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는 그의 책 ‘두 도시 이야기’ 당시 18세기 유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작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디킨스의 이 간결한 문장은 단순히 그 시대에 대한 묘사를 넘어 기술 문명이 인간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영국은 번영과 파국, 이상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혼돈의 구조가 AI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점이다.
18세기의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면 21세기의 AI는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의 기술 문명은 18세기와 유사하게 다시 한번 우리 사회, 정치, 경제를 흔들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토대로 한 과학기술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일으켰듯이 21세기 AI 혁명의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결국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현재, 우리는 과거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일들을 목도하고 있다. AI가 친구를 대신하고 연인을 대신하고 있으며 운전사 없는 버스와 택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경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산업혁명은 유럽의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최고의 시절을 마련했지만 동시에 사회 양극화를 촉발시켰듯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첨단 테크기업이 부와 권력을 빠르게 독점하고 있으며 발빠르게 DX, AX 성공한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또 AI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도 매우 급진적이다. 아마존은 총 160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2025년에만 1만4천 명을 구조조정 중이며 2033년까지 60만 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이는 앞으로 AI가 가져올 미래사회 구조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 성공으로 인류의 사회적 위험이 더욱 증가했듯 AI 기술의 진보가 인간에게 더 큰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AI 등장 이후 피싱 공격은 약 4천% 증가했으며 2023년 홍콩에서는 한 금융회사가 ‘딥페이크 화상회의’에 속아 340억원을 송금하는 초유의 사건도 벌어졌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라는 디킨스의 말이 다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10년째 추락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0월 현재 국가 차원의 AI 활용률은 대기업 10%, 중소기업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998년 IMF 위기 당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IT 에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ㆍ모바일 인프라를 구축했던 것과 대비되게 AI인프라 구축은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AI 도입에 뒤쳐지는 이유는 AI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AI기술 도입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조직문화, 단기성과 중심의 기술정책, 정부 부처 간 데이터 공유에 대한 폐쇄성, 사회적 신뢰 부족과 책임 회피 구조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노동 유연성 문제로 노사갈등이 심한 한국 사회는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대전환기에 있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2025년 1월 다보스 포럼의 핵심 의제는 ‘지능형 시대를 위한 협력’이었는데 다보스 포럼에서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아곱 가지 역량(AIㆍ빅데이터 이해력, 기술 문해력, 창의적 사고, 분석적 사고, 회복탄력성과 민첩성,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자기인식 능력, 공감과 경청 능력, 지속적 학습 능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역량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역량은 바로 연결 능력이다. 연결능력은 서로 다른 각각의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다. 이러한 연결능력은 그 어느 능력보다 큰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조직은 명령형 구조, 팀 구조, 네트워크 구조 순으로 진화한다. 네트워크 시대의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편적 전문성이 아니라 맥락을 읽고 구조를 해석하는 능력, 분야와 분야를 연결하는 통합능력, 점과 점을 연결해 관계성을 찾을 수 있는 통찰력이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는 연결하는 능력에 있어 온톨로지(ontology)라고 하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팔란티어는 온톨로지를 이용해 비정형 데이터의 점과 점을 연결했고 온톨로지를 이용해 수년간의 추적 끝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건 각각의 데이터 조각들을 ‘하나의 의미’로 연결해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독일에서 마틴 하이데거의 ‘존재론(ontology)’을 공부한 철학자였다. 현대와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연결능력만 있으면 사물의 본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의류브랜드 자라(ZARA)의 CEO 오르테가는 옷을 생선과 연결시켰다. 옷은 생선과 같아서 며칠만 지나면 부폐해 썩은 내를 풍긴다. 그래서 자라 매장은 일주일 단위로 디스플레이를 바꾼다.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능력과 더불어 또 중요한 것이 자기인지능력 즉 메타인지다. 연결능력과 메타인지는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지금 한국 대학들은 철학, 심리학, 고전학 등 인문학 관련 학과들을 잇따라 축소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사고를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인간의 사고에 더 깊이 투자해야 하는데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줄 아는가’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요즘과 같은 대전환기에 필요한 능력은 답을 찾는 능력보다 질문하는 능력이다. 대전환기에 한 시대를 바꾼 사람은 항상 질문을 바꾼 사람들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기술이 아닌 사유(思惟)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요한 것은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이 아니라 본질을 묻고 맥락을 읽고 의미를 연결하는 능력이다.
현재 우리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넘어가야 하는 문턱에 서 있다. 속도를 따라가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 문명은 지금 인간에게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국가만이 ‘최악의 시절’이 아니라 ‘최고의 시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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