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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방시설점검, 그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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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기자 | 기사입력 2017/04/10 [09:29]

[기자의 눈] 소방시설점검, 그 총체적 난국

이재홍 기자 | 입력 : 2017/04/10 [09:29]
▲ 소방방재신문 이재홍 기자    

[FPN 이재홍 기자] = 한동안 잠잠했던 화재가 또다시 기승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세 군데의 재래시장에서 불이 나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고, 화재 안전 우수사례로 표창을 받았던 주상복합건물에서는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화재와 소방에 관한 의식이 어느 정도는 올라온 덕인지, 요즘엔 큰불이 나면 모든 언론이 소방시설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가장 먼저 쫓는다. 법정 시설은 갖춰져 있었는지, 점검은 제때 했었는지 등등. 상당히 고무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우리나라 소방시설점검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소방시설점검을 완료했더라도 그 대상물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없다는 것, 그게 문제다.

 

과거 소방 조직에서 해오던 소방시설점검은 이제 민간으로 이양됐다. 주기적으로 시행되던 소방검사는 큰 사건이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진행되는 특별조사 체제로 바뀌었다. 모든 소방대상물의 정기적 소방시설점검은 건축물 관계인이나 민간점검업체가 실시하고 소방관서에 점검결과 보고서를 제출한다.

 

여기까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갖춰야 하는 소방시설은 늘어났고, 점검을 받아야 하는 대상물도 늘었다. 이를 모두 감당하기에 소방관서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때때로 불거지는 관련 비리도 골치였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행정이 민간으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그 권한까지는 미처 이양되지 못했다. 분명 법적으로 잘못된 사안을 지적하는 것임에도 돈을 받고 점검하는 업체는 ‘을’일 수밖에 없다. 용역을 발주한 ‘갑’에게는 ‘을’을 입맛대로 바꿀 권한도 있으니 ‘갑’의 요구는 곧 ‘을’의 생계까지 좌우한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인 SH가 논란을 빚었다. 자사 임대주택의 소방시설점검 용역을 발주하면서 점검을 하지 못한 세대에 대해서는 정산 시 제외한다는 과업지시서를 내린 게 화근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모든 세대의 점검이 빠짐없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 기관의 행태가 이랬다. 그러면서 SH는 소방관서 제출용 외에, 정산을 위해 세대별 점검 여부를 기록한 별도 보고서까지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방시설점검업체들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이 됐다. SH조차 확실한 점검은 뒷전이요 단가 절약이 우선인데, 시간과 돈이 더 들어도 좋으니 제대로 점검해달라는 ‘갑’들이 어디 흔할까?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점검 용역에서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례가 되레 드물 정도다.

 

살아남기 위한 ‘을’들의 전쟁은 제 살 깎아 먹기 식 출혈 경쟁과 편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 15만원이라는 광고 전단이 뿌려지고 법적으로 제한되는 점검 대상물 한도의 제약을 피하기 위한 배치신고 회피 편법 등이 성행한다. 아파트에서는 공용부만 점검하고 세대별 점검은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양심적인 업체들을 솎아내겠다며 처벌을 강화해 온 국민안전처는 정작 소방시설관리업의 권한 부여를 통한 공정성 확보나 소방시설관리사의 수급, 과도한 일일 점검 한도 수, 공공기관마저도 지키지 않는 적정 단가 등의 문제는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벌이 과하다며 끊임없이 개정을 요구해 온 점검업계도 할 말이 없다. 최근 배치신고 기간 해외에 체류했거나 입원해 있던 소방시설관리사 29명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불과 2년 전 같은 내용으로 33명의 관리사가 처벌받았음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서로를 탓하는 국민안전처와 점검업계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국민안전처는 업계의 자성과 책임감을, 업계는 권한과 여건 보장을 서로에게 요구한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케케묵은 논쟁으로 귀결된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는 매년 소방시설을 점검했다는데 어쩐 일인지 5년 동안 세대 내에 단 한 번도 점검을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자동화재탐지설비는 몇 년째 고장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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