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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전기적 요인인가, 예정된 부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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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4/10/02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전기적 요인인가, 예정된 부주의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4/10/02 [10:00]

화재는 아차 하는 순간이나 무심코 지나치는 때 소리 없이 찾아든다. 참으로 이상한 놈이다. 찾아오는 시간을 알 수 있다면 선제 대처와 예방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어찌 소식도, 소리도 없이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들어 존재만 드러내고 스스로 불이 꺼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대형 화재로 번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평소 누구나 한 번쯤은 안전 수칙 위반을 해보지 않았을까. 화재가 발생하면 대부분 “왜 불이 났지? 거긴 불날 게 없는데…”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무언가 하나 실수를 한 경우가 많다.

 

흡연 후 담뱃불을 털어서 끈다든지, 쓰레기 소각 후 불씨가 남아 있는데 그냥 내버려둔다든지…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이 원인이 된다.

 

정상적인 전기 회로에서 또는 임의로 설치한 전선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화재가 발생한 지점을 살펴보면 임의로 설치한 부분에서 더 많은 화재가 발생한다. 이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간과해서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당사자는 “내가 얼마나 견고하게 전선을 연결했는데 그럴 리 없다”고 항변한다. 전기와 같은 재화는 순간의 실수로 재난을 불러온다. “그동안 아무 이상 없이 잘 사용했는데 무슨 소리야!”, “잘못이 있다면 벌써 이상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어야지” 하는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 [사진 1] 현장 사진

 

소방대 현장 도착 시 이미 비닐하우스는 연소 확대되고 있었다. 대로변에 있었으나 비닐하우스 연소 특성상 급격하게 주변으로 확대하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비닐하우스 화재가 발생하면 급격하게 연소하고 풍하(風下)에 따라 연소 확대가 이뤄져 발화지점을 찾는 게 녹록지 않다. 

 

이런 경우 주변을 탐문하고 신고자 심문을 통해 화재를 바라본 위치와 시간 등을 종합하면 발화지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신고자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화재를 바라본 위치와 화염의 크기에 대해 최소 3명 이상의 답을 들어봐야 한다. 이 화재로 비닐하우스 4동이 전소했다.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라!

최초 신고자 안 씨는 아래 사진 ④번 비닐하우스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옆 비닐하우스에서 펑 소리가 난 후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에 신고했다고 했다.

 

두 번째 신고자는 ②번 비닐하우스 점유자 오 씨로 ①번 비닐하우스 점유자 김 씨와 ②번 비닐하우스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③번 비닐하우스 뒤에서 화염이 커졌다고 진술했다. 

 

신고자 모두 ③번 비닐하우스 뒤쪽에서 불꽃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③번 비닐하우스 뒤쪽을 확인하니 임시 주거용 방처럼 구획된 생활 공간이 있었고 세탁기와 가스레인지, 시즈 히터(Sheath heater) 등 가전제품이 탄화된 채로 잔류했다.

 

▲ [사진 2] 비닐하우스 배치

 

신고자들은 ③번 비닐하우스에서 불꽃을 처음 봤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어찌 ①, ②번 비닐하우스 방향으로만 불이 번지고 ④번 비닐하우스는 일부만 연소했을까? 

 

[사진 1]을 보면 북서풍이 불고 있는 형태가 관찰된다. 그렇다면 ③, ④번도 연소해야 한다. 소훼 상태가 적은 건 다른 지점이 발화지점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 풍하를 자세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진 1]에서 북서풍이 불고 있는 듯하나 자세히 보면 북풍에 가깝다. ③번 비닐하우스 뒤편에서 발화됐다면 ③, ②, ①번 방향으로 연소 확대됐어야 한다. 따라서 ④번 비닐하우스에는 상대적으로 연소 확대가 작았을 거로 판단했다. 직접 화염이 전파되기보다는 복사열에 의해 일부만 연소한 형태였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라!

화재 당시 ③번 비닐하우스 점유자는 모두 외출해 내부에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①번 점유자가 있는 곳에서는 발화지점이 보이지 않고 ②번 비닐하우스 관계자는 ③번 비닐하우스 뒤편에서 불꽃을 봤다고 했다.

 

④번 비닐하우스 관계자도 ③번 비닐하우스에서 불꽃을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발화지점은 ③번 비닐하우스로 축소할 수 있다. 

 

▲ [사진 3] ①번 비닐하우스 서쪽


①번 비닐하우스는 전체적으로 소실되고 철골과 연기만 가득했다.

