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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쏘임 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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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소방서 박윤택 | 기사입력 2025/10/02 [10:00]

벌 쏘임 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경북 경주소방서 박윤택 | 입력 : 2025/10/02 [10:00]

지난여름 50대 남성이 저녁 무렵 집 마당에서 작업하던 중 말벌에 쏘였다. 처음엔 단순하게 통증만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대변이 마려운 듯한 느낌이 동반됐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그는 동생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중 점점 의식이 흐려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동생은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저혈압(70/40㎜Hg)과 호흡곤란을 보였다. 신고 내용과 환자의 상태를 종합해 아나필락시스로 판단했고 즉시 의료지도를 요청했다. 현장에 대기 중이던 후착대와 함께 에피네프린 투여, 산소 공급, 수액 치료를 신속히 시행했다. 

 

처치 후 환자는 빠르게 호전됐고 이송 중에도 활력 징후를 지속해서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110/60㎜Hg까지 회복됐고 맥박과 의식도 안정됐다. 결국 환자는 응급실에 무사히 인계될 수 있었다.

 

말벌에 단 한 번 쏘인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에피네프린과 신속한 응급처치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현재 필자는 지역대에서 근무 중이다. 지역대는 근무 특성상 화재진압, 생활안전 구조, 구급을 모두 수행하는 다기능 근무형태다. 여름철 무더위가 시작될 때부터 가을이 끝날 때까지 벌집 제거 요청이 급증한다. 특히 추석 전후로 벌 쏘임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급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환자분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실제로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2021~2023년) 동안 벌 쏘임으로 인한 신고는 각각 4872, 6953, 6213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벌 쏘임 환자는 8월과 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이번 글은 벌 쏘임 사고에 대한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준비했다.

 

▲ 최근 3년간 벌 쏘임 사고 발생 현황 출처 소방청

 

벌 쏘임과 아나필락시스

벌에 쏘이는 사고는 단순한 통증이나 상처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의 쏘임으로도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말벌에 쏘였을 땐 독성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면역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로 진행될 수 있어 긴급한 현장 조치가 필요하다. 

 

아나필락시스는 수 분에서 수십 분 내에 심정지까지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전신 반응으로 벌독이 혈류를 통해 퍼지면서 기도 부종과 순환 부전, 저혈압 쇼크를 유발한다.

 

위험 인지와 초기 대응

아나필락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발생 시점과 강도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과거 벌에 쏘인 경험이나 알레르기 병력이 없어도 누구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나 천식ㆍ심혈관 질환이 있는 환자는 더욱 위험하다.

 

따라서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환자의 전신 상태를 빠르게 평가해야 한다. 구조 요청 시에는 반드시 신고자에게 쏘인 시각과 벌의 종류, 현재 증상, 과거 병력 등을 확인하고 환자가 겉보기에 안정적이더라도 혈압ㆍ호흡ㆍ의식 등 생리적 지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아나필락시스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벌에 쏘인 환자의 초기 증상은 발적이나 통증, 국소 부종 등 비교적 가벼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환자에게 발생하는 아나필락시스 반응이다. 구급대원이 판단해야 할 중증 아나필락시스의 대표적인 징후는 다음과 같다.

  • 입술, 혀, 눈 주위의 부종
  • 그르렁거리는 호흡음(천명), 호흡곤란
  • 피부가 식고 축축해지는 증상(냉한 피부)
  • SBP 90㎜Hg 이하의 저혈압
  • 의식 저하 또는 혼미

이러한 증상 중 하나라도 나타나면 단순 벌 쏘임이 아닌 전신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판단하고 즉시 고위험 대응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이전에 알레르기 병력이 없더라도 벌독 자체에 의해 초발성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별구급대 지침에 따른 약물 투여 기준

소방청은 2019년부터 ‘특별구급대 운영 지침’에 따라 벌 쏘임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있는 경우 특별구급대는 에피네프린 자동주사기를 이용한 조기 약물 투여를 수행하고 있다.

 

단 아나필락시스의 진단 기준 중 아래 표에 따른 두 곳 이상의 장기 증상이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

 

▲ 아나필락시스의 진단 기준

 

일단 아나필락시스로 확인되면 의료지도를 통해 성인의 경우 에피네프린 자동주사기(Jext) 0.3㎎, 소아의 경우 0.15㎎의 용량을 대퇴부 외측 근육에 90˚ 각도로 투여한다. 자동주사기 사용 시에는 ‘딸깍’ 소리가 나도록 끝까지 눌러 10초간 고정한다. 이후 약물 확산을 돕기 위해 주사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특별구급대는 에피네프린 투여 이후에도 환자의 활력 징후를 5분 간격으로 지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면 의료지도하에 5~15분 간격으로 반복 투여가 가능하다. 이 경우 3회까지 반복할 수 있으며 효과가 미흡하거나 악화 징후가 보이면 즉시 재평가 후 조치해야 한다. 

