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팩트체크] “방화복이 불에 녹아 내렸다” 논란 속 진실

성능 부실로 화재에 녹아내린 방화복ㆍ헬멧?
‘수박 겉핥기식’ 언론 보도에 황당한 ‘소방청’
소방청 “노후율 0%, 보유 수량도 충분하다”

신희섭 기자 | 입력 : 2018/02/09 [11:30]

▲ 대구 숙박업소 화재현장에 소방공무원이 착용하고 들어갔던 특수방화복. 화염에 녹아 내렸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FPN 신희섭 기자] = 화재 현장에서 소방공무원의 몸을 보호하는 개인보호장비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은 최근 화재진압에 나섰던 대구지역 한 소방공무원의 방화복과 헬멧이 화염에 녹아내렸다는 보도가 이어진 게 발단이 됐다.

 

지난 3일 오후 8시 40분경 대구 남구 대명동에 소재한 한 숙박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객실 2곳을 태운 이 화재로 투숙객 17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화재 진압에 나섰던 한 소방공무원은 방화복과 헬멧 일부가 탄화되면서 2도 가량의 화상을 입었다.


이 같은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5일 소방청과 해당 대구소방본부는 보도 내용들이 오해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대원이 부상을 입었지만 방화복과 헬멧, 두건 등 개인보호장비를 규정대로 잘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를 최소할 수 있었고 장비 모두 규격 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구본부 등에 따르면 화상을 입고 치료중인 소방공무원은 사고 당시 협소한 공간 내부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중 갑작스럽게 큰 화염을 마주했다. 이 화염을 등지고 10여초 간 피해내는 과정에서 헬멧과 방화복에 손상이 생겼다.

 

▲ 화재진압에 나섰다 방화복 등이 탄화되면서 2도 가량의 화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 대구소방안전본부

 

대구소방 조사 내용과 당시 현장에 있던 소방공무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화재진압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플래쉬오버 또는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플래쉬오버는 화재로 인해 실내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화재가 순간적으로 실내 전체에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백드래프트는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 훈소 상태에 있는 실내에 산소가 갑자기 다량으로 공급되면서 연소가스가 순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이다.


이 같은 플래쉬오버는 화재 성장기에서 최성기로 넘어가는 분기점에서 발생되며 백드래프트는 화재가 최성기 시점에서 발생된다. 화재 현장에서 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면 화염의 온도는 순식간에 1,000℃ 이상 올라가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소방공무원조차 플래시오버나 백드래프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결과를 두고 언론들은 마치 부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이 착용한 개인보호장비가 안전성이 미흡하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소방공무원이 부실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조명되면서 국민의 여론도 좋지 않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사고로 제기되는 문제점의 팩트를 체크했다.


방화복ㆍ헬멧 성능, 정말 부실했나

 

 

▲ 화상을 입은 소방공무원이 대구 숙박업소 화재 당시 실제 착용하고 있었던 개인보호장비(사진 왼쪽부터 소방헬멧, 소방장갑, 방화두건)   

 

사고 직후 언론에서는 마치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방화복과 헬멧이 불에 녹아내리는 제품인 냥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장비 때문에 소방공무원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소방공무원이 착용하는 방화복에는 아라미드계 섬유가 사용된다. 아라미드계 섬유는 500℃ 정도의 내열성을 갖는다. 섬유가 지닌 성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열의 화염에선 탄화가 진행되지만 500℃ 이하의 열에는 탄화 없이 견뎌낸다. 일단 방화복은 탄화가 진행되는 것이지 언론보도처럼 녹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방화복의 성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언론보도 역시 소방행정을 모르는 ‘수박 겉핥기식’ 보도들이다. 소방청(당시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은 지난 2015년 말 소방공무원이 화재 등 재난현장에서 착용하는 특수방화복의 표준규격을 전면 개정했다.


방화복 성능시험 항목 중 불꽃열방호성능시험과 복사열방호성능시험, 내열시험, 열저항성 시험 등의 기준을 높여 안전성을 강화했다. 또 활동성을 높여 달라는 일선 소방공무원의 의견을 반영해 구조적인 부분도 상당 부분 개선했다.


