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소화설비 시설관리자가 위험하다!

화재안전 소화설비가 생명 위협 설비로?

최영 기자 | 입력 : 2010/04/12 [14:23]
- 보이지 않는 가스소화설비 질식 사고!
- “오작동 무서워 들어가기조차 겁나”
- 선진국은 관리자 안전 ‘공기호흡기’로 지켜

 
소방시설 중에는  전기실, 발전실, 통신기기실, 전산실 등에 법적으로 갖춰야하는 시설이 있다. 바로 이산화탄소나 각종 소화용 가스약제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는 가스계소화설비이다. 간략하게 표현하면 스프링클러와 흡사하지만 물이 아닌 가스로 화재를 진압하는 시스템이다.


이 가스소화설비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 관련법에서 강제적으로 설치 대상을 정하고 있지만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시설로도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본지에서는 화재안전을 위해 설치되는 가스소화설비가 무슨 이유로 위협적인 시설로 인식되는 것이며 또 어떤 사고가 발생되는지 집어보고 그 해결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잇따르는 질식사고…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

가스소화설비 중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로 인한 질식사고는 지난 2001년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금호미술관에서 발생한 사고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관람 중인 어린이가 설비 수동 조작함을 작동시키면서 소화약제가 미술관 내부로 분출돼 어린이 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을 입는 전례 없는 사고였다.

이 사고로 당시 행정자치부에서는 인명피해 우려가 높은 시설에는 이산화탄소소화설비를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지난 2003년 9월 2일에는 전남 영광군의 영원 보조건물 전기차단기실에서 이산화탄소가스가 방출되면서 시설물 관계자 4명이 가스 중독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같은 해 10월 28일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s빌딩 기계식 주차타워에서 시설관리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화설비 작동 경보음을 청취한 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갔다가 질식사 한 것이다.

또, 2008년 9월 13일에는 충남 논산 상월면 금강대학교 본관 지하 방재실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 방재실 변압기에서 일어난 화재로 소화설비가 작동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됐고 방재실 직원 2명이 변압기에 접근하다 질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 사고가 발생된 지 한 달도 안 된 26일에는 부산대학교 병원 타워주차장에서 건물주차장 방역소독 중 이산화탄소소화설비가 오작동하면서 주변에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구토 및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청정소화약제설비에서도 경미한 질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26일에는 충남 당진군 석문면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오작동으로 가스소화약제(naf s-Ⅲ)가 방출돼 직원 5명이 가스흡입과 산소부족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7월 13일에는 서울 구로구 신축 공사장 지하 6층 약제실에서 가스소화설비 시스템(hfc-23) 의 결선 작업 이후 테스트 중 기동용기가 오작동 하면서 가스가 방출됐고 인부 1명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에 이송됐다.
 
이 사고들은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사례들이다. 가스소화설비를 취급하는 업계에서는 가스소화약제 방출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상당수 발생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외부로 유출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으로 공개되거나 소방서에 보고될 경우 안전관리자의 문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스소화설비를 설치한 시공업자나 제조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습방법이라는 것이다.
 
방출되는 가스관리자무방비 노출
 
소방시설관리를 맡고 있는 허 모씨는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변전실에 설치돼 있지만 들어가기가 싫다”며 “만약에라도 오작동이 발생되면 바로 죽을 수 있고 주변에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설치된 방호공간 (변전실)     ©최영 기자
그는 또 “화재안전도 좋지만 그 시설물이 무서워서 설치 공간에 들어가기를 꺼리게 된다는 것은 정말로 답답한 일”덧붙였다.
 
이처럼 소방시설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가스소화설비가 화재안전을 지켜주는 중요 시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화가스 방출로 인한 질식의 위험성 때문이다.
 
특히, 관리자 측면에서는 오동작이나 화재진화를 위한 가스 방출 시 현장 확인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방호구역으로의 접근은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방출공간에 함부로 접근했다가 가스소화약제를 들여 마시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진입조차 어렵다고 관리자들은 말한다.
 
2008년 9월 13일 논산 금강대학교 강의동 지하 전기실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이 같은 위험성을 쉽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전기실 내 변압기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작동돼 불은 자체 진화됐지만 화재현장 복구를 위해 현장에 진입하던 관리자 두 명이 질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최초에는 1명이 방출구역에 접근했다가 질식으로 쓰러졌고 구조를 위해 접근한 또 한명의 관리자가 질식해 버린 사고이다.
 
지난 2001년 금호미술관 방출사고로 사람이 상시 근무하는 장소나 전시장 등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설치할 수 없도록 제도의 개선은 이뤄졌지만 관리자는 아직까지도 질식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이산화탄소설비 위험성더욱 치명적!

가스계소화설비 중 이산화탄소소화설비의 위험성은 타 청정가스소화약제와 비교가 안될 만큼 높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공기 중 21%의 산소 함유량을 15%이하로 낮춰 연소물을 질식작용에 의해 소화시킨다.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40%가량 혼입하면 산소 농도가 15%이하가 되는데 최소 34% 이상으로 설계가 이뤄진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일 때 중추신경 마비가 나타나며 단시간 내 사망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높은 40%가 유입되면 사람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시설관리자는 이 공간에 가장 먼저 접근해야만 하는 주요 인력이다.

가스소화설비 대상물 증가대책 필요

금호미술관 이산화탄소소화설비 사고 당시 서울소방본부에서는 지역에 분포된 가스소화설비의 설치 현황을 발표 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산화탄소소화설비는 424곳, 할론 1,154곳, 청정소화약제 95곳 등 총 1,673 개소였다. 

지난해 국정감사 시 소방방재청이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실에 제출한 가스소화설비 설치 현황을 보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는 1,081곳으로 8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났고 할론 1,159곳, 청정소화약제 288곳 등 총 2,528개소로 할론을 제외한 가스소화약제 설치 대상물이 부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총 9,379개소 건축물에 가스계소화설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대규모 건축물이 늘어남에 따라 대상물 또한 확대될 전망이어서 시설관리자의 안전을 위한 대책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공기호흡기’로 관리자 안전확보 가능해

선진국에서는 가스소화설비가 설치된 구역에서 신속한 대피와 위험 환경으로의 유입 방지, 인명의 신속한 구조 등을 위한 안전수칙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nfpa코드(nfpa 12, 12a, 2001)에 따르면 이산화탄소와 할론, 청정소화약제소화설비가 설치된 곳에 대한 훈련과 경고신호, 방출경보, 공기호흡기, 대피 계획 및 소방훈련 등과 같은 안전 관련 사항을 고려하도록 명시돼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소화설비의 경우 공기호흡기의 사용 및 착용에 대한 적절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4%를 초과하는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공기호흡기를 통해 시설물 관리자가 오작동 및 작동 시 방호구역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훈련과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자 안전 위한 ‘제도 개선 필요’
 
지난 2008년 12월 소방방재청에서 발간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의 화재안전기준 해설서에는 공기호흡기를 설치해 소화가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소화설비 주위에 공기호흡기를 두어 가스를 마신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하거나, 방출된 지역을 들어갈 때 사용하도록 해 이산화탄소가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해설이다.

이는 소방방재청에서 공기호흡기 비치가 관리자의 안전 확보 방안임을 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실제 국가 화재안전기준에는 이 같은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관리자를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한 소방시설 관리자는 “외국과 같이 공기호흡기 같은 안전장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건물주나 웃 사람에게 쉽게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방화관리자 등 고용된 신분으로 건물주나 고용주 등에게 일정 비용을 들여 자신의 안전을 위한 비용 투자를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관리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고의 근본적인 예방을 위해 시공 당시부터 안전장치가 확보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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