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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소화기 기준 시행 앞두고 혼란 빠진 제조업계

유예기간 6개월, 시험 기간도 6개월… 업계 “문제 있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기준 시행 방법 두고 “아쉬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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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2/10 [10:22]

강화된 소화기 기준 시행 앞두고 혼란 빠진 제조업계

유예기간 6개월, 시험 기간도 6개월… 업계 “문제 있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기준 시행 방법 두고 “아쉬움 커”

최영 기자 | 입력 : 2020/02/10 [10:22]

▲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3.3kg 분말 소화기  © 최영 기자


[FPN 최영 기자] = 소화기 제조 업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난해 9월 강화된 소화기의 기술 기준 때문이다. 본격 적용되는 강화 기준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칫 3월 말부턴 소화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9월 소방청은 국내 소화기 품질 향상을 위해 ‘소화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 기술기준’을 개정ㆍ고시했다.

 

새롭게 바뀐 이 기준에는 나사식 밸브 규정을 신설하고 그동안 특별한 제한 없이 사용돼 온 소화기 호스의 재질을 합성수지로 사용할 경우 노화 시험을 반드시 거치도록 강화했다. 또 소화기의 안전장치 이탈방지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진동시험을 도입하고 안정적인 사용을 위해 소화기 손잡이와 안전핀의 규격을 크게 키웠다.

 

9월 24일 개정된 이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 약 70여 개에 달하는 소화기 형식승인 보유 제조사들은 오는 3월 23일까지 새로운 기준에 맞춘 제품으로 형식승인을 보완해야 한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국내에 보급되는 소화기 대다수가 새롭게 바뀐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특히 업계 내에서는 개정된 기준 중 소화기 호스 재질 시험을 두고 뒷말이 많다. 업계에 따르면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합성수지에 일부 고무 성분을 섞은 복합 재질의 합성수지 소화기 호스가 주로 사용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화기 업체 대다수가 합성수지와 고무가 혼합된 재질의 호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업체가 고무 재질 호스로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관련 기준은 합성수지 호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최소 노화 시험 기간이 180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실상 호스를 합성수지로 적용하는 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현재 바뀐 규정에 따라 합성수지를 사용하는 호스는 ‘공기가열노화시험’과 ‘내후성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중 공기가열노화시험은 100℃에서 180일 동안 가열 노화를 시킨 뒤 성능과 기능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 100℃의 온도에서 견디지 못하는 재료의 경우 87℃ 온도에서 430일 동안 시험하는 방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반면 고무호스를 사용할 경우에는 전문기관의 성분분석 결과와 72간의 오존노화시험만 거치면 된다.

 

업계는 해당 기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합성수지 호스를 적용할 수 있는 시험 규정이 존재함에도 현재 상태에선 선택할 길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준 개정 시점과 시행 시기를 고려하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 업체 관계자는 “기술기준 개정 이후 시행은 6개월 뒤인데 합성수지 호스를 사용하려면 180일, 즉 최소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이는 결국 모든 제품을 고무호스로 변경해야 하는 결과가 됐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기준이 시행된 지난해 9월 이후에도 기술원은 제품의 형식승인 변경을 ‘중요한 변경’으로 할지, ‘경미한 변경’으로 할지조차 정하지 않는 등 명확한 시행 방침이나 안내가 없었다”며 “개정 기준 시행 한 달여를 앞둔 최근에서야 기준 적용 방안을 통보해 오면서 소화기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요’ 또는 ‘경미’ 변경 적용 여부에 따라 수수료 액수는 물론 행정적 절차도 달라진다.

 

업계에선 이번 기준 시행에 따라 고무호스로 변경하는 조치가 헛일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내비치고 있다. 당장 시행을 앞둔 상태라 신규 기준에 맞춘 고무호스로 재질을 바꾸더라도 결국 업체 간 단가 경쟁에 따라 차후에는 합성수지 호스로 재질을 변경하게 될 것 거라는 관측이다.

 

소화기 호스를 만드는 한 업체 관계자는 “고무호스는 합성수지 호스에 비해 단가가 약 3배 정도 높다. 업체들이 기준 시행에 임박한 당장은 고무호스로 재질을 바꾸더라도 단가를 줄이기 위해 합성수지 재질로 돌아간다면 불필요한 형식승인 비용과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된다”며 “이는 적정한 시행 유예 기간만 주어졌어도 방지가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술원은 2년 전부터 해당 기준 개정 방안을 업계와 논의해 왔고 업체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부 행정 처리에서는 기술원도 다소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술원에 따르면 해당 기준을 처음 논의한 시점은 2018년 6월 20일이다. 당시 제조업체 관계자 회의에는 23개에 이르는 소화기 제조사가 참여했고 개정에 따른 이견이 없었다. 또 2018년 8월 7일 소방청과 기술원, 소방분야 기술전문가가 참여하는 ‘소방검정기술심의위원회’를 거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2년 전부터 예고된 기준 개정 계획을 고려할 때 시행 시점을 두고 관련 업계가 늑장 대응을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기술원 관계자는 “소화기의 안전성과 내구성 확보, 품질 강화를 위해 미국 UL 기준을 도입한 것인 만큼 필요성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시행 시기 설정과 행정 처리 과정에서 제조사에 기준 시행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기준의 선진화는 국민 안전을 위해 타당한 일이지만 산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 시행은 산업계에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소방용품의 기술기준을 운영하는 기술원의 행정 운영 방식에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모든 소화기 제조사는 앞으로 한 달 반 안에 소화기 형식승인을 모두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원이 시행 시점을 코앞에 두고 몰려드는 제조사들의 승인 신청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2017년 ‘10년’의 내용연수 제도를 도입한 이후 보급량이 대폭 늘어난 소화기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화기의 검정 수량은 677만2223개에 달한다. 이는 소화기의 내용연수 도입 이후 매해 약 2백만 개 이상 늘어난 양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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