이렇게 상향된 기준은 선진 외국의 방화복 기준과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는 게 소방청의 입장이다. 당시 제조사들은 새로운 강화 규격의 방화복 제작을 두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소방용 특수방화복의 KFI 인정기준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도 성능 면에서 선진국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편 이번 사고에서는 부상 소방관이 착용한 헬멧도 논란이 됐다. 당시 부상 소방관이 착용했던 헬멧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멧의 제품 기준과 검사를 맡고 있는 기술원은 헬멧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헬멧 또한 선진 외국 제품과 비교해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KFI 인정기준에 맞추려면 높은 성능의 내열수지를 헬멧의 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보급되는 제품의 경우에도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소방용 헬멧에 적용하는 내열수지와 동등한 재료를 헬멧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깜짝 등장한 노후 방화복? ‘노후율 0%’인데…


방화복 등 소방장비의 노후 문제도 이번 사고를 통해 불거지고 있다. 소방용 특수방화복의 내용연수는 3년인데 이 기간을 넘긴 방화복이 아직도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모 종편방송에선 “방화복 폐기는 제조일로부터 3년인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일선소방관서 관계자가 소방공무원 1인당 방화복은 2벌씩 있어야 하지만 일부 소방관서는 방화복이 부족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소방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방화복의 노후율은 0%다. 방화복의 보유기준은 65,702벌인데 이보다 많은 75,858벌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노후된 소방방화복은 일선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다. 종편방송이 보도한 내용과는 대치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소방청 관계자는 “2015년부터 소방안전교부세 중 상당 부분을 방화복을 비롯한 개인보호장비 보강에 투입했다”며 “의용소방대까지 방화복을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화재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공무원에게 방화복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소방안전교부세가 지급되기 이전 해마다 소방조직은 소방장비 노후율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하지만 소방안전교부세가 투입되면서부터 소방장비 개선 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인보호장비와 주력장비 교체를 중심으로 장비 보강은 이뤄졌다.


실제 소방안전교부세가 집중적으로 투입된 지난 3년간 대부분의 시ㆍ도에서 사용되고 있던 낡고 부족한 주력 소방장비의 노후 문제는 어느정도 해소된 상태다.


지난해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방안전교부세의 75% 이상을 오는 2020년까지 소방 분야 지속 투입하기로 하면서 꾸준한 장비보강도 가능할 전망이다.


조기 교체 방안 이미 있는데… 뒷북친 전문가


방화복 성능 유무와 관계없이 내용연수에 도래해야만 방화복을 교체한다는 언론 보도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는 다른 얘기다.


모 종편 방송은 4일 방화복 착용 부상 소방관을 다룬 보도에서 소방관련학과 모 교수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 보도에서 해당 교수는 “방화복에 문제가 생길 경우 내구연한이 지나지 않더라도 교체해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나지 않은 방화복에 성능 이상이 있어도 교체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발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소방청은 지난 2015년 특수방화복 규격을 개선하면서 방화복의 안전관리 메뉴얼을 시ㆍ도 소방본부에 배포했었다. 이 매뉴얼에는 방화복 불용 처분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소방관서별로 특수방화복 불용결정 위원회를 구성ㆍ운용토록 하고 소방공무원으로 하여금 방화복 성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점검을 의뢰한 뒤 이상이 있을 경우 불용 또는 지속 사용 여부를 판단토록 규정하고 있다.


방화복이 찢어진 경우나 열기ㆍ화학물질 등에 의해 탄화된 경우, 닳아 헤진 경우, 봉제부분이 뜯어진 경우, 기타 훼손되거나 마모돼 수리해도 본래의 목적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점검을 의뢰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된다.


또 메뉴얼에는 방화복 세탁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아라미드계 섬유는 세탁을 해도 내열성능에는 큰 무리는 없지만 잦은 세탁이 이어질 경우 발수도 저하로 방화복 내부로 물이 스며들거나 외부 오염원에 쉽게 오염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의 부상 소식으로 인해 일선의 불안감이 생기고 있지만 장비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무엇보다 개인보호장비의 올바른 착용과 관리를 통해 각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더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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