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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승↑ 차량 소화기 설치 의무 두겠다’…소방청 입장 선회

소방청 “차량 분야 전문가들 안전 우려로 기존 규정 유지키로”

최누리 기자 | 입력 : 2018/06/25 [12:46]

 

[FPN 최누리 기자] = 2년 전 차량 탑승 인원과 관계없이 5인승 이상 차량 내 소화기를 설치하도록 관련법을 강화하겠다던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로써 국토교통부가 관장하던 자동차 소화기 설치 관련 규정 개선 계획은 소방관련법으로 이관되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소방청 전신인 국민안전처는 지난 2016년 현행 7인승 이상에 차량용 소화기를 설치토록 한 규정을 5인승 이상일 경우에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의 '화재안전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이관하면서 관련 규정을 개선하겠다는 게 당시 방침이었다.

 

국민안전처는 자동차 등록 대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2020년에는 2500만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지속해서 발생하는 차량화재의 예방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토부와 업무 협업을 통해 5인승 이상 차량에 소화기 비치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현행법상 7인승 이상 승용차와 승합차, 화물차, 특수차에 차량용 소화기를 설치토록 한 규정을 소방법으로 이관하면서 5인승 이상 차량으로까지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차량 화재는 지난 2013년 5250건, 2014년 4827건, 2015년 5031건, 2016년 5009건, 2017년 4971건이 발생했다. 연평균 약 5017건, 하루 평균 13건이 발생한 셈이다.  

 

특히 2년 전 국민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3년 평균 차량 화재 중 승용차 화재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화물차, 소형승합차, 버스, 캠핌용 트레일러 순이었다. 이 같이 차량화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승용차의 소화기 설치 의무 필요성은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게 사실이다. 

 

관련 규정이 강화될 경우 차량을 구입하는 국민 입장에선 구매 시점부터 소화기를 장착한 차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차량 화재에 대비해 차량 구매 후 별도로 소화기를 추가 구비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방청이 최근 공개한 ‘2018 소방관련법령 개정 계획안’에 따르면 차량 소화기 비치 규정을 소방관련법으로 이관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규정을 유지키로 했다. 탑승 인원 5인승 이상의 승용차에 대해선 그대로 소화기 설치 의무를 두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안에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이관하고 국토부가 자동차 검사 시 소화기 설치ㆍ유지에 대해 검사하고 그 결과를 소방청장에게 통보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소방 전문가들은 차량용 소화기의 설치 의무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소방분야의 한 전문가는 “차량 화재는 자동차 특성상 유류를 사용하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빠르다. 초기에 진화하지 않으면 인명 피해는 물론 재산 피해도 키울 수 있다”며 “신속한 소화기 사용이 소방차 1대와 맞먹는 효력을 지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소방청으로부터 자동차 소화기 비치의무에 관한 연구용역을 추진했던 전문가도 차량 소화기의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차량 화재는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대부분 전소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승용차라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화재 발생 대수도 월등히 많다. 화재 초기 소화기를 빌려서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절대 다수가 승용차를 이용하고 화재 빈도수에서도 승용차가 월등히 높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도가 높음을 의미한다”며 “피해금액의 경우 고가 특수차량이 가장 높지만 승용차도 큰 차이 없이 2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볼 때 분명 소화기를 비치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했을 때와 소방차 도착 후 진압에 따른 피해금액을 따져보더라도 초기 진압 시와 소방차 출동 후 피해액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보험과의 관계성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이익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방청은 자동차 분야 전문가들의 이견으로 인해 5인승 이상 승용차에 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최초 소방청은 법을 이관해 오면서 5인승 이상 차량 내 소화기를 설치하는 안을 잡았지만 자동차협회, 관계부처 등에서 승용차까지 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5인승 승용차 내에는 소화기를 적재할 공간이 없고 소화기 비치로 차량 중량이 증가하면 연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소화기를 차량 내 잘못 고정할 경우 교통사고 시 소화기가 살상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서 “관련 시험이 필요하지만 아직 충돌시험을 할 여건이 안 되고 현대, 기아, 쌍용, GM, 르노 등 자동차완성업체와 자동차협회 간 협의도 진행했으나 실질적으로 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제시해 법 규정만 이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에는 차량 내 소화기를 설치하는 규정이 없어 자유무역협정 시 무역마찰이 빚어진다고 한다”며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에서 자동차 관련 규정을 이관해 달라 요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소방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소방분야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발표로 그동안 대두돼 왔던 차량용 소화기 설치 의무가 합리화되면서 차량 구매와 동시에 소화기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소방관련 산업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며 “그런데 이제와 갑자기 이미 발표했던 정책을 바꿔버리는 것을 보니 황당하기만 하다”고 씁쓸해했다.

 

최근 차량용 소화기를 구입해 승용차에 부착한 A씨는(남, 36) “승용차에 소화기를 설치하는 게 그렇게 위험하다면 소화기를 구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제 소화기 설치가 위험하다면 승용차에는 소화기를 설치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게 맞지, 1차량 1소화기 비치 캠페인 같은 독려 정책을 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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