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7)] 눈(雪)으로 불을 끌 수 있을까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2/19 [18:44]

겨울철 폭설로 수북이 쌓여 있는 많은 눈을 보면 소방관으로서 가끔은 저 눈으로 불을 끄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실제 흥미로운 사례들이 눈에 띄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눈삽으로 눈을 퍼서 화재건물로 던지는 소방대원들     © 118swissfire


스위스/독일 = 지난 2012년 12월 27일 스위스에서 있었던 화재진압 사례를 보면 새벽 3시경 외진 산 중턱에 있는 민박형 레스토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건물은 오래된 목조건물이었고 이곳으로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다행히 시설을 운영하는 부부는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고 주변에서 유사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소화기로 초기 진화를 도와줬다. 그러나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대는 소방차가 도달할 수 없는 지역임을 알고 인근 지역 소방대를 추가 요청함과 동시에 인근의 시설에서 스노우모빌과 설상차를 빌려 대원과 여러 장비를 싣고 현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 동력 제설장비를 이용해 화재 건물로 눈을 뿌리는 소방대원들     © 118swissfire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화재는 이미 최성기였다. 인접한 건물이 없었기에 그냥 타도록 놔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 부부가 건물 안에 연료용 대형 가스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화재진압과 신속한 냉각이 필요해졌다.

 

주변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전혀 없었고 최인접 소화전은 4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가져온 눈삽을 이용해 화재 현장으로 눈을 퍼 던졌다. 동력제설장비를 이용해 많은 양의 눈을 화재 현장으로 쏟아 붓기도 했다. 결국 화재발생 후 4시간 만인 아침 7시에 소방대는 가스통의 폭발없이 안전하게 화재진압을 종료했다. 하지만 동원된 소방차는 한 대도 없었고 화재 진압에 사용된 물도 전무했다.

 

최근의 사례로는 올해 1월 5일 야간에 스위스 그라운뷘덴 지역의 외떨어진 축사에서의 화재가 있다.  이 화재 역시 설상차를 타고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는데 가축을 대피시킨 후 축사 화재진압 자체는 큰 의미가 없어졌었다. 문제는 주변에 주택들이 근접해 있어 연소확대 우려가 높았다는 점이다. 이곳 역시 주변 화재진압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없었기에 소방대원들은 연소확대를 막기 위해 타고 온 설상차를 이용, 불타는 축사 주위로 눈을 밀어 모아 큰 눈덩이 방화벽을 쌓아올렸다. 결국 화재는 연소확대 없이 안전하게 진화됐다.

 

▲ 화재 건물 주위로 눈을 밀어 쌓아 연소확대를 저지하는 설상차     © 사진 스위스 Blick

 

한편 오래 전 독일에서도 폭설로 인해 화재 현장으로 진입하는 도로 폭이 좁아져 소방차 통행이 불가하자, 소방대가 제설차량을 이용해 현장에 진입한 뒤 화재건물로 눈을 투척해 화재진압을 한 사례가 있었다.

▲ 제설차량으로 화재건물에 눈을 투척     ©사진 pnp.de

 

캐나다/미국 = 2017년 2월 16일 아침 캐나다 호페달에서는 60대 노인이 장작 난로를 청소하며 문 앞에 놓아둔 재를 담은 상자에서 불이 나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을 발견한 이웃 주민들이 눈을 뭉쳐 집안으로 던졌기 때문에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는 잔불 정리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주민들이 눈뭉치를 던져 화재진압을 한 건물     ©사진 Pressfrom.ca

 

몇 년 전에는 미국 미시건주에서도 이웃집에서 창문을 통해 불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본 중년 남성이 소화기 3대를 사용해서 초기진화를 시도했는데 불이 꺼지지 않자, 바닥에 40cm 두께로 쌓인 눈을 13마력짜리 동력제설장비로 창문으로 투척해 화재를 진압한 사례도 있었다.

 

몇 가지 해외사례를 소개했지만 눈으로 불을 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분의 원천이 물이기 때문에 단순 논리상으로는 냉각효과를 통한 화재진압이 가능할 수 있지만, 같은 양의 물과 비교해서 부피가 너무 크고 기술적으로는 고압으로 다량을 불속에 투척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눈의 특성상 근거리 투척만 가능하기 때문에 복사열이 강한 경우에도 사용이 쉽지 않다.

 

따라서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처럼 화세가 크지 않을 때에는 제한적으로 소방차 도착 전 초기진화에 효과를 보았고, 독일이나 스위스의 경우에도 곳곳에 소방대가 많다는 점과 늘 눈이 많아 스키장에서나 볼 수 있는 설상차나 스노우모빌, 동력제설장비 등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례를 화재진압의 방법으로 일반화해서 보긴 어렵다.

 

다만 겨울철에 많은 눈이 쌓여 소방차의 신속한 도착이 어렵고 소방용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세의 규모가 작거나 동력제설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나마 자체 화재 초기진압이나 연소확대 저지의 가능성을 앞서 사례처럼 생각해 볼 수는 있을듯 하다. 눈으로 불을 끈다는 것. 불 끄는 방법으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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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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