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1개월 차… 제품 기준도 없는 소방 내진설계

늦어지는 제품 기준 탓에 업계도, 소방관서도 혼란 속
‘비영리 공인기관 시험성적서’ 한계 부딪힌 국내 제품들
국내 업계 “외국 제품들만 배 불리는 꼴” 볼멘소리까지

최영 기자 | 입력 : 2016/11/08 [14:25]
▲ 실제 현장에 설치되고 있는 국내 개발 내진제품의 모습이다.     © 최영 기자

 

[FPN 최영 기자] = 소방시설 내진제품에 대한 성능 확인 기준이 시행 11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마련되지 못하면서 국내 개발 내진제품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관련 제품의 인정기준 정립 후 실제 시장에 공급되는 시기는 빨라도 내년 2월은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소방시설 내진설계 제도의 실제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내진제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중 수계소화설비 배관 등을 건축물에 고정 또는 지지하는 ‘흔들림 방지 버팀대’는 대표적인 내진 제품으로 꼽힌다.


외산의 경우 외국 인증(UL, FM 등)을 득한 제품들이 공급되고 있지만 국내 개발 제품들은 관련 기준이 불명확해 보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6월 국민안전처는 잇따라 발생하는 소방시설 내진설계의 기준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구체적인 운영 방향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 안전처는 내진제품에 대한 성능인정 범위를 설정하면서 해외 수입품은 UL이나 FM 등 국제 통용 인증품일 경우 별도 확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국내 내진제품 또는 구조기술사가 설계한 현장 제작품의 경우 구조계산서 등 근거서류와 부품에 대한 비영리 공인기관의 성능확인 서류를 제출했을 때 인정해 주기로 했다.


특히 소방시설 내진제품에 대한 기준을 늦어도 10월 이전까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을 통해 정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그러나 내진제품에 대한 성능 기준은 11월 초순인 아직도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KFI에 따르면 현재 관련 기준안은  UL기준과 동일한 형태로 마련됐지만 기준의 명확성과 안전성을 위해 UL과의 소통을 진행하는 등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빠르면 다음주 중 제조업체 회의를 거친 뒤 관련 기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KFI 측 설명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지난 6월 내려진 안전처 방침에 따라 내진제품에 대한 ‘비영리공인기관의 성능확인 서류’를 받아 우선적인 시장 공급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영리공인기관의 확인서류일지라도 명확한 성능 여부를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내진업계의 A 씨는 “현재 시중에 보급되는 국내산 내진제품들은 제품이 실제 내진성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품에 대해 단순한 인장강도 시험 결괏값만 시험을 거쳐 서류를 내놓고 있다”며 “이 서류만으로 성능을 UL 등에서 요구하는 성능을 보장하거나 곧 정립될 KFI인정 기준 수준의 제품임을 확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B 씨는 “보통 비영리공인기관의 성능확인 서류는 업체가 요구한 형태의 시험만을 거쳐 결괏값만 나오게 된다”며 “어떤 성능을 확인하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내진성능을 갖췄는지는 명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내진설계의 적합성을 판단해 인ㆍ허가를 내줘야 하는 소방관들도 골치가 아프다는 입장이다. 지역의 한 예방담당 소방관은 “비영리공인기관의 실험결과를 근거로 설계에 반영해 허가를 신청하는 대상물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골치”라며 “사실 국산 제품은 현재 인증기준도 없는데 나중에 책임이 뒤따르지는 않을까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비영리 공인기관의 성능확인을 거친 내진제품들의 앞날이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소방시설 내진제품 기술기준으로 운영 예정인 ‘KFI인정 기준’(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자체 인정 기준)이 마련될 경우 기존 확인 서류만을 통해 설계 또는 설치된 제품에 대한 운영 방향이 명확히 설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능확인 서류만을 받아 설계에 반영된 제품이 향후 KFI인정 기준 제정 이후에도 존치될지, KFI인정을 다시 받아 현장에 적용해야 하는지 등 명확한 방침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설계 반영 이후 재설계를 시행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공인인증기관의 성능 확인 서류를 받아 공급을 시도하는 업체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공인기관 성능확인을 받은 업체의 C 씨는 “안전처 방침에 따라 공인기관의 성능확인 서류를 받고 자체적인 성능도 갖췄다고 자부하지만 소방관서나 설계사무소 등의 시각이 각기 다르고 이해 부족으로 적용 자체도 쉽지 않다”며 “그렇다고 이 기준 마련 전까지 기다리자니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어 시험 성적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련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결국 해외 UL이나 FM인증 등을 받은 내진제품들과 달리 성능확인 체제가 부재한 국내 제품들의 보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꼴이다. 이렇다 보니 인증체계 등 철저한 준비 없이 시행된 소방시설 내진설계 제도가 외국 업체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내진제품에 대한 기술기준의 빠른 정립과 그 이전까지 국내 제품의 검증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운영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지난 6월 구체적인 운영방향을 설정할 때 당연히 비영리기관에서 성능을 확인받는 것은 UL이나 FM 등 외국 수준을 염두에 뒀던 것”이라며 “현재 현장 적용에 있어 나타나는 문제를 파악하고 있고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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