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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고체에어로졸 오방출 후 멈춰버린 ESS?… 책임 공방 치열

“수억원 들여 갖춘 시설인데…” 해결책 없이 사업주만 ‘속앓이’
고체에어로졸 약제 방출이 문제인가 VS 습도관리가 문제인가
배터리 만든 삼성SDI는 갈팡질팡 원인 분석, 혼란만 부추겨
사업주 “ESS 공사, 관리 모두 맡은 한전산업개발 책임 회피”

최영, 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0/11/25 [11:07]

[집중취재] 고체에어로졸 오방출 후 멈춰버린 ESS?… 책임 공방 치열

“수억원 들여 갖춘 시설인데…” 해결책 없이 사업주만 ‘속앓이’
고체에어로졸 약제 방출이 문제인가 VS 습도관리가 문제인가
배터리 만든 삼성SDI는 갈팡질팡 원인 분석, 혼란만 부추겨
사업주 “ESS 공사, 관리 모두 맡은 한전산업개발 책임 회피”

최영,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0/11/25 [11:07]

▲ ESS가 구축된 경북 상주에 위치한 태양광발전소  © 최누리 기자

 

[FPN 최영, 최누리 기자] = “불 날 걱정만 했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죠. 불 끄려고 설치한 소화장치가 문제를 일으켰다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 (한숨)”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양광발전사업을 하는 정재극 씨(남, 73). 그가 그렸던 단꿈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2015년부터 태양광발전 사업을 해오던 그는 2018년 말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시설을 갖추기로 하고 전문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ESS 화재가 잇따랐고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하반기에 들어 가까스로 ESS에 대한 추가 안전조치가 시행됐지만 전력변환장치(PCS, Power Conditioning System) 수급까지 늦어지면서 정 씨는 우여곡절 끝에 1년이 지나서야 ESS를 준공하고 영업을 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한 달 뒤 정부의 추가 안전조치 설치 방침에 따라 시공사가 적용한 소화장치 교체 작업 중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가 오방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만 해도 배터리엔 문제가 없을 거란 설치 업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의 오방출 사고 당시 사진  © 정재근 씨 제공

예기치 못한 상황은 여덟 달이 지난 올해 8월 초 벌어졌다. ESS에서 PCS 절연저항 알람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결국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는 ESS 운전을 중지시켰다. ESS 배터리 셀의 절연저항 측정 결과 일부 배터리가 기준치 미달로 가동이 불가하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총 144개 셀 중 54개가 고장났다. 일부 복구 시에는 1억원 이상, 전체 셀 교체 시에는 최소 3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9월 15일부터 완전히 멈춰버린 ESS 탓에 정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설 구축 대출을 받은 금융회사로부터 원리금 상환 독촉을 받고 있다. 발전시설 운영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조차 내지 못할 처지다. 


정 씨는 “ESS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서상 품질보증에 따라 시공사나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가 책임을 지고 복구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체 시스템 시공을 진행하고 소화장치 설치와 관리까지 맡은 한전산업개발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피해만 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지난 19일 취재진과 만난 정재극 씨가 ESS 시설의 문제 발생 이후 이렇다할 해소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토로하고 있다.  © 최누리 기자

 

 고체에어로졸 오방출… ESS에 찾아온 날벼락?

▲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가 오방출된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운영이 중지된 ESS 배터리 저장실  © 최누리 기자


경북 상주에 있는 정 씨 소유의 ESS는 태양광으로 얻어진 전기 에너지를 저장한다. 절연저항 문제로 멈춰버린 이 ESS는 총 세 곳의 저장실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어진 시설이다. 하나의 랙 당 배터리 18개씩, 총 8개 랙으로 구성돼 모두 144개의 배터리 셀이 들어 있다.


과거부터 태양광발전 사업(상용태양광발전)을 해오던 정 씨가 에스제이(주)에 ESS 구축 사업을 발주한 뒤 한전산업개발(주)가 하도급을 받아 설치공사를 총괄했다. 한전산업개발은 (주)엘지헬로비전에 다시 하청을 줬고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 설치는 (주)지티엔지라는 업체가 맡아 수행했다. 지티엔지는 지난해 12월 28일 2000g의 대용량 고체에어로졸 두 대를 ESS 배터리실에 교체ㆍ설치하다 오작동으로 소화약제가 방출되는 사고를 냈다.

 

지티엔지 관계자는 “최초 설치된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는 소화약제가 연동되지 않고 화재 발생 여부를 알 수 없어 수신반을 설치해 달라는 한전산업기술개발의 요청이 있었다”며 “신호 연동이 되도록 소화장치 교체 공사를 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 ESS 배터리에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 소화약제가 분사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  © 최누리 기자

 

오락가락 삼성SDI… 소화약제? VS 습도?
태양광 발전시설과 연계된 ESS가 멈춘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시설 소유주인 정재극 씨는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배터리에 이상을 불러온 원인이 명쾌하게 분석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에 있는 업체 간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가 사고 원인을 분석한 관련 보고서가 혼란을 키우고 있다. 지난 9월 15일 협력업체를 통해 현장을 조사한 삼성SDI는 총 세 차례에 걸쳐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날 작성된 것으로 표기된 보고 문건 내용이 모두 제 각기다.


