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특별기고] ‘뭉쳐야 산다’ 소방의 민ㆍ관 협업과 그 비전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광고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 기사입력 2015/11/09 [21:53]

[특별기고] ‘뭉쳐야 산다’ 소방의 민ㆍ관 협업과 그 비전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 입력 : 2015/11/09 [21:53]
▲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요즘 ‘국민안전처’의 화두는 협업이다. 함께 일을 도모해서 결과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시너지[synergy]’라고들 한다. 이른바 재난관리의 시너지를 위한 맥락으로 부서 간 ‘소통과 연계’를 강조하는 가운데 ‘협업’이라는 타이틀을 걸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구조를 보더라도 일반 방재행정과 소방, 그리고 해경이 각각의 지지축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을 횡으로 관류하는 ‘관계성’이 설정돼야 견고한 조직의 매트릭스가 완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역적 속성에 대한 귀속성이 큰 각각의 다른 직렬의 조직을 연결하고 하나의 임무체계를 재구조화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결코 녹록하지 않다.


정작 막막한 것은 과연 조직 간의 수평적 협업체계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이고 그 효과는 발휘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군의 경우 육ㆍ해ㆍ공의 역할이 그 기능을 중심으로 명확히 구분돼 있다. 글자의 초성, 중성, 종성과도 같이 통합체계를 하나의 전투단위로 볼 수 있다. 나라가 클수록 지역별 방어개념이 중시되다보면 바로 이런 배경에서 ‘집단 군’ 체제가 준비된다. 지역 사령관 예하(隷下)에 육ㆍ해ㆍ공이 골고루 편재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다 보니 집단 군 체제가 아니라 각 군이 개별로 총장 예하에 있으며 합참, 국방부 수준에서 비로소 통합체계로 묶인다.


한편 재난과 전쟁은 그 수많은 개념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구성 개념이 다르다. 지역별로 소방관서가 분포되며, 하나의 소방본부에 육ㆍ해ㆍ공군의 역할을 하는 소방관이 기능별로 배치된다. 이미 소방부서는 ‘집단 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수면에서 수난구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해경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으려니와, 멀리 떨어진 해경과의 협업을 전제로 대응 개념이 수립되어서도 안 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협업의 개념도 국민안전처 구성 조직 간의 협업을 우선하지 말고 현장 직무 특성에 걸맞게 설정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이 각 조직 간의 협업이 아니라 각각의 조직별로 민관협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쳐 온 지난 수많은 재난을 돌이켜 보고 그 이후 뻔히 실패한 무수한 정책 타이틀이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떠올려 봐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협업의 문제를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진솔하고 실용적인 정책으로 풀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의 ‘소방’은 이 협업의 관점에서 어떤 정책 착안점을 찾아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주장하면 ‘소방’이야말로 민ㆍ관 협업이 진작부터 필요했으며, 본질적으로 민관협력의 바탕 위에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협업수준에는 가장 크게 못 미치는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관설소방’은 순수 민간 마을의 안전지킴이에서부터 발전됐다. 민병대가 정규군이 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 역사적인 스토리는 평범하기까지 하다.


이 지역별 관설소방이 국가적 업무로 발돋움한 유래에 주목해야 한다. 소방업무 대상의 위험 크기와 복잡도가 증가하고, 특히 공학의 발달로 위험 경감을 위한 구조적 또는 비구조적 시스템이 활발히 도입되면서 국가적으로는 표준화된 기준과 규제 행정이 필요하게 됐다. 따라서 ‘출동대’로서의 소방은 급속히 ‘기술행정’을 포괄하는 행정 관료로서의 독립된 직렬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지역별로 감당이 어려운 재난에 동원되는 공통자원의 양과 질을 상시 유지하고 관리하는 역할의 중심에 서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전통적 소방의 개념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소방의 역할’은 여러모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순발력 있는 적응의 요구에 당면한다.


