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 정전기? 부주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인가?”

광고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4/06/03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 정전기? 부주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4/06/03 [10:00]

화재에는 전기적 요인이나 부주의, 기계적 요인, 화학적 요인 등 수만 가지 원인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재 대부분은 부주의로 비롯된다. 작업자는 작업할 때 상시 안전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살며시 간과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며 안전을 등한시하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식료품 공장에서는 튀김기를 가동한 후 튀김기 내 잔류한 찌꺼기를 청소해야 한다. 하지만 게으름이 엄습해 한곳에 모아두고 퇴근하는 경우 튀김 찌꺼기가 냉각되지 않아 축열하며 발생하는 자연 발화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흡연 후 담뱃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무심코 버리는 행동으로 인한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 

 

이렇듯 화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면서 ‘이 정도는 괜찮아’하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힘들고, 분주하고, 피곤하다. 이런 지친 일상에서 잠시 피우는 게으름은 대부분 별일 없이 지나가지만 대형화재로 이어져 막대한 인명이나 재산 피해를 낳기도 한다.

 

아무리 홍보하고 반복 교육해도 지나치지 않는 불조심. 우리 사회는 유년 시절부터 화재 위험성과 화재진압 요령, 대피 요령을 상시 교육하고 있다. 어쩌면 과유불급처럼 계속 교육해 화재 위험에 관한 생각이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화재 예방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

 

어느 해 추운 겨울 보호용 테이프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다. 아니 폭발이 발생했다. 먼저 건물 외벽을 둘러보고 폭발 피해 정도를 확인했다.

 

화재 현장 외부를 먼저 확인하라!

▲ [사진 1] 건물 창문


건물 남쪽 창문틀은 모두 밖으로 밀려나고 유리창은 전부 파손된 상태였다. 폭발 압력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2] 건물 서쪽


건물 서쪽의 창문틀은 건물에 잔류했으나 모든 유리와 벽면 일부가 파손돼 있었다. 마치 전쟁터보다 더한 폐허가 된 건물을 방불케 했다. 폭발 압력이 크게 작용한 형태로 보였다.

 

▲ [사진 3] 건물 북쪽

 

건물 북쪽은 폭발로 인해 벽면이 모두 파열된 채 철골만 잔류한 상태였다. 폭발된 벽면 안쪽에 공장설비가 식별되는데 일부는 이탈된 형태로 잔류했다. 공장설비 일부와 지붕도 파손된 형태가 식별됐다. 

 

건물 형태만 봐서는 큰 폭발이 있었다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작업자가 건조기 근처에 있었다면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화재 현장 내부를 확인하라!

▲ [사진 4] 공장 내부


공장 내부 설비는 이탈되고 무너져 있었다. 폭발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 상태로 공장설비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언뜻 봤을 때 기계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던 형태로 여겨진다.

 

▲ [사진 5] 덕트 이탈

 

폭발로 인해 건조로 덕트가 모두 파손되고 이탈된 상태였다. 폭발된 형상을 보면 건조로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관계자에게 질문하라!

이곳은 보호용 테이프 제조공장으로 폭발 당시 외국인(태국) 2명이 건조기 하단 1층 코팅 실에서 평소 작업 공정대로 작업 중이었다. 다른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들은 “2층에서 갑자기 강한 폭발과 함께 건물 일부가 흔들리고 파손됐다”고 했다. 

 

관계자에게 질문하려 했으나 물어도 딱히 얻어질 정보가 없었다. 화재 현장을 조사하다 보면 공장 근로자가 내국인보다 외국인일 경우가 많다. 때로는 영어로 대화해 보고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소통이 녹록지 않다.

 

작업 공정을 확인하라!

“김 주임님, 여기 작업 공정이 어떻게 된대요?”

 

“예, 저기 기계에서 접착제를 먹인 후 상단 기계에서 건조해 측면에 있는 롤에 마는 과정이라고 하네요”

 

“아, 그래요? 화재는 어느 지점에서 목격했다던가요?”