 

또 기도폐쇄가 우려되면 산소 공급과 함께 기도유지기 삽입, 흡인 준비, 필요시 전문기도 확보까지 고려한다.

 

특별구급대는 이러한 약물ㆍ기도관리 능력 외에도 이송 중 의료지도 통신 유지, 환자 상태변화 보고, 병원 인계 시 투여 약물ㆍ반응 요약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 병원 전 단계에서 중요한 생명 유지 사슬을 형성한다.

 

만약 당신이 아나필락시스의 증상과 치료를 중증도화해 학습하고 싶다면 다음의 표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 벌 쏘임 이후에 나타나는 아나필락틱 반응에 따른 중증도 등급

 

현장에서의 골든타임은 약물 처치로부터 시작된다

아나필락시스는 병원에 도착해서 조치하는 질환이 아니다. 발병 수 분 이내에 심정지에 이를 수 있으므로 구급 현장에서 바로 약물과 처치를 시행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투여 이후 5~15분 내 호전이 없으면 의료지도하에 최대 3회까지 반복 투여할 수 있다. 절대 반복 투여를 미룰 이유가 없다. 단 몇 분의 지체로 생명이 꺼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에피네프린 투여와 동시에 산소 공급은 필수다. 고농도 산소(10ℓ/min 이상)를 NRB 마스크를 통해 공급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기도유지기나 흡인 준비를 병행한다. 호흡 부전이 동반될 경우 기도 확보가 생명 연장의 열쇠가 된다.

 

또 저혈압이 발생한 경우 수액 치료가 필요하다. 생리식염수 또는 락테이트 링거액을 300~500㎖(소아는 510㎖/㎏) 정주하고 쇼크가 지속되면 1ℓ까지 증량한다. 가능한 이른 시간 내 정맥로를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이송 중에는 반복적인 활력 징후 측정과 필요시 추가 약물 처치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 이송이 아닌 ‘이송 중 치료’가 핵심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병원 선택과 사후 관리까지

고려해야

벌 쏘임 사고는 환자 상태가 회복되더라도 반드시 병원에서 일정 시간 관찰이 필요하다. 아나필락시스는 한 차례 호전된 뒤 수 시간 내에 다시 악화되는 ‘지연성 반응’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투여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좋다. 환자의 병력이나 약물 사용 기록, 반응 소요 시간 등을 병원에 정확히 인계해야 한다.

 

특히 고령자나 기저 질환자, 아동의 경우 더 빠르게 상태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세심한 평가가 필요하다. 구급대원은 환자의 보호자나 동행자에게 벌독 알레르기에 대한 교육과 향후 유사상황 발생 시 대처 요령도 함께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재노출 위험이 있는 생활환경에 대한 상담과 에피네프린 자가주사기 처방 유도 등 장기적인 안전망 구축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들

벌 쏘임 사고에 있어 자주 잘못된 응급처치들이 시행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침을 빼낸다고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거나 칼로 절개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독을 더 깊이 퍼지게 하며 감염 위험도 크다. 

 

얼음찜질이나 뜨거운 찜질 등도 조직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벌에 쏘인 환자를 걷게 하거나 뛰게 하는 건 독의 확산을 촉진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이러한 오처치는 지역 주민이나 주변 목격자가 종종 시도하려 하기에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반드시 중단시킨 후 올바른 처치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요법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없도록 구조자에 대한 설명과 설득도 중요하다.

 

생명을 살리는 판단,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린 종종 벌에 쏘였다는 신고를 단순 민원처럼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벌 쏘임 한 건이 곧 아나필락시스로 이어지고 수 분 내에 심정지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병원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초동 판단과 처치가 생사를 결정짓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산길이나 벌초 작업 중 벌에 쏘이고 있을 수 있다. 환자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숨이 가빠지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순간, 구급대원의 정확한 판단과 손에 들린 에피네프린 주사기가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벌 쏘임 사고는 예방도 중요하지만 사고 발생 시 즉각적인 대처가 더욱 중요하다. 각 구급대는 에피네프린 자동주사기와 관련 장비의 작동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고 반복적인 시뮬레이션과 교육을 통해 실전 대응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야 한다. 현장에서 쌓은 1분, 1초가 환자 생존율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벌 쏘임은 결코 가벼운 사고가 아니다. 작은 벌 한 마리가 환자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린 그 사소함 속에 숨어 있는 위기와 마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결국 생명을 구하는 열쇠는 현장 최전선에 있는 우리 구급대원의 손에 달려 있다.

 


Reference

1. Bernhard Przybilla, and Franziska Ruëff. Insect Stings, Clinical Features and Management. Dtsch Arztebl Int. 2012 Mar; 109(13): 238–248.Published online 2012 Mar 30. doi:  10.3238/arztebl.2012.0238 PMCID: PMC3334720 PMID: 22532821  

2. 특별구급대 표준지침(소방청 2019)

 

경북 경주소방서_ 박윤택 : fatimaemt@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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