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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은 분명 자랑스러운 소방관이었습니다”

[인터뷰] 유족보상 소송 패소 판정받은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김정남씨
- 병으로 사망한 소방관, 유가족에게 원인 밝히라는 냉정한 국가
- “네 아빠는 병 걸린 아빠가 아니라 자랑스런 소방관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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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기자 | 기사입력 2017/04/24 [09:29]

“우리 아들은 분명 자랑스러운 소방관이었습니다”

[인터뷰] 유족보상 소송 패소 판정받은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김정남씨
- 병으로 사망한 소방관, 유가족에게 원인 밝히라는 냉정한 국가
- “네 아빠는 병 걸린 아빠가 아니라 자랑스런 소방관이었단다”

김혜경 기자 | 입력 : 2017/04/24 [09:29]
▲ 고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김정남씨는 인터뷰 내내 착잡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 김혜경 기자


[FPN 김혜경 기자] = “목숨 걸고 국가에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기각이라니요. 건강하던 내 아들이 소방관으로 일하다 병 걸려 죽었는데 이를 공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공단과 국가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지난달 30일, 2014년 6월 23일 혈관육종암으로 사망한 고 김범석 소방관에 대한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소송 사건이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19일 노원구에 위치한 고 김범석 소방관의 집에서 만난 아버지 김정남씨는 울먹이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아들 고 김범석 소방관은 2006년부터 약 7년 9개월간 부산남부소방서와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에서 근무했다. 1천 회가 넘는 화재진압ㆍ구조 업무로 수백 명의 시민을 구조한 영웅 소방관이다.


“참 건강했던 아들이었습니다. ‘소방관이라면 건강해야지’라며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던 아이였어요. 소방관 체력 시험 볼 때나 매년 신체검사를 받았을 때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던 그런 아들이었단 말입니다”


체력 시험에서 뒤처진 동기를 낙오되지 않게 이끌고 갈 만큼 건강했던 김범석 소방관은 2013년 11월경 ‘폐와 심장에 전이된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던 중 31살의 나이로 7개월 만에 사망했다. 당시 김 소방관에게는 아내와 갓 돌 지난 아들이 있었다.


혈관육종암을 앓던 김범석 소방관은 통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병상에 누워있기 어려웠다. 그 순간에도 “아버지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를 김정남씨는 편히 보내줄 수가 없었다.


김정남씨는 그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들 김범석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병원에서 힘들게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세월호 사고가 난 것을 보고 ‘내가 이렇게 아프지 않았으면 분명 저 현장에 출동했을 거다. 배에 타고 있는 아이들 10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을 거다’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자식을 먼저 가슴에 묻은 김정남씨는 출퇴근하는 젊은 사람이나 운동하는 사람을 볼 때면 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관리도 잘하고 부모 말도 잘 듣는 온순한 아들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아이였죠. 범석이만 생각하면 일흔이 다 돼가는 나이인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김정남씨는 아들을 먼저 보낸 후 1년가량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치료는 이어지고 있다. 김범석씨의 아내도 남편이 사망했다는 충격에 정신과 육체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냉정한 국가를 보며 더 큰 참담함을 느꼈다.


김범석씨가 떠난 뒤 유가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혈관육종은 의학적 근거가 없고 발병원인과 감염경로 등이 분명하지 않아 공무에 기인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공단의 부지급 판정 이후 행정소송까지 오게 됐죠. 이후 공단의 판단과 재판에서 나오는 결정은 다를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기각 판정이 나온 것을 보며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기각 판결 이후 김정남씨는 국가가 유족의 재심 요청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기각 판정을 내리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공단과 국가에서조차 소방관의 혈관육종암이 공무상 재해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면서 힘없고 전문 지식도 없는 유가족에게 그 일을 떠넘긴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들이 죽고 난 이후로 알아보니 정작 아들의 문제만도 아니더라고요. 공상을 인정하는 데 있어 직무와의 연관성이 있다, 없다를 질병에 걸린 본인이나 유가족에게 밝히라는 것 자체가 국가에 헌신한 국민 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고 재난 현장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던 소방관 아들. 김정남씨는 그런 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지만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천직이라 여기던 소방관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국가에 억지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소방관의 혈관육종암이 화재진압ㆍ구조 업무와 의학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만 하지 말고 왜 소방관으로 일하던 우리 아들이 죽었는지를 묻는 유족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고 김범석 소방관의 소식은 사망 이후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며 김정남씨를 찾아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고 김범석 소방관의 이름을 딴 법안 발의도 준비하고 있다.


표 의원이 준비하는 법안은 미국의 공상추정법을 모태로 삼고 있다. 소방 등 위험 직무 종사 공무원의 채용 이후 발생한 질병에 다른 귀책사유가 확인되지 않으면 직무수행을 원인으로 보는 법규다. 질병을 얻은 당사자나 유가족이 직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질병 원인에 대한 입증 책임을 국가 등에 부여하는 방식이다.


김정남씨는 “표창원 의원님이 법 검토가 끝나면 예정대로 발의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법이 꼭 제정돼 공무상 재해의 승인 폭을 넓히고 업무 중 부상을 입거나 희귀암 등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 소방관에 대한 명예를 국가 스스로 회복시켜 줬으면 합니다”


패소 판결을 받은 김정남씨는 아들의 소송을 지난 몇 년간 함께 도와 온 부산 항만소방서 남영현 소방관과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또 고 김범석 소방관의 억울함을 알리고 있는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최인창 단장을 중심으로 국회 입법 청원 등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온라인 청원 활동이 한창이다.(온라인 청원 입법 참여하기)


“국가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언젠가 승소할 날이 오겠죠.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방관으로 살다 죽은 우리 아들을 국가에서 인정해줬다’라고요. 그리고 하늘에 간 아들이 남긴 유언을 손자에게 꼭 전해줘야 합니다. ‘너의 아빠는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였다’고요”

 

김혜경 기자 hye726@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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