 

▲ [사진 4] 비닐하우스 뒤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③번과 ②번 비닐하우스 뒤쪽이다. 철 파이프의 만곡 형태가 심하게 잔류했고 일부 철재와 빗물받이에 변색 형태가 관찰됐다. 오히려 ③번 비닐하우스 뒤쪽에는 비닐이 일부 남아 있었다. 진정 ③번 비닐하우스가 발화지점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 [사진 5] ①번 비닐하우스 뒤

 

①번 비닐하우스 뒤편에는 생활 공간으로 보이는 샌드위치 패널 구조물이 있었다. 일부는 붕괴하고 일부는 원형으로 잔류해 있었다. 연소 확대인지, 발화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비닐하우스 특성상 연소하면 잔류하는 형태로의 연소 방향성 식별이 힘들다. 붕괴 방향성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비닐하우스 내 축조한 샌드위치 패널의 붕괴 방향은 연소 방향에 따라 나타나지 않고 불규칙적이다. 무너진 방향 역시 수열 방향이나 변색 형태로 연소 방향성을 논하기 어렵다.

 

▲ [사진 6] ②번 비닐하우스


②번 비닐하우스 내부도 전소돼 연소 특성이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 [사진 7] ③번 비닐하우스 정면

 

③번 비닐하우스 정면은 소훼 상태가 약하게 식별됐다. 전면 베니어합판은 원형으로 화염에 노출되지 않은 미연소 상태였다. 출입구 상단 비닐도 연소하지 않고 그대로 잔류했다. 

 

‘발화지점의 비닐하우스가 연소하지 않았다?’ 

 

풍하가 북풍이었고 ①번과 ②번 비닐하우스가 전소했는데도 발화지점인 ③번 정면과 뒤쪽이 연소하지 않은 미연소 상태로 남을 수 있을까? 연소의 연속성을 논하기 어려웠다. 가연물이 있는데도 연소하지 않은 채로 잔류한 건 풍하 작용이 컸다.

 

▲ [사진 8] ③번 비닐하우스 내부


[사진 8]의 정면이 신고자가 본 발화지점이다. 오른쪽은 ④번 비닐하우스로 반 정도 소실된 상태였다. 정면을 보면 철재 만곡이 심했다. 공교롭게도 ②번과 ③번 비닐하우스가 맞닿은 부분의 붕괴 형태가 비슷했다.

 

▲ [사진 9] 연소 형태 비교

 

②번과 ③번을 비교했을 때 ②번 비닐하우스보다 ③번 비닐하우스 부분이 더 많이 소훼됐다. 철재 만곡도 ③번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철재의 만곡은 가연물에 따라 다르기에 방향성 판단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원인을 발굴하라!

발화지점이 정해지면 발화 원인을 발굴해야 한다. 먼저 전기 시설을 확인해 차단기를 발굴하고 상태를 살폈다.

 

▲ [사진 10] ③번 비닐하우스 차단기


[사진 10]은 ③번 비닐하우스 메인 차단기로 판단됐다. 레버 상태는 트립 위치에 있다. 차단기가 트립됐다는 건 전기는 통전됐다는 증거다.

 

▲ [사진 11] 세탁기 주변


세탁기에는 수열 방향성이 잔류해 있었다. 측면에는 난로가 있었다. 난로의 위치는 변동이 있었고 세탁기 위치는 변동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전자레인지는 소훼 상태가 심해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가스레인지도 소훼 상태나 용융 응착물이 많아 작동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 [사진 12] 연소 방향성

 

③번 비닐하우스 중간 칸막이로 보이는 베니어합판의 연소 형태에서 방향성을 확인했다. 위 사진에서 보듯 난로와 세탁기가 있던 방향에서 수열을 받은 형태로 판단했다.

▲ [사진 13] 발굴


세탁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발굴하니 탄화한 흔적이 깊게 식별되고 전선과 목재가 탄화한 형태가 나타났다. 발굴할수록 탄화 형태가 심해 장시간 탄화한 형태로 판단했다. 탄화 잔류물을 하나하나 걷어내자 하단에서 시즈 히터가 발굴됐다.

 

▲ [사진 14] 시즈 히터


바닥까지 발굴하니 시즈 히터가 나왔고 발열부에 적 산화 현상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발열하고 있을 때 수분이나 물의 접촉으로 산화가 급격하게 발생할 때 나타난다.

 

▲ [사진 15] 전기적 특이점

 

시즈 히터와 연결된 전선에서 용융점이 식별됐다. 일정하게 용융돼 있었고 전선의 경화 흔적이 짧은 형태여서 단락 흔적으로 판단했다. 전선에 잔류한 변색 흔적이 짧을수록 단락에 가깝고 전선의 경화 형태가 짧을수록 단락으로 판단한다. 

