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국의 나라밖 소방(11)] 베를린 소방의 통일이야기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 입력 : 2018/04/23 [16:46]

▲ 조현국 강원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승전 연합국들에 의해 동서로 분단됐다. 전체 영토 중 동쪽 5개주가 구 소련 관할의 동독으로 분리됐고, 이와는 별도로 하나의 대도시였던 수도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었다. 이후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단일 국가로 통일된다. 독일 통일 15주년이 되던 2005년 봄, 필자는 수도 베를린의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러나 베를린으로 가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단 하루라도 그곳 소방대원들과 동료로서 함께 생활하며 출동해야 베를린 소방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기에 소방서장에게 서한문까지 보내 실습허용을 요청했다. 하지만 관리 곤란을 이유로 거부를 당했다. 그렇게 포기를 할 때 쯤 실습기간 중 개인 홈페이지에 계속 게재했던 글을 본 베를린 소방서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다. 1박 2일의 실습을 허용하겠다는 통보였다.


방문 첫날 베를린 소방서 본서에서 소방 티셔츠와 건빵바지 등 피복류를 받고 필자가 쓰게 될 외곽안전센터의 손님방을 배정받았다. 원래 손님방은 외부에서 실습교육을 오는 소방관이나 여행하는 소방관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소방서마다 보유한 유료시설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베를린 소방서에 11유로를 내야 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같은 소방관에게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에 나를 안내한 홍보담당자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예산 사정이 좋지 않아서란다.


본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다 필자는 눈을 의심했다. 청사 시설이 너무도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상과 집기류, 그리고 색이 벗겨지고 찍힌 흔적으로 이곳저곳 있는 흉한 모습의 문짝 등 당시 우리나라 소방서의 시설만도 못할 정도였다. 의외였다. 우리보다 잘 사는 독일이, 그것도 수도 베를린의 소방서 모습이 왜 그렇게 낙후됐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이전에 가봤던 당시 독일의 다른 지역 소방청사, 특히 구 동독지역 일반 소방청사보다도 훨씬 못했다.


그렇게 본서 일을 마치고 동베를린지역 리히텐베르크 안전센터에 짐을 풀고 방화복 등 개인안전장비를 수령했다.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됐다. 기본적으로 구급2팀에 합류하고 다른 화재나 구조출동이 있으면 펌프차를 타고 출동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구급차가 3대 있었는데 지령이 나면 순번대로 출동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날 구급대원들과 만나 새벽까지 12건의 출동을 했다. 그런데 다른 소방서의 대원들과 다른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 일단 위생복이 없었다. 그냥 일반 진압대원들이 입는 활동복 티셔츠에 건빵바지를 입고 신발조차 위생화가 아니었다. 가장 놀랐던 건 단독주택 2층에서 몸무게가 120킬로가 훨씬 넘어 보이는 남성을 의자형 들것으로 힘겹게 들고 내려온 일이었다. 다른 소방서는 기본적으로 2층 이상에 있는 환자는 구급대원의 허리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을 통해 특수 들것이 거치된 사다리차 바스켓에 환자를 올린 후 아래로 내려 구급차로 옮기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 동서 베를린 소방서장과 고위간부들이 통합을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     © 베를린 소방서 제공

 

이런 사실을 구급대원들에게 얘기해줬을 때 자신들은 몸이 튼튼해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들끼리는 다른 곳과 달리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이송해야 되냐며 불만을 토로하던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됐다. 24시간 구급활동을 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지만 소방서에서는 구급대원을 고정 편성하지 않고 근무 때마다 순환하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낮에 청사 휴게시설을 둘러보는데 특이한 당구대가 눈에 띄었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당구대 큐대의 끝부분은 다 닳아 있었고 당구공에 적인 숫자와 색깔은 구분조차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개별 취사로 식사를 해결하는 식당에는 근무조별로 할당된 조리도구를 모아놓는 보관함이 있었는데, 다른 소방서와 달리 그곳만 유일하게 근무조별 보관함에 자물쇠가 설치돼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의아했던 건 필자가 배정받은 방을 비롯해 모든 대원의 침실이 1층에 배치돼 있었던 점이었다. 그렇다보니 소방서 차고에는 하강봉이 없었다. 독일 소방청사는 기본적으로 차고 중심의 오염공간과 2층 이상의 비오염공간을 엄격하게 구획한다. 현장 활동에서 피복류와 장비에 묻은 오염물질 또는 차량 배기가스 등이 일반 생활공간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1층에는 대원들의 생활공간을 두지 않는 것이 엄격한 원칙이다. 하강봉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가 베를린 소방서에서 꼭 하루라도 실습하고자 했던 이유는 2000년대 초 베를린 소방서의 개서 150주년을 즈음해 나온 한 지역신문 기사내용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사는 통일 후 여전히 소방대원들의 봉급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일 통일이었지만 소방의 통일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했다. 야간에 휴식을 취하던 나이 많은 대원에게 동서베를린 소방서의 통일 과정에 대해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는 흔쾌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줬다.


