 정문 입구와 1ㆍ2층 좌측이 필로티 구조를 띤다. 우측 편 서천군의회와 연결되는 통로 또한 필로티 형태다. 그런데 외부 필로티, 주차장 진ㆍ출입로 천장 마감재 모두 금속 재질인 알루미늄으로 시공돼 있었다.
알루미늄 천장재는 금속 소재인 알루미늄에 색을 입힌 자재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내식성과 준불연성(용융점 600℃)을 갖춘 게 특징이다. 가연성 SMC보다 용융점이 3배 높아 화재에 강하고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싸다.
서천군청사에는 서천시장 내 천장재와 동일 크기의 자재를 3천 장 이상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못해도 천장재에만 수천만원의 예산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청사 내부 역시 서천시장의 2층과 달리 알루미늄 천장재보다 더 불에 강한 마이톤과 석고보드 천장재를 부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톤은 순수 자연광석으로 제조되는 미네랄울이 주원료인 불연성 제품이다. 석고보드 천장재 역시 주성분이 황산염 광물로 만들어진 불연재다.
이를 두고 군민의 복리와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서천군이 자신들의 업무공간만 안전을 챙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민의 삶의 터전이자 연간 무려 100만명의 인파가 오가는 서천시장 내부 천장에는 위험천만한 SMC를 잔뜩 적용하면서도 새롭게 지은 자신들의 청사에는 불에 강한 자재를 썼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서천군은 군청사는 물론 서천시장의 건축허가부터 사용승인까지 전반적인 건축 행정 절차를 담당한 관할 지자체이자 소유권자다. 특히 2015년엔 시장 현대화사업을 진행하며 서천시장의 노후시설 정비대책과 건축자재 선정 등 리모델링 사업 전반을 결정하고 추진했다.
서천군청사와 서천시장 모두 서천군의 계획과 결정에 따라 지어진 건물인데도 건축 자재의 안전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시민의 안전만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또 서천시장에도 청사와 같이 준불연 이상 수준의 자재들이 쓰였다면 최근의 사고처럼 화재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진 않았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전해 들은 한 지역주민은 “본인들이 근무하는 곳은 안전하게 만들고 서민들이 생활하는 시장은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 “시민은 건물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걸 알아서 챙기라고 지자체와 공무원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이와 관련해 서천군 홍보팀과 도시건축과 등 관련 부서에 입장을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최영, 박준호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