 

“기계 상단에서 전체적으로 번쩍했다고 하는데 탄화흔적이 보이질 않네요”

 

작업 공정과 제조 과정, 기계 메커니즘(Mechanism)을 알아야 어느 지점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문제가 됐는지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화재 발생 인과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 [사진 6] 보호용 테이프 제조기

 

보호용 테이프 제조기에서는 롤러에 감겨 있던 비닐(polyethylene)이 하단의 턴테이블(turntable)에서 점착제와 코팅제를 응착시키는 공정이 이뤄진다. 롤러와 롤러 사이를 통과할 때 점착제가 골고루 응착ㆍ응고되면서 코팅된다. 코팅된 보호용 테이프가 완제품으로 제조되기까지는 건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닐에 점착제 응착 공정이 끝나면 제조기 상단의 건조기로 이동해 건조하는 구조다. 공정에 사용한 점착제 성분은 2-에틸헥실 아크릴레이트(2-Ethylhexyl Acrylate)와 에틸 아크릴레이트(Ethyl Acrylate), 아크릴산(Acrylic Acid), 비닐 아세테이트(Vinyl Acetate) 등으로 확인됐다.

 

롤러를 통과한 보호용 테이프를 건조하기 위해선 상단의 건조기로 이동해야 한다. 건조는 건조기 내부에 훈풍을 보내 건조하는 방식이다. 훈풍은 산업용 보일러에서 온도를 올린 후 열교환기를 통과하면 브로아(broa)를 이용해 건조기 내부로 공급하는 구조다. 화재 현장에는 건조기 5기가 설치돼 있었다.

 

건조기 내부에 보일러 열기가 직접 전달되면 과열이나 보호용 테이프에 착화해 불이 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건조하는 기기는 대부분 간접 열풍 방식을 택한다. 특히 이 건조기에는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조기 내 유증을 밖으로 배출하는 집진 설비가 설치돼 있었다.

 

집진 설비 제어반을 확인하니 집진 설비 배기 모터를 작동하는 마그네틱 스위치 하단부 과부하 보호 릴레이(Relay)가 제어(Error)된 상태였다. 릴레이가 제어됐다는 건 집진 설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집진 설비 미작동으로 보호용 테이프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의 유증이 배출되지 않은 채 체류한 상태로 조사됐다. 이 같은 공정에서 비닐과 롤러 사이 마찰 때문에 정전기가 발생한다. 따라서 정전기 발생을 방지하고자 롤러와 롤러 사이에 정전기 방지설비와 접지를 설치한다.

 

의견을 교환하라!

“김 주임님, 이 정도 화재는 주임님이 하셔도 되는데 왜 저를 부르셨어요?”

 

“이 주임님이 해 주셔야죠. 재산피해가 이렇게 크게 발생했는데요”

 

당시 재산 피해액이 1천만원 이상이면 광역조사관이 현장을 조사해야 하는 지침이 있었다.

 

“김 주임님, 상단에 폭발이 크게 작용했네요”

 

“예. 작업 당시 외국인 두 명이 있었는데 다행히 1층 공정 작업실에 있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야간이라 작업자들이 땡땡이친 건 아닐까요? 전화위복이네요”

 

“그럴 수도 있죠. 기계는 어차피 자동이니…”

 

“김 주임님, 작업장 내부에 CCTV가 있나요?”

 

“예, 있어요. 영상을 보니 순간 폭발하던데요”

 

“어디서 폭발하던가요?”

 

“2층에서 폭발하던데 저기는 열원이 아무것도 없네요”

 

“한번 같이 살펴보시죠”

 

“일단 코팅 제조기 먼저 살펴보고요”

 

다행인 건 영상을 보니 작업자들이 1층 코팅실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진 알 수 없으나 폭발 당시 1층 구획된 실에 있어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장을 확인하라!

현장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기계의 작동 원리와 제어 과정을 확인했다.