그 난점의 첫 번째는 물리적 역량의 한계다. 소방시설로 통칭하는 민간소방의 역할 없이는 막대한 소방대상물을 관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는 공학적 전문성의 한계다. 초고층 건물이나 지하심층부 등의 극한 공간을 개발하지 않고는 도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첨단생산 공정이나 고밀도에너지 시설도 연일 새로운 기술로 갱신되는 이 시대에 이 모두를 아우르는 표준규정으로 규제업무를 시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고도의 비용대비 이익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심지어 우주과학기술에서 파생된 소방의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이 시대에서 ‘공공업무’의 틀만으로 이들 기술을 여과할 수도, 지원할 수도 없다.


더구나 제대로 된 연구소조차 없는 우리의 국가 소방조직은 업무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데, 하물며 기존 행정프레임은 책임을 떠안는 입장이 되다 보니 매사에 변화를 수용하기보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위사업과 마찬가지로 검토할 역량을 채 갖추지 못한 조직에서 막대한 최신 무기 체제를 단기간에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더해 꼼꼼히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그 누가 서류에 결재를 하겠는가. 용기 내 사인(Sign)을 해도 순식간에 국고를 낭비한 비리와 무능의 조직으로 비난과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사태를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세 번째는 현대 사회의 속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처럼 일방적이고 수직적 관계에 의한 업무 스타일은 이미 먹히지 않는다. 겉으로는 된 듯싶어도 결국은 파국을 맞이한다는 것을 학교 교수는 물론 중소기업 CEO조차도 잘 알고 있다. 몇 번 밀어붙이자 직원이 이직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한다.


십여 년 전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단독형감지기를 주민에게 무상 보급한 적이 있다. 미국 소방당국은 감지기 구매 가격의 열 배가 넘는 수십 억 원을 제품구매가 아니라 주민의 친화적인 분위기를 위한 전략 구상과 홍보, 교육에 투입했다.


정서적 교감이 없는 일회성 정책은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 담당자가 시민의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납득의 기반 위에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민과 관을 연결하는 NPO( Non Profit Organization) 같은 매개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의 소방 세상은 관이나 민, 둘 다 타 분야 못지않게 양적 증가를 해왔다. 이제부터라도 ‘관’과 ‘민’이 더욱 절실하게 합리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관’이 비현실적 책임주의를 전제로 권한 유지에 급급하다보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발전은 절대 불가능하다. 신기술의 시장 진입도 기득권 영역과 보수적 관료주의의 벽을 절대 넘어 설 수 없다.


‘관’과 ‘민’의 협업은 상호 역할을 신뢰해야 가능하다. ‘민’이 잘못하면 ‘관’이 책임져야 하고, 그렇다 보니 오로지 징벌주의로 ‘민’을 다스린다. 제조업이나 점검, 감리처럼 위임업무 성격을 가진 현재의 ‘민’ 업역의 구조는 사업을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수행하려 해도 언제 어떤 순간에도 ‘범죄자’로 취급되어 버린다는 피해의식을 떨칠 수 없다. 시장구조나 제도적 시스템의 완성도가 미흡한 탓이다.


민은 관의 정책을 불신하고 탓하며, 관은 ‘민’을 더 엄히 다스리기 위한 수직관계의 방정식에만 급급해서는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협업은 각자 위선이나 형식주위를 배제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 보다 과감히, 그리고 포괄적으로 기획돼야 한다. 지키려 하거나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합리성을 담보할 제3의 대안을 찾는데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 소방분야는 관과 민, 그리고 보험과의 관계가 가장 특이하게 괴리돼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협업의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제 민ㆍ관의 협업설계를 제대로 해 우리 소방을 21세기 선진국의 상식 수준에 접근시키자. 소방은 기술력으로 재난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나라 산업과 도시기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더욱 기여해야 한다.


‘민’과 ‘관’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일방적 관계를 탈피 못 하고, 결과적으로 서로 더 큰 벽과 불신만 쌓아간다면, 결국 소방이 아니라 어느 분야든지 이 시대에 살아남을 정체성과 명분에 위협받게 될 것은 뻔 한 일이 아니겠는가.

 

서울시립대학교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인터뷰]
[인터뷰] “다양한 경험ㆍ조직 이해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 물결 만들겠다”
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