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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방 일과표 논란과 선택 기로에 선 소방청

(전)소방발전협의회장 소방위 고진영 | 입력 : 2018/04/12 [12:58]

▲ (전)소방발전협의회장 소방위 고진영   

최근 소방청에서 발표한 소방공무원 근무 일과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불만을 토로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진행 중이다.

 

소방현장대원들의 주요 불만은 이렇다. 소방공무원의 일과표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생 방학숙제와 같은 발상이라고 평까지 내놓고 있다.


언 듯 현장소방공무원의 불만을 듣다 보면 소방공무원의 일과표가 기존에는 없었다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나타난 반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소방청의 일과표 발표는 기존의 일과표를 개정한 것이다. 즉 기존에도 소방공무원들에게는 일과표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개정된 일과표에 왜 소방공무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일까. 개정 내용이 기존 일과표에 비해 불합리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 오히려 개정 내용의 일과표는 기존 보다 포괄적으로 현실을 담아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공무원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큰 틀에서 보자면 공무원 직종 중 일과표를 두고 일과표대로 일을 하는 조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가 틀에 맞게 계획처럼 돌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과표는 업무의 다양성, 효율성, 창의성, 그리고 개개인의 업무스타일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족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소방은 시시각각으로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을 출동하는 예측하기 힘든 업무이기 때문에 일과 계획 자체가 더 어렵다는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타 직종에 비해 일과표가 더 지켜지기 어려운 소방에선 왜 일과표를 도입하게 되었을까. 관리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는 측면만 보면 계획적 일과표는 관리자들을 유혹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첫 단추가 잘 못 채워져서 생긴 일이라면 얼마든지 폐지나 개선의 수순을 밟았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방청은 또 일과표를 들고 나왔다. 왜 일까.


소방업무의 큰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장대응 업무이고 나머지 하나는 현장 지원, 조직관리와 재난예방을 위한 행정업무다. 즉 ‘현장’과 ‘행정’ 등 두 업무가 존재한다. 일과표를 보자면 소방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우리의 상식대로 일과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과표는 외근 현장근무대원에게만 적용된다. 그럼 왜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현장업무에만 일과표가 존재할까. 그건 소방청이 이번에 일과표를 개정해 발표한 내용에 답이 있다.


소방청은 최근 재천화재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대형화재가 발생하자 현장대원들의 현장대응 능력을 강화한다는 이유를 일과표를 개정해 발표했다. 즉 계획적으로 훈련프로그램을 일과표라는 형식으로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단지 이유만을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훈련은 교육이고 교육을 무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장대원들이 현장업무만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현장대원들은 현장업무는 물론 행정업무도 담당해야 한다. 현장출동에 남는 시간은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그 행정업무를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현장보다는 행정업무가 더욱 가중되고 중요시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할지라도 훈련을 강화하기 위해 일과표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때문에 과거 일과표가 존재하고 그 일과표에도 훈련 시간이 계획돼 있었지만 현실과 맞지 않아 사문화된 일과표에 불과했다. 과거 일과표에는 불만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 이번 소방청의 조치는 그 사문화됐던 일과표를 살려낸 셈이다.


다시 부활시킨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소방청이 비난 받는 이유는 일과표를 바꿨을 뿐 과거 일과표가 사문화될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은 바로 현장대원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있다. 또한 그 방법은 현장대원의 행정업무를 대폭 축소하고 훈련시간을 확보하는 조치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어디에도 없다. ctrl+v, 탁상행정의 전형이라 비난을 받아도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다.


그럼 일과표는 폐지하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고 폐지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행정업무를 축소해 현장대원이 현장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방청이 조치하면 된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한 부분은 예산이 수반되고 행정업무와 현장업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소방조직 문화를 바닥부터 들어내 혁신해야 하는 일이 수반돼야 할 수준이다.


그 과정에서는 행정업무와 현장업무의 반목과 무게중심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지휘부는 자신들의 권한을 내려놔야 하는 문제까지 고민해야 한다. 행정 분야와 현장 분야의 틀을 애초 다르게 가져가야 하는 것까지 검토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이젠 지휘부의 의지가 문제다. 이는 지휘부 능력의 문제기도 하며 조직관리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렵다고 문제해결을 피하는 것이 답이 될 순 없다.


소방 지휘부에 아쉬운 것이 있다. 언제까지 여건을 생각하고 조직의 한계를 스스로 재단하며 틀에 갇혀 있을 것인가. 이젠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진정으로 소방의 사명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으뜸이라고 생각한다면 누더기 이유들은 벗어 던지고 자신의 살을 벗겨내는 혁신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아직까지 누구도 하지 않고 있다. 진실로 희망한다. 소방 지휘부는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고통이라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방이 그 역할을 성실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국민의 불행이기도 하다.

 

(전)소방발전협의회장 소방위 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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