 

“김 주임님, 먼저 제일 소손이 심한 테이프 제조기를 한번 살펴볼까요?”

 

▲ [사진 7] 제조기 특이점

 

“테이프 제조기 중에 이 기계가 제일 많이 소손된 것 같네요”

 

“김 주임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기계에는 소훼 현상이 잔류하지 않았고 수열에 의해 비닐이 일부 연화됐네요. 폭발은 2층에서 일어났다고 했죠?”

 

“저 위 건조로 초입에서 일어난 것 같아요”

 

“한번 가 보실까요?”

 

▲ [사진 8] 폭발 지점

 

폭발은 건조기 초입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김 주임님, 여기는 연소 흔적이 확인되지 않네요. CCTV를 한번 확인해야겠어요”

 

▲ [사진 9] CCTV 정상 작동


건조로는 정상 작동하고 있었고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는다. 야간 작업자들은 1층 코팅실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 중인듯하다. 작업 공정이나 기계에서는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는다.

 

▲ [사진 10] 작은 불꽃


건조로 초입에서 작은 불꽃이 확인된다. 위 사진 적색 화살표 부분에서 전기 스파크(spark)가 일 듯이 1회 번쩍인다. 이후 반짝이는 불꽃이 반복됐다. 롤러에서 테이프가 이탈한 듯 넓게 퍼지는 현상이 식별됐다. 번쩍거리는 현상은 롤러가 움직이며 보호용 테이프와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정전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 [사진 11] 점화

 

스파크가 발생할 때는 불빛이 작았으나 지속됐고 벽면에 반사되는 불빛이 확연하게 확인됐다. 연소가 시작된 형상이다.

 

“김 주임님, 저기 저 불꽃은 정전기처럼 보이네요. 롤러가 움직일 때 테이프와 마찰 때문에 발생하는 정전기가 마치 전기 스파크처럼 보여요”

 

“정전기, 맞아요. 스파크처럼 번쩍이는 게 반복되는 것 같았어요”

 

“통상적으로 정전기 방지설비를 하는데 확인해 봐야겠네요”

 

“정전기 방지설비는 확인하지 못했는데요”

 

“롤러와 제조되는 테이프 사이에 접지처럼 설치해서 정전기를 방전하는 구조로 설치돼 있어요. 같이 확인해 보시죠”

 

▲ [사진 12] 연소 확대


최초 스파크가 조금씩 반복되다 어느 순간 착화돼 불꽃이 보인 후 급격하게 연소 확대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처음에는 건조기에서 조그만 형상이던 불꽃이 성장하며 벽면에서도 보이고 급기야 건조로 내부까지 연소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건조로 주변이나 내부에 가연물이라고는 보호용 테이프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연소 현상은 넓게 퍼져 나갔다.

 

▲ [사진 13] 건조로 하부


건조로 하부 롤러에는 특이점이 없으나 보호용 테이프가 용융돼 일부가 롤러에 응착된 형태로 관찰됐다. 내부에 있던 형광등은 지지한 한쪽 부분이 탈락했으나 파손되지 않은 상태로 잔류했다.

 

▲ [사진 14] 모터 특이점


정전기가 발생했던 지점에서 모터를 확인했다. 전기 스파크 흔적이나 흑연화(graphite) 현상이 관찰되지 않는다. 특히 건조기에 사용된 모터는 BL 모터(Brush Less Motor)였다.

 

▲ [사진 15] 가스 밸브


건조로 보일러에 공급되던 가스 밸브인데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는다. 다만 밸브가 개방된 상태로 LPG가 공급되고 있었으나 화염 흔적이나 외부 수열 흔적은 관찰되지 않았다.

 

▲ [사진 16] 제어반


제어반 외관상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고 작동 스위치는 모두 ON 상태였다.

 

▲ [사진 17] 제어반 확인

 

제어반 내부를 확인하니 특이점이 보였다. 과부하 보호 릴레이(over load)가 작동돼 있었다. 제어반에서 연결된 전선이 어디, 어떻게 연결됐는진 알 수 없었다.

