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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재중 논설위원 컬럼] “할아버지. 사람은 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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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중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06/06/09 [23:28]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재중 논설위원 컬럼] “할아버지. 사람은 왜 살아요?”

이재중 논설위원 | 입력 : 2006/06/09 [23:28]

 

▲   이재중 논설위원

어느 날 다니러온 손자가 느닷없이 물어 온 말이다. 금년에 열한 살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나이에 맞지 않는 상당히 철학적 의미가 담긴 질문이라 잠시 당황스러워서 “왜. 호승이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됐지?”하고 되물었다.

그 아이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학습지가 기다리고 있고, 학교에서 내준 숙제까지 마치고 나서 미술학원에 가야하고, 이어 수영 강습을 거쳐 검도장을 다녀 집에 오면 저녁 늦은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힘겨운 일과 속에 살다 보니까 “내가 왜 사나?”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물었다. “호승이는 엄마, 아빠가 있어서 학교에도 보내주고, 미술학원이나 검도장에도 보내주는데, 이 세상에는 엄마, 아빠가 없어서 학교에도 못가는 어린이가 있거든? 이런 어린이 보다 호승이는 행복한가? 불행한가?” 그는 즉시 “행복해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할아버지,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이 뭐에요?”하고 또 물어 왔다. “글세….”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행복이란 말이다. 자기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 졌을 때 느끼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어서 “호승이가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다음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살라고 엄마, 아빠가 어렵게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거든, 이런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면서 공부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돼. 알겠니?” 이것으로 그날 손자와의 대화는 끝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행복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 생각하고 국어 대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책에는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열거해 놓고 있었다.

첫째 :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조건이 충족 되어도 결코 행복 할 수 없다. 내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절망감 속에서 행복 이란 생각 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 화목한 가정이 있어야 한다. 나 혼자 행복하게 살수는 없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도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고, 어렵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의논할 사람 하나 없으면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가족 간에 불화(不和)가 있으면 가정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 서로 아껴주는 정이 흐르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셋째 :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게 되지만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더 행복해 지고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때 나도 행복해진다.

넷째 : 자기가 생활 할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이 있어야 한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한 환경 속에서 행복할 수는 없다.

다섯째 :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수가 많고 적음은 여기서 논할 대상이 아니다. 가슴을 열어 놓고 비밀스런 일을 의논 할 수 있는 순수한 친구가 있다면 행복을 향해 가는 백리길 중에서 오십리를 갔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느끼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 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 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 하고 노래한 낭만파 시인 칼 부세의 시처럼 행복은 저 산 넘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잇는 것이다.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첫째 : 긍정적인 사고(思考)를 가져야 한다. 부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면 불평, 불만이 생기게 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둘째 :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다. 9천 9백만원을 가진 사람이 1억원을 채우지 못해 늘 욕심을 부리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러나 9천 9백만원이란 큰돈을 가졌다고 만족하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낙(樂)이 바로 그 안에 있다.”고 노래한 옛 시조는 이것을 잘 나타낸 말이라고 하겠다.

셋째 : 남을 용서해야 한다. 남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먼저 용서하라. 그리고 용서란 ‘용서하지 못할 일을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다.

넷째 : 무슨 일이던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행복을 느껴보라. 끝으로 괴테가 갈파한 행복에 대한 한 구절을 소개한다.
“너는 왜 자꾸 멀리 가려고 하느냐 보라! 좋은 것은 가까이 있다. 다만 네가 바라볼 수만 있다면 행복은 언제나 거기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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