첫 번째 보고서에선 ‘소화약제 잔여물이 세척되지 않고 하절기 습도 증가로 인한 배터리 내 외부 결로 발생으로 잔여물이 흡착돼 부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일부 배터리의 절연저항 측정값이 기준치 미달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같은 날 작성된 것으로 표기된 두 번째 보고서에선 ‘소화약제 분출사고가 있었음에도 당사에 통보가 안 됐고 그로 인한 모듈의 부식으로 절연저항 값이 기준치에 미달해 PCS 알람이 발생했다’고 썼다.


세 번째 보고서에선 ‘소화약제 분출사고가 있었음에도 통보가 안 됐고 습도관리(80% 이하) 미흡으로 모듈의 부식이 발생해 절연저항 값이 기준치에 미달 돼 PCS 알람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삼성SDI 협력업체에서 작성한 세 개의 보고서에는 ESS 배터리의 이상 상태 원인을 모두 다르게 명시하고 있다.  © 소방방재신문


모두 같은 날 작성된 문건들이지만 해석은 다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보고서에선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의 소화약제를 주원인으로 봤다가 습도 문제로 방향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뚜렷한 결론 없는 삼성SDI의 이 보고서들을 근거로 이해관계에 놓인 업체들은 혼란 속에서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 측은 24일 <FPN/소방방재신문>에 “몇 번의 보고서가 작성됐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장 큰 문제를 습도관리로 결론냈다”며 “소화약제가 터졌을 때 통보를 안 한 것도 잘못이지만 습도관리가 안 된 게 큰 문제”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배터리 제조기술을 보유한 대표 제조사인 삼성SDI가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조차 명확히 규명하지 못해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확대된 혼란… 사업주 “한전산업개발이 가장 큰 문제”

삼성SDI의 갈팡질팡하는 원인 분석 보고서 때문에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그 사이 수억원을 들여 ESS 시설을 갖춘 사업주의 피해는 월 수천만원 씩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만약 오방출된 소화약제가 배터리를 망가뜨린 원인이라면 사고를 일으킨 업체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습도 문제라면 ESS 시설의 유지관리 측면 문제로 결부될 수 있다. 이 경우 시설의 유지관리를 해야 하는 쪽 책임이 커진다. 배터리 이상을 일으킨 실질적인 원인에 따라 보상 책임의 주체와 보험 적용 방향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SDI의 엉성한 보고서는 관련 보험의 보상 회피 근거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업주가 가입한 보험사 측에선 삼성SDI의 보고서를 근거로 “소화장치 오방출 사고에 따른 부식 발생이 장애의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외국 연구논문을 제시하는 등 보상이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 측이 제시한 ‘Royal Canadian Navy’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고체에어로졸 소화약제 성분이 부식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약품이고 다른 국가의 화재 현장에서도 금속 재질에 심각한 부식을 발생시킨 사례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 올해 2월 사업주의 보험 가입 시점 이전에 발생한 오방출 사고라는 점도 보상 불가 이유로 들고 있다. 만약 습도의 문제일지라도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사업주 보험사 입장이다.

 

▲ 사업주인 정 씨가 가입한 보험사 측에서는 삼성SDI가 작성한 보고서를 근거로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 소화약제로 인한 배터리 셀의 손상을 위험성과 함께 오방출 사고가 보험가입 이전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보상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삼성SDI의 오락가락한 보고서가 보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소방방재신문


방출 사고를 일으킨 해당 업체도 공사 관련 보험을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화약제 방출 사고가 원인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지티엔지 관계자는 “만약 소화약제가 부식을 일으켰다면 진작 문제가 나타났어야 한다”면서 “고체에어로졸 업체들에 문의를 해도 금속이 부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금속이 부식된다면 누가 고체에어로졸 소화장치를 쓰겠나”고 반문하며 문제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또 “고체에어로졸을 쓰는 이유는 약제가 터졌을 때 불도 끄고 화재 피해를 안 입은 다른 설비도 보호하려는 건데 부식을 불러온다면 이 비싼 소화장치를 쓰지 않는다”면서 “해당 현장은 습도관리가 안 된 사실이 있고 올해 유독 많이 내린 비도 문제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문제의 ESS 시설은 올해 4월 실내에 설치된 에어컨 2대 중 1대가 고장 난 이력이 있다. 이후 7월이 돼서야 A/S가 이뤄졌고 이 기간 ESS 저장실의 습도 규정인 80%를 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문제 역시 한전산업개발에 책임이 있다는 게 소유주와 원도급자인 에스제이 측 주장이다.


에스제이 관계자는 “소화약제가 터진 일과 에어컨이 고장 난 것 모두 공사와 관리상 나타난 결함이기에 책임시공을 맡은 한전산업개발에 책임이 있다”며 “소화약제가 터지면서 에어컨에도 영향을 미쳐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이유든 시스템 설치와 관리를 모두 맡은 한전산업개발이 하자처리를 해줘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주 정 씨는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 오방출로 인한 문제건, 습도 문제건 ESS 시설 공사와 관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전산업개발이 사업주와의 직접 계약 건이 아니라는 이유(하도급 받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고가의 전문 기술까지 필요한 ESS 설비 운영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전문 업체에 기술을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고 한탄했다.


문제가 장기화되자 결국 사업주는 한국공정관리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한전산업개발 측은 24일 “ESS 배터리의 문제와 설비 운용의 문제, 시공상 문제 등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아 보험처리 등의 후속조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ESS 시공업체로서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3자 회의(에스제이, 한전산업개발, 엘지헬로비전)를 진행 중이고 사업주의 공정거래 조정 분쟁 신청에 따라 관련 절차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영, 최누리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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