 

관계자가 설비를 확인한 후 집진 설비를 제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마그네틱 스위치와 과부하 보호 릴레이는 제조기, 건조기와 연동돼 작동하는 구조였다. 제어반에서 자동으로 제어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김 주임님, 제어반을 확인하니 과부하 보호 릴레이가 작동됐네요. 아마도 집진 설비가 정상 작동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집진 설비와 폭발이 관계가 있나요?”

 

“아마도 점착제가 응착된 상태로 건조로에서 건조하다 보면 기름증기가 발생할 거고 배출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주임님, 그럼 점화원이 뭘까요?”

 

“아마도 정전기일 것 같습니다. 비닐(polyethylene)과 건조기 롤러 마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 건조된 상태로 롤러와 마찰이 발생하며 정전기가 발생한 것 같아요. CCTV 영상에서 스파크가 발생하는 모습이 정전기 같아 보입니다”

 

“이 주임님, 정전기에 의해 점화됐다면 연소에 그쳐야지 왜 폭발까지 이어질까요?”

 

“아마도 집진 설비 이상으로 건조로 내에 기름증기가 가득한 채 점화되고 급격하게 연소 확대되며 건조로 내부와 집진 설비 덕트에서 폭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럴까요? 폭발이 이 정도로 이어지려면 더 큰 가연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아마도 가스 밸브가 열려 있어 건조로 내부에서 LPG가 체류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네요”

 

“아, LPG 가능성이 있네요. 보일러에 공급되던 가스…”

 

“건조로에 일부 가스 설비가 설치된 것 같네요. 순수하게 순풍으로만 건조하는 게 아니라 건조로 내부에서 연소기와 열교환기를 통해 건조하는 설비고 가스 누설이 있었던 것도 배제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사용한 화학약품과 기름증기가 더 크게 작용했을 거로 판단되네요. 집진 설비 고장으로 인한 체류가 더 비중이 클 것 같아요.

 

▲ [사진 18] 정상인 건조로


현장에서 정상 작동하던 보호용 테이프 제조기와 건조기다. 하단에서 생산된 보호용 테이프를 바로 위 건조로에서 건조해 완성하는 단계로 일체형 공정이다.

 

▲ [사진 19] 폭발된 제조기

 

폭발한 제조기는 하단 일부가 파열됐다. 상단 건조로에서 발화됐던 초입 부분은 원형으로 잔류하고 중간 부분은 폭발해 형체를 식별하기 어렵다.

 

결론을 정리하라!

보호용 테이프 생산과정에서는 2-에틸헥실 아크릴레이트와 에틸 아크릴레이트, 아크릴산, 비닐 아세테이트 등이 혼합 점착된다. 이를 건조하기 위해선 상단 건조기로 이동시킨 후 LPG 버너를 이용, 열교환기로 훈풍을 보내 내부 온도를 올려 건조한다.

 

정상 작동했다면 건조로 내부에는 보호용 비닐 테이프에 점착된 2-에틸헥실 아크릴레이트가 건조되며 발생한 가스가 배출돼야 한다. 그러나 집진 설비 이상으로 배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집진 설비는 과부하 보호 릴레이 작동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은 거로 결론지었다. 

 

건조 중에 발생한 가연성 가스가 건조로 내 체류한 점과 공정대로 회전하던 중 롤러에서 정전기로 인해 테이프에 스파크가 발생한 점이 식별됐다. 

 

결론적으로 집진 설비가 멈추면서 건조로 내 가연성 가스가 배출되지 않고 체류했고 이 가스가 롤러와 보호용 비닐 테이프 회전 시 발생한 정전기에 의해 착ㆍ발화돼 건조로 내부에서 급격하게 연소 확대되며 폭발한 화재로 추정했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화재조사관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광고
[인터뷰]
[인터뷰] 고영준 제주도회장 “소방시설 공사 분리발주 온전한 정착 위해 최선”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