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5)] 유럽의 병원 화재 시 대피와 구조 시스템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2/19 [10:04]

▲ 병원 대피훈련의 모습이다. 방화구획된 넓은 복도실이 환자집결 및 치료장소로 사용된다.     © 오스트리아 적십자

 

2005년 초에 독일 남서부 뮐하임이라는 곳에서 실습을 하던 기간에 지역에 새로운 병원이 준공됐다. 개원 전 1층 로비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게 됐다. 본격적인 시설 가동 전이라 유사 시 안전조치를 위해 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병원에 배치돼 시설을 둘러보게 됐다.


그 때 안내하던 대원이 복도의 큰 미닫이 문을 닫으면서 그 방화문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던 적이 있다. 그는 병원에서 불이 나면 환자들이 바깥으로 대피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구역에서 대피해 오는 환자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것을 감안해서 설치된 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독일,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에서는 대부분이 다층의 구조를 가진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인명 구조와 대피라는 개념은 빠른 시간 내에 건물 밖으로 탈출해야만 안전하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층 구조의 병원에서 화재발생 시 대피 원칙에 대해 오스트리아 그라츠 소방서는 2014년 안내문 8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는 독일의 원칙과 동일하다. 1단계 ‘있던 방에 그대로 대기한다’, 2단계 ‘연기 또는 방화구획으로 수평(같은 층)이동한다’, 3단계 ‘다른 층으로 수직 이동한다’, 4단계 ‘옥외로 대피한다’


물론 이 원칙을 정하는데 있어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 있다. 병원 소방시설이 어느 정도까지는 역할을 해주고 병원 자체의 직원과 의료 인력의 도움이 일정 시간 지탱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방대가 대피장소에 진입해 구조 도움을 주는 시간을 화재발생 후 대략 15분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화재발생에 따라 각 방화시설이 화염과 연기로부터 버텨줄 수 있는 시간과 이를 근거로 병원 직원과 소방대의 구조와 대피에 참고해야 하는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다.

 

▲ 화재 발생 후 시간 경과에 따른 조치 및 시설내화한계     © www.nofaevaku.org

 

따라서 불이 쉽게 번져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 병원이 불길에 휩싸이고 사방에 연기가 퍼져 있는 상태의 경우 전혀 적용하기 어려운 대피개념이다.

 

독일 병원에서 방화구획을 정하고 구획간에 사람들이 수평 또는 수직 이동하는 것에 대해 아래 그림을 통해 살펴보자.

 

▲ 병원의 구조구획의 설정과 활용 예시     © Nofaevaku 볼프강 하그 교수

 

병원의 각 병실은 인접 병실에서 몰려드는 환자나 침대를 추가로 들여보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피 후 유입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병실에 추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방화구획 안에서 넓은 공간이 있는 곳을 환자집결지로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병원 건물 내 대피집결장소 사례     © www.nofaevaku.org


예시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환자 등 대피하는 사람들의 거동능력을 기준으로 복수의 방화구획 내에 유사시 집결장소를 지정했다. 큰 병원의 경우 식당이나 세미나 실 등이 있긴 하지만 모든 방화구획에 이렇게 넓은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보통 로비 또는 병실이 줄지어 있는 복도 자체를 집결지로 지정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각 구획내에서 병원 직원과 의료인력이 환자를 돌보고 상황 대응을 하겠지만 병원시설 전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피나 인력과 장비의 보강조치, 구조기관들과의 협력을 총괄담당하는 곳으로 자체적인 지휘본부장소(KEL)를 지정해 둔 것을 볼 수 있다.

 

방화구획을 연결하는 통로는 보통 연기와 화염에 30분 정도 견디는 대형 방화문이 설치되는데 독일 여러 소방서 검사팀과 호텔, 학교 등에 정기 또는 준공검사를 다녀보면 복도 중간중간에 방화구획을 위한 방화문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은 복도를 대피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화재를 대비해 소방 등 구조관련 기관과 합동훈련을 실시한다. 입원해 있는 환자를 훈련에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 직원과 의료인력이 환자역할을 해주는 의용소방대원, 적십자 자원봉사 대원들이 참가한다. 대역이라고 하지만 실제 상황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되고 참가자들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다.

▲ 대피마스크를 착용시켜 다수의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모습이다.     © 독일 인터넷 언론 NNN

▲ 화재대피 마스크 착용시켜 침대환자를 대피시키는 모습이다.     ©http://www.management-krankenhaus.de

 

환자를 아래층으로 이동시키는 구조를 하는 경우, 누워있는 많은 환자를 침대에 눕힌 상태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중증환자를 제외하고는 침대 매트리스에 별도 구조장치를 부착해 매트리스만 끌어 계단을 통해 이동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다수 요구조자의 호흡을 보호하고 활동성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보조호흡기를 사용하지 않고 요구조자에게 화재대피 마스크를 착용시켜 구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원 소방시설과 대피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 관련 법령인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병원 및 요양원 건축규정(BbgKPBauV)을 개인적으로 번역해 강원소방본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외국소방이야기 코너 61번 자료).

 

▲ 병상 침대 매트리스를 이용한 수직대피     © EVTEX 사

 

다소 미흡한 점도 있겠지만 선진국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병원과 요양원 등 취약시설이 더 나은 시설기준과 대피시스템을 갖춰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크게 저감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le

ri

연재소개

전체목록

연재이미지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광고
광고
집중취재
[집중취재] 안전이 목적인데… 애물단지 전락한 공기호흡기 안전충전함
1/2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