 

순간 전기적 아크에 의해 전선이 용융되고 냉각돼 경화된 형태가 짧을수록 단락에 가깝다. 아크에 의한 변색흔이 짧아야 단락으로 판단할 수 있다. 길면 수열에 의한 용융이다.

 

▲ [사진 16] 시즈 히터 전원선과 콘센트

 

시즈 히터 전원선에 단락과 변색 흔적을 확인하니 적색 화살표 부분이 원색으로 잔류하고 경화 형태가 짧게 잔류했다. 콘센트의 파워 소켓(power socket) 부분이 한쪽은 확장돼 있고 한쪽은 용융된 형태로 발굴됐다. 

 

히터가 꽂혀 있던 부분이자 발열 과정에서 용융된 형태로 판단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파워 소켓 부분 비철금속은 용융점이 450℃로 전기적 원인이 아니더라도 용융된다는 사실이다. 파워 소켓 부분이 화재 현장에서 다수 발굴되고 용융 형태를 두고 단락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워 소켓 부분을 아직도 ‘칼받이’로 표현하곤 한다. 우리나라가 110V를 쓸 때 커버 나이프 스위치(Cover knife switch)를 사용했다.

 

110V 플러그가 칼처럼 보이고 플러그를 꽂는 콘센트 부분이 칼이 꽂히는 부분처럼 생겼다고 해 ‘칼받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110V 형태의 플러그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칼받이를 파워 소켓 또는 플러그 받이로 바꾸는 게 옳다고 본다. 

 

연소 경로를 확인하라!

목격자들은 ③번 비닐하우스 뒤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③번 비닐하우스 출입구에 설치됐던 메인 차단기는 트립된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발화부로 추정되는 부분은 세면장이고 세탁기 수열 흔적이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수열 방향의 중심부에 시즈 히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즈 히터는 온도 조절용 스위치가 부착돼 있었다. 

 

발열 부분은 적 산화 현상이 일부 진행된 형태고 아크 맵핑(Arc Mapping)의 끝단 온도 조절기 부분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됐다. 전기 부하 측에서 단락이 발굴됐다는 건 통전을 의미한다.

 

시즈 히터 발열부의 적 산화 현상을 통해 시즈 히터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③번 비닐하우스 뒤편에서 발화되고 풍하에 의해 ②, ① 방향으로 급격하게 연소 확대된 화재로 추정했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화재는 오후 2시께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했다. 비닐의 돋보기 효과와 같은 수렴 화재 개연성은 있었다. 하지만 내부 단열을 위해 부직포를 설치했기에 태양광 투과에 의한 수렴 화재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판단했다.

 

내부에 점유자가 없었고 비닐하우스 특성상 쉽게 출입문이 닫히는 구조지만 출입은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발화지점으로 특정되는 부분에서 방화 연관성 요인이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시즈 히터가 발열했던 형태로 식별되고 전원선에서 단락 흔적이 발견됐다. 이런 부분은 지연 착화를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으나 화재로 인해 실익이 전혀 없고 손해만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 점유자들에게 탐문한 결과 원한을 살 만한 이유도 없어 인위적인 착화 부분은 배제했다.

 

또 현장에서 가스레인지가 발굴됐으나 소훼 상태가 심하고 일부 소실돼 가스레인지 발열이나 가스누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전기적 요인은 차단기가 트립돼 잔류했고 전기 말단 부하 지점인 시즈 히터 전원선과 온도 조절기 부분에서 단락으로 식별되는 용융 흔적이 발굴된 점으로 볼 때 전기적 요인에 의한 가능성이 있다. 시즈 히터가 발열하고 전원선에서 단락이 발견된 건 안전 불감증에 의한 화재나 아차 하는 부주의 가능성도 있다.

 

결론

목격자들의 진술과 세탁기에 잔류된 수열 변색 흔적 집중 탄화 부분에서 시즈 히터가 발굴됐다. 발열체 부분에 적 산화 현상이 식별되는 건 발열 당시 수분이 닿아 증발하며 산화 현상을 촉진해 나타난 것으로 판단했다. ③번 비닐하우스에 메인 차단기가 트립된 상태로 관찰됐다. 

 

시즈 히터 온도 조절기 부분에서는 단락으로 보이는 용융 흔적이 식별됐다. 전원선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도 단락으로 보이는 용융 흔적이 식별되는 점으로 보아 시즈 히터가 과열되며 주변 가연물에 착ㆍ발화한 화재로 판단했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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