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시론] 5만 소방공무원의 희생 조롱한 인사혁신처

광고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소방위) | 기사입력 2019/02/19 [20:29]

[시론] 5만 소방공무원의 희생 조롱한 인사혁신처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소방위) | 입력 : 2019/02/19 [20:29]

▲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소방위)

지난 15일 인사혁신처가 2018년 5월 1일 소방활동 중 주취자의 폭행과 폭언으로 인해 숨진 익산소방서 구급대원 고 강연희 소방관의 사망을 ‘위험직무순직’으로 볼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을 유가족에게 통보했다.


인사혁신처는 고 강연희 소방관의 유가족에게 보낸 위험직무순직 불승인 통보 문건에서 ‘공무원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순직(이하 일반순직)’에는 해당하지만 같은 법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의 순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을 두고 업무상 연관성은 인정되지만, 고 강연희 소방관의 업무는 고도의 위험을 수반한 업무로 볼 수 없어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고 강연희 소방관이 주취자를 상대로 수행한 구급업무가 위험직무가 아니라는 얘기와 같다.


인사혁신처의 이런 결정은 한마디로 법치국가에서 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취지를 망각한 판단이다. 또 이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조직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한 영령과 그 유가족, 이 시간에도 각종 현장을 누비는 5만 소방공무원을 조롱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명백한 인사혁신처 행정행위의 하자다.


‘공무원재해보상법’은 2018년 4월에 제정해 같은 해 9월에 시행됐다. 공무원재해보상법이 만들어진 취지와 동법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인사혁신처의 판단이 왜 문제인지 그 이유를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소방관이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사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망한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는 언제나 똑같지 않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재난현장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소방관이 있는가 하면 재난으로 볼 수 없는 일상 현장업무(일상적 구급활동, 생활민원, 기타 현장업무 등)를 수행하다 사망한 소방관도 많았다.


그러나 과거에는 극히 제한적으로 재난현장에서 사망한 소방관만이 ‘공무원연금관리법’에 따른 보상(일반순직)과 더불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순직군경으로 구분돼 보훈급여 보상과 국립묘지 안장이 이뤄졌다.


그렇지 않고 일상 현장업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소방관은 단지 재난현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무원연금법의 일반순직 이외 추가 보상이나 예우에서 소외돼 왔다. 그들은 정당한 희생을 보상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소송을 진행해가며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위험이 항상 상존해 있는 소방, 경찰 등은 재난현장이 아니더라도 일상 현장업무 자체가 위험이 상존해 있어 보호해야한다는 필요성을 정부는 부정하지 못했다. 여기에 사회적 공감이 더해져 2006년 ‘위험직무관련 순직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위험순직, 위험직무순직이란 용어의 공식적인 첫 등장은 이때라고 볼 수 있다. 위험직무순직 관련 법률이 제정되면서 재난현장이 아니라도 상시적 위험성을 안고 근무하는 공무원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위험직무에 해당하는 업무의 범위도 확대됐다. 이와 발맞춰 순직한 소방공무원에 대한 보상 관련 법률안도 그 범위를 넓혀가며 제ㆍ개정됐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소방관 전용 묘역이 만들어졌고 국립묘지 안장대상도 재난현장은 물론 생활민원, 훈련 및 그 지원활동에서 순직한 소방공무원도 안장대상자로 규정해 사실상 소방관의 모든 현장활동을 국립묘지안장대상자로 인정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2011년 개정 내용에 직무상 위험에 상시로 노출돼 있는 소방공무원을 순직군경과 공상군경에 포함시켜 국가유공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함은 물론 그 인정범위도 확대했다.


관련법이 변화를 거듭하며 ‘위험직무관련 순직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은 2010년에 폐지됐고 그 법이 담고자한 가치와 취지는 공무원연금법 내 재해보상에 관한 부분만을 따로 정하는 ‘공무원재해보상법’으로 2018년 재탄생했다. 물론 이 법에서는 위험직무순직에 소방공무원의 인정범위를 모든 현장활동이라 할 수 있는 범위로 확대해 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은 그동안 우리사회가 사회와 공공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가 적절하지 않았고, 특히 소방공무원의 희생에 대해 국가와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들의 희생을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법 또한 그 취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보다 높은 인명 가치 중심의 사회로 한발 내딛는 것으로 봐야 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을 법이 추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고 강연희 소방관에 대한 인사혁신처의 판단은 이 긴 역사를 부정함은 물론 법이 추구하는 목적을 단숨에 잘라내 과거로 회귀해 그 가치까지 크게 훼손했다. 이는 엄연히 위법한 행위이며 행정행위의 하자다.


또한 앞으론 소방공무원의 순직에 대해 법의 가치를 초월해 인사혁신처에서 판단과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가의 정책, 사회가 성장하며 일궈온 가치에 완전히 배치되는 오만함 마저 엿보인다.


이 판단을 두고 소방공무원들은 3월 초 세종시 인사혁신처 앞에서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고 강연희 소방관의 사망이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 놓고 엄연히 법에서 위험직무순직 범위에 포함된 구급활동을 위험직무가 아니라고 본 인사혁신처의 판단에 소방관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현장 속 소방공무원의 활동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 내린 이번 사태는 앞으로 그들이 “이 활동이 위험직무일까”를 고민해 가며 물음표를 찍게 만드는 불안감까지 조성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을 거리로 내몰아 버린 지금의 상황을 인사혁신처는 반드시 책임져야할 것이다.

 

고진영 전 소방발전협의회장(서대문소방서 소방위)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