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4)] 현장에서 외로울 틈 없는 독일 소방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2/19 [10:04]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소방서에서 관서실습을 하던 어느 날. 아마 8시쯤 됐던 것 같다. 인근 안전센터 관할의 다세대주택화재 현장에 펌프차를 타고 2차 지원출동을 나갔다. 현장에는 소방차량과 구급차량이 즐비했다. 그런데 지역 응급의료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는 적십자 소속 20여 명의 구급대원들이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카페에서 케익과 커피를 사먹고 있었고 적십자의 지휘부가 자체 지휘차량 주변에서 소방지휘관과 협의하며 현장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다수환자발생을 고려해 계획에 의거 출동했지만 사태가 크지 않자 구급대원들에게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라는 그다지 크지 않은 일반화재에 그렇게까지 많은 구급대원과 차량에 응급의료 지휘부까지 신속하게 왔다는 점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 독일 테하베의 임시교량 설치 훈련     © 소방방재신문


이듬해 초 나는 독일 기술지원단(테하베 - Technisches Hilfswerk) 실기학교에서 1주일간 테하베 간부들과 초급지휘자과정을 이수하게 됐다. 테하베는 임시교량건설, 대규모의 배수작업이나 전력지원, 조명지원, 식수, 하수처리 지원, 특수구조작업지원, 해외재난구조 등을 주임무로 하는 조직으로 이론학교와 실기학교 등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시작하던 첫날 저녁 전산실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당시 컴퓨터의 웹브라우저에 한글 인코딩이 없었고 인터넷 변경사항은 관리자 권한사항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옆 사무실에서 테하베 제복을 입고 일하던 사람들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문제를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왜 그런 문제를 자기들에게 얘기하냐며 짜증을 냈다. 나중에 학교 관계자를 통해 이들이 학교직원이 아니라 테하베의 출동을 대비해 당직을 서는 지역 지휘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 2015년 관광버스-탱크로리 추돌 대형교통사고 만프(MANV)가동     © 라운하임 소방대


적십자와 테하베외에도 독일에는 여러 재난대응 기관과 조직이 있다. 주로 응급의료와 특수재난사고를 지원하는 근로자사마리안 연합(ASB), 응급의료를 지원하는 요하니터, 말티저 등도 있다.


물론 조직이 다양하고 인원과 장비가 많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실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재난관련 기관과 조직은 24시간 출동대기를 하고 규모에 따라 필요인원과 장비, 그리고 지휘부를 필요한 시간 내에 보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독일 등 유럽에서는 일반적이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다수환자발생에 따른 응급의료대응 시스템인 만프(MANV)를 소개한다.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소방서에서 작성한 자체 만프계획을 보면 50명 이상 사상자 발생 시 응급의료 필수인원은 158명 이상을 기준으로 했다.

 


시간대별 인력장비 동원소요시간은 응급의사차 2대는 4분 이내, 구급대 8대가 20분 이내, 구급차 4내가 30분 이내, 민간 자원봉사 의료인력과 구급차 3대는 60이내다.


단지 의료인력과 구급차량들로만 다수 사상자 발생에 대비할 수는 없다. 응급의료소를 설치할 텐트와 관련 부속장비, 그리고 침대와 많은 의료기기가 필요하다. 이를 빠른 시간 내에 현장에 운반, 설치하려면 별도의 방법과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암롤콘테이너 차량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 만프 25명급 암롤콘테이너다.     © 울름 적십자 및 근로자사마리안연합 공용


결론적으로 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사고의 경우 독일에서는 소방과 재난관련 조직 구조인력 외에도 응급의료 조직에서 시간대별로 나뉘기는 하지만 최소 1시간 내에 17대의 구급차와 200명에 가까운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 만프 25명급 응급의료소 설치 사례     © 울름 적십자 및 근로자사마리안 공용


앞서 언급한 독일 재난관련 기관들 역시 현장에서 효과적인 대응력을 갖을 수 있도록 많은 인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출동기준과 동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대형화재 등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방의 현장대응력은 유관 조직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만으로는 효과를 높이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독일 소방은 대형사고 현장에서 충분하고도 신속한 유관 조직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효과적인 현장 활동에 임하고 있다. 때문에 현장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일은 없는 것이다.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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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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