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흉 민간인 잠수사가 그토록 허망하게 구조작업 중 사망했지만 수색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3011호 경비함에 해경 관계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진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가는 줄 알았다.
“오전에 민간인 잠수사를 인양한 소방 잠수팀 중 한 명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분명 잠수 후 몸 상태를 체크했을 땐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거의 10시간이 흐르고 나서 통증이라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조바심이 났다. 급한 마음을 추스려보려 했지만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기 쉽지 않았다.
감압병이면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전에 잠수한 대원 두 명을 해군 청해진함으로 이동시켜 챔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경 관계자와 협의했다. 3011호에서 청해진함에 승선해 재압챔버로 들어가기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긴박했다.
대원들이 치료받는 동안 더 분주해졌다. 팽목항에 있는 CP에도 보고해야 했고 내 나름대로 다른 대원들을 상대로 통증을 호소하는 대원 조사도 해야 했다.
감압병이라면 잠수 직후 발생하는 게 통상적이다. ‘바로 징후가 보이지 않더라도 10시간 후에 통증이 나타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압병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의사가 아니니 섣부르게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오후 6시 2분에 시작된 치료는 오후 10시 50분이 돼서야 끝났다. 군의관 상담도 마쳤다. 재압챔버 치료를 받으면 가슴 통증이 어느 정도 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국 목포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했다.
소방도 상황에 따라 바쁘게 움직였지만 구조 잠수 후 사항이라 해경도 상황 파악에 분주했다. 안전 담당관으로서 대원의 상태가 궁금해서 그 좁은 바지선을 혼자 배회했다. 배회한다고 해봐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그곳이 그곳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기엔 딱히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가슴 통증의 원인은 감압병이 아니고 기흉1)으로 판명됐다. 가슴 통증을 호소한 대원은 “기흉으로 인해 수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다이빙 전문가 대부분은 다이빙을 절대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무리하지 않게 수심을 증가하면서 레크리에이션 다이빙 정도는 가능하다는 게 소수 의견이다.
하지만 이곳은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구조 잠수를 해야 하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가장 힘든 다이빙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전 담당관은 파악하지 못했고 대원은 기흉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해경 감독관에게 소방 잠수 대원 선발과 관련한 질타를 받았다.
“모든 국민 시선이 쏠려있는 곳이라 사고가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니 잠수 대원들 선발할 때 신경 써달라. 그리고 다음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호한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어쨌든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다. 사전에 꼼꼼히 대원들을 살폈어야 했다.
담배를 다시 꺼내 피우다 민간 잠수사 사망 후에는 모든 게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내 몸과 정신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보고용과 기록용으로 찍어둔 사진을 아직까지도 삭제하지 못하고 사진 클라우드에 저장해 놨다.
사건 발생 이후 열흘이 지나가면서 불면증이 찾아왔다. 여섯 시간 간격으로 정조 때가 된다. 그리고 정조 시간이 매일 한 시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잠자리가 없는 상태라 그때그때마다 야전 침대를 들고 잠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녀야 했다.
인양되는 큰아들 또래의 실종자들을 보면서 내 아들들을 생각하니 여태껏 같이한 추억을 찾으려 애써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지선에 혼자 남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대화할 사람도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서서히 철학자가 돼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10년도 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수난 교육훈련을 시키면서 잠수할 땐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당부해 왔기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혼자 바지선 선미에 가서 몰래 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후배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했다. 후배들도 많이 지쳐 보였다. 아마도 몸이 지친 게 아니고 정신적으로 지쳤을 거다. 나처럼 구조대원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도 분명 가졌을 거다. 그래도 잘 따라주는 후배들이 고마웠다.
45m 해저 수색 해경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이하 중특단) 간부가 해저 바닥을 소방에서 수색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해경 중특단도 장비가 있고 대원들도 수색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 소방에 요청을 해와서 내심 좋았다.
그만큼 소방을 믿고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같이 작업하는 동료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후배들의 능력을 믿지만 그래도 강요할 수 없었다. 후배들에게 가능한지 묻자 예상대로 너무 쉽게 좋다고 수락했다.
오랜만에 후배들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실종자들을 민간 잠수사에게 인계받고 인양하는 일만 하다가 단독 임무를 한다고 생각하니 좋았을 거다.
해경의 트라이믹스2) 혼합기체로 충전된 더블 탱크를 제외한 나머지 장비는 모두 소방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세월호 둘레 전체를 한 번에 수색할 수 있는 잠수 시간이 되지 않아 우선 하강 라인을 설치한 곳 중 한쪽 면만 수색하기로 했다.
“혹시 모를 실종자가 유실돼 해저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자. 뻔한 얘기지만 안전에 특히 유의하고 무엇보다도 절대 해저 체류 시간을 초과하면 안 돼”
해저 체류 시간은 25분 감압부터 상승 시간까지 총 53분이 걸린다. 겉으론 내색을 못 했지만 대원들이 입수하자마자부터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봤다. 이때의 53분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가장 긴 53분이었다.
혹시나 모를 실종자를 발견하고 인양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수색을 잘 마무리하고 제시간에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었다.
정확히 입수한 후 53분이 되자 대원들은 하나둘 안전하게 수면 위로 상승했다.
“수색한 쪽에서는 실종자들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수고했어요”
수색을 요청한 해경 간부의 말을 듣자 오랜만에 수색다운 임무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 수색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잠수 중 유일하게 소방에서 단독으로 한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 듯 해왔던 임무로 복귀했다.
1) 공기주머니에 해당하는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이에 따라 흉막강 내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게 되는 질환이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 2) 헬륨, 질소, 산소가 혼합된 기체 독자들과 수난구조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건ㆍ사례 위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만일 수난구조 방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e-mail : sdvteam@naver.com facebook : facebook.com/chongmin.han로 연락하면 된다.
서울119특수구조단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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