그는 통일이 무르익어가던 시절 자신들은 매일 같이 모여 통일 후 미래를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특히, 통일 후 직장을 잃게 되는 건 아닌지, 낯선 교육훈련 과정을 새로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걱정했다고 한다. 당시 그곳 간부들은 모두 비밀경찰(Stasi) 소속으로 통일 후 그간 악행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모두 달아났기 때문에 하급 대원들만 청사에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대원들의 생활공간이 대부분 1층에 있는 이유는 엄격한 주민통제에도 불구하고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근무 소방대원이 야간에 청사를 탈출해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것을 용이하게 감시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공간 배치를 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독일 통일 후 동서베를린에 있던 소방서는 서베를린에 있는 소방서로 통합되고 동베를린 지역 모든 소방청사에는 서베를린 소방서의 간부들이 한 명씩 배치돼 현장활동과 교육훈련 등 모든 시스템을 서베를린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해나갔다고 한다.

 

▲ 통일 후 동(왼쪽)ㆍ서(오른쪽) 베를린 소방관들이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베를린소방서 제공

 

‘그러면 통일 후 직원들의 봉급은 왜 차이가 생겨났을까?’ 궁금했다. 2005년 방문 당시만 해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지역 근무 소방대의 봉급차이는 17%정도였다고 한다. 오랜 분단으로 서로 큰 격차로 벌어진 경제 수준의 두 지역이 갑자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됐을 때 지역별 물가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봉급을 지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구분이 대원의 거주지가 아니라 근무지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나타났다. 심지어 대원들은 거주지와 상관없이 서베를린 지역 청사에서만 근무하려는 부작용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현재 봉급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얼마 전 베를린 소방서 북부지구 책임관인 키르허 씨에게 문의해 보니 이젠 봉급차이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럼 그 당시 방문했던 2005년의 베를린 소방서는 왜 그렇게 낙후됐던 걸까?’ 당시 안전센터에 같이 있던 대원을 보고 필자가 생각하는 계급이 맞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대원은 놀라면서 맞다고 대답했지만 8년 만에 승진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다른 지역은 4년이면 근속승진하는 계급이었는데, 승진조차 훨씬 늦었던 것이다.


이튿날은 토요일이었지만 홍보담당자가 유치원 소방안전교육을 위해 나왔다. 주말 홍보활동에 대한 수당을 받는지 물었더니 소방서에 돈이 없어 수당은 못 받는다고 했다. 다만 교육시간 1시간에 집에서 오가는 시간 각 30분씩을 합쳐 2시간을 나중에 휴가로 쓸 수 있다고 했다.


베를린 소방서의 시설 낙후와 재정 부족은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발생한 통일부채 규모가 엄청났던 데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베를린의 경우 하나의 도시가 분단됐다가 다시 통일된 것이라서 자체 재정부담도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베를린 시내에서는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돼 있던 동베를린 지역에 대한 투자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서베를린 소방의 시간은 멈췄고 베를린 소방서는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통일 직전 동서 베를린 소방대원들이 화재현장에서 서로 만났다.     © 베를린소방서 제공

 

한 번은 베를린 소방서의 박물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동서베를린 경계에 있는 강에 사람이 빠져 동베를린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잠수복까지 입었는데, 동베를린 공안들이 구조대원들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당시는 구조를 위해 강물에 들어간다는 건 서베를린으로의 탈출로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허우적거리는 익수자와 그런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해 답답해하는 소방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총부리를 겨누는 동독경찰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소방차가 동서베를린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감시초소를 없애고 서베를린으로 넘어오는 동베를린 사람들을 위한 비상침대도 마련해야 하는 등 베를린 소방서는 업무가 급증하게 됐다. 그리고 12월, 동서베를린의 양쪽 소방서장들의 만남을 시작으로 소방서 통합작업이 진행돼 이듬해인 1990년 10월 독일 통일과 동시에 하나의 소방서로 통합된다.


필자 방문 이후 벌써 14년이 흘렀다. 지금의 베를린 소방서는 많이 변했고 외견상으로도 다른 소방서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됐다. 여러 면에서 독일소방을 대표하며 독일소방에 있어 변함없는 위상과 상징성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독일소방의 분단과 통일에 있어서도 베를린 소방서는 여전히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조현국 강원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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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강원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조현국 과장은 지난 1999년 1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원중부소방서 서둔파출소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태백소방서 구조구급계장을 거친 뒤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소방관서 실습과 각종 교육을 이수했다. 독일 프라이브르크, 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뭘하임의용소방대, 뭘하임 적십자구급대, 프랑스 콜마르 등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유럽의 선진 소방조직 구조와 시스템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또 소방 및 THW 초급지휘자 과정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2015년 강원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2017년부터는 철원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조현국 과장은 풍부한 유럽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2012년, ‘독일소방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소소한 외국 소방의 이야기부터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스위스 등 다양한 선진국 제도 등 각종 외국 소방자료를 수집해 공유하는 등 대한민국 소방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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