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9)] 소방차의 출동 중 교통사고 관련 독일 판례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3/26 [08:53]

▲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긴급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소방차와 구급차는 단 1초라도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현장에 도착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재산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급을 요하는 만큼 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사고가 없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해마다 소방차량 교통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소방차량 사고에 대한 원인을 독일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법원의 판례 2건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출동 중 소방차량의 쌍방과실이 항소심에서 인정된 사례다. 지난 2016년 3월 홍수 피해를 입은 인근지역으로 모래를 담은 자루를 싣고 엘방엔 소방대의 소방차량이 경광등과 사이렌을 켜고 긴급히 출동하는 과정이었다.


시내 도로를 주행할 때 앞서 가던 승용차가 우측으로 비켜주며 정차했다. 그런데 소방차량은 승용차를 추월해 도로 좌측에 정차했다. 소방차량 운전원이 길가에 있던 동료 의용소방대원을 발견하고 빠른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웠던 것이다.


사이렌 소리가 너무 커 대화가 안 되다 보니 운전원은 경광등만 켰다. 이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뒤에서 길을 비켜주려고 정차해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 운전자는 앞서 가던 소방차가 멈춰서 사이렌을 껐기 때문에 출동상황이 종료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방차 옆을 지나가려 서행으로 직진을 시도하는 찰나 대화를 마친 소방차량이 다시 사이렌을 켜고 우측 차선으로 이동하면서 옆을 지나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결국 소송이 제기됐고 1심에서는 전방 출동 소방차량에 대한 주의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승용차 단독과실로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에 불복한 승용차 운전자는 곧바로 슈투트가르트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독일 도로교통령 12조 4항에서 차량의 우측 주정차만 허용하도록 규정돼 있더라도 당시 소방차량은 동법 35조 1항에 의거 특별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좌측 정차행위는 위법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고 직전에서야 소방차량의 사이렌이 다시 켜졌다는 점과 우측도로로 다시 이동하면서 주변 안전을 살피지 않았던 소방차량 운전자 과실도 인정했다.


그러면서 사고 승용차 운전자 역시 소방차량의 긴급출동이 종료됐다고 섣불리 판단해 앞서 있던 소방차량의 움직임에 대한 주의를 태만히 한 과실을 인정해 2018년 1월 말 두 차량 운전자의 쌍방과실로 최종 판결났다.
쌍방과실이 항소심에서 승용차 단독과실로 바뀐 판결도 있었다. 지난 2009년 8월 9일 시내 도로로 출동하던 응급의사차가 앞서 가던 좌회전 승용차를 추돌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독일 응급의사차에 대해 잠깐 설명하면, 독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구급출동지령이 발령되면 대원 2명이 탑승한 구급차량은 현장으로 출동하고 다른 1명은 승용차 형태의 응급의사차를 몰고 응급의료센터로 가 응급의사를 태운 뒤 다시 현장으로 이동해 구급차와 합류하는 이른바 랑데부(Rendez-vous)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당시 사고 상황을 살펴보면 응급의사를 태우고 현장으로 이동하던 응급의사차가 사이렌과 경광등을 켜고 도로를 질주할 때 앞에 있는 차량들이 도로교통령 11조 2항에 따라 1차로의 차량들은 좌측으로, 나머지 차로의 차량들은 우측으로 벌려 길을 열어줬다. 그런데 앞쪽 2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승용차 운전자가 응급의사차가 오는 것을 인지 못했다.


좌회전을 하기 위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 차선 쪽으로 이동하다가 좌회전 직전 교차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일시 정지를 한 것이다. 전방 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운전자는 차를 좌회전시켰고 이때 뒤에서 오던 응급의사차는 이 차량이 길을 비켜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좌측으로 추월해 직진하다 충돌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에서는 이 사고를 쌍방과실로 보고 응급의사차 쪽에도 1/3의 과실비율을 산정했다. 이에 응급의사차 쪽에서는 과실이 없다며 2011년 2월에 장크트 벤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판결을 받게 된다. 사브리켄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2011년 7월 사브리켄 고등법원은 이 사고 원인을 사고 승용차 운전자의 단독과실로 판결했다.


이 재판에서 승용차 운전자 측은 독일 도로교통령(StVO) 5조 3항의 1에 교통 상황이 추월차량 운전자의 감각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정황으로 볼 때 불확실할 경우에는 추월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언급하며 응급차량의 접근 인지를 못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는 차량 옆을 주의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월한 응급차의 잘못을 주장했다.


또 시내 안전주행 최대속도가 70~80km인데 응급의사차가 이를 초과한 속도로 과속해 주행했기 때문에 브레이크 작동을 통한 추돌사고의 회피가 불가능했던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 이 같은 이유가 1심에서는 인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에 대해 당시 응급의사차가 명확하게 도로교통령 제35조 1항에 의거 소방이 긴급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도로교통령의 법조항 적용을 예외로 하는 특별권(Sonderrecht)과 동법 제38조 1항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심각한 건강상의 위해로부터 보호, 의미 있는 물적가치 보호 등을 위해 긴급한 업무수행이 필요한 경우에는 청색경광등과 사이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통행우선권(Wegerecht)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중요시 하고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독일 도로교통령에 의거 사이렌과 청색 경광등을 켠 긴급차량이 다가오면 차량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줘야한다. 긴급차량이 출동운행에 있어 다른 차량들이 이렇게 길을 비켜준다는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승용차 운전자는 좌회전을 위해 전방을 살피는데 신경을 써서 뒤에서 응급차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뒤에서 오던 응급차가 좌회전 깜빡이를 봤으면 조심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재판부는 독일에서 통상적으로 긴급차가 사이렌과 경광등을 켰을 때 반경 50미터 이내에 있는 다른 차량들이 인지한 것으로 본다는 원칙을 들며 운전자가 몰랐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았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재판의 판결문에서 언급된 '50미터 원칙'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 원칙은 독일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구급차나 소방차 등 긴급차가 청색경광등과 사이렌을 켰을 때 50미터 이내 차안에서 이것을 인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수개월간 독일에서 소방차와 구급차를 타고 출동해 본 개인적 경험에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너무 커 출동 중 차안에서 대원 간에 대화를 하려면 크고 간단하게 말을 해야 서로 알아들을 수 있었고 출동 중 차량이 잠시 정차라도 하게 되면 사이렌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당시 필자는 독일에서 소방차에게 길을 잘 비켜주는 것이 사이렌 소리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까지 해봤다. 그리고 청색 경광등의 경우 밤에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 돌출된 경광등으로 도로 주변까지 어느 정도 보일 정도로 밝았다.


재판부는 이 50미터 원칙과 다른 차량들을 추월하던 응급차가 사고 승용차량을 처음으로 인지했던 것은 사고 승용차의 뒤쪽 25미터 거리였다는 증언을 근거로 사고 승용차 운전자가 응급차를 인지하기에 충분한 거리와 시간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운전자는 백미러를 통해 근처 응급차의 진행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태만히 하고 좌회전을 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므로 이러한 부주의 과실이 크다고 판단했으며, 이 이유로 응급차의 쌍방과실이 아닌 승용차 운전자의 단독과실로 판결했다.


출동하는 소방차량의 교통사고와 관련해 독일의 법원 판례 2건을 소개해 봤다. 재판에서 어느 쪽이 이기고 졌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소방차 길터주기의 모범국가로 독일을 얘기할 때, 그런 행동의 바탕을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관련 도로교통법령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이 같은  판결 역시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출동하는 소방차의 교통사고 재판의 판결문에서 어느 쪽이 무엇을 더 조심하고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았어야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통해 그 판결이 향후 많